코로나19로 등교개학 미뤄졌음에도, 3~4월 합숙훈련 버젓이 위험에 노출된 특성화고 학생들…“과잉경쟁 막고 학습권 보장해야”
“대회 준비를 하다 보면 마치 메달을 위한 도구가 되는 기분입니다. 그 부담이 얼마나 큰지 아니까 남 일 같지가 않아요.” (특성화고 졸업생 한모(19)씨)
지난 8일 밤 경북 경주시 한 특성화고 기숙사에서 고3 학생 이모(18)군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군의 사망원인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유족은 그가 지방기능경기대회 준비에 대한 압박감에 극단적 선택을 했다며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군은 5월 예정됐던 대회를 위해 지난 1월부터 합숙훈련을 해왔다. 친구들은 그가 기능반을 나가고 싶어했고 최근 스트레스를 받아 체중이 급격히 줄었다고 증언한다. 이 학교를 비롯 경북 특성화고 8곳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으로 개학이 연기된 최근까지도 단체합숙을 강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기능경기대회에서 성적을 내야 대기업에 취업할 수 있다는 명목으로 특성화고 학생들이 인권 침해를 당하는 것은 물론 위험에 내몰리고 있다. 특히 신종 코로나 대유행에도 오직 성적을 위해 합숙활동 등에 버젓이 동원되고 있다. 학교 평판과 담당 교사의 승진을 위해 학생들이 이용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경북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23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직업교육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21~22일 이틀간 전국 특성화고 교사 18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이중 83명이 ‘학교에서 기능대회를 위해 3~4월 중 합숙 등 집단훈련을 계속해왔다’고 응답했다. ‘학교엔 가지 않았지만 학원에서 훈련을 이어갔다’는 경우도 있다. 조사 시점까지도 집단훈련을 계속하고 있다는 응답도 18건이다. 상당수가 교육당국 눈을 피해 단체훈련을 계속한 것이다.
교사ㆍ학생들은 ‘곪았던 문제가 터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기능대회 성적이 학교의 평판은 물론 지도교사의 승진에까지 연결된 상황에서 안전보다 경쟁이 먼저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특성화고 교사 A씨는 “휴업 중에도 기능반에서는 학생 수 십명을 모아놓고 오전 8시부터 밤 9시 넘어서까지 훈련을 해왔다”며 “대회를 코앞에 두고 있고 다른 학교가 훈련을 하는걸 아는 상황에서 혼자 멈추기가 힘들 것”이라고 귀띔했다.
훈련 과정에서 학생들의 인권이 침해되는 것도 문제다. 대회 준비를 하는 2~3달간 학생들은 주말도 없이 하루 12시간 이상의 강도 높은 훈련을 반복한다. 일부 학교는 여전히 성과를 압박하며 군기를 잡기도 한다. 문제가 됐던 체육특기생 합숙훈련과 비슷한 구조다. 대회 준비를 이유로 수업을 못 듣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이번 설문조사에서도 ‘지난 몇 년간 기능대회 출전 학생이 수업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답변이 75건, 일부만 참여했다는 답이 56건이었다.
이에 과잉경쟁을 막고 학습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거처럼 입상이 곧 취업으로 연결되지 않는 현실임에도 학생 인권은 여전히 외면되고 있다는 얘기다. 졸업생 김모(20)씨는 “학교는 메달을 따면 대기업에 취업이 될 것처럼 말했지만 현실은 중소기업에 겨우 가는 수준”이라며 “대회는 필요하지만 학생을 몰아가는 방식의 훈련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교사 박모(40)씨는 “메달을 따는 소수 외에 나머지 수백명은 결국 입상을 못하고 졸업할 텐데, 수업도 못 받게 한 채 훈련만 시키는 건 앞길을 막는 것”이라 꼬집었다.
이미 지난해 8월 전교조 등이 교육부에 기능반 학생의 학습권 침해문제 등에 대해 대책마련을 요구했지만 진전은 없는 상황이다. 교육부 중등직업교육정책과 관계자는 “온라인 개학을 준비하면서 교육청에 합숙 훈련을 자제시키도록 일렀지만, 일부 학교가 학부모 동의를 받아 진행하다 보니 제지를 못한 것 같다”며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회를 주관하는 고용노동부와 제도개선을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