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로 만든 물고기 모양의 조각. 경문을 읊는 승려들이 리듬을 맞출 때, 참선하는 승려들을 깨우는 데 이용되었다. 대승불교 사찰에서 볼 수 있다. <출처 (cc) sdkfz183 at Wiki Commons >
물고기도 잠을 잘까? 오래 전부터 물고기는 잠을 자지 않을 것이라고 여겨져 왔다. 물 속에 떠있는 물고기들을 보면 눈에 띌 때마다 항상 지느러미를 움직이며 헤엄치고 있다. 이런 생각 때문에 불교의 일부 종파에서는 물고기가 각성의 상징 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물고기는 잠을 자지 않는다?
실제로 어떤 물고기는 잠을 아예 자지 않는 듯 보인다. 특히 수면과 가까운, 얕은 곳에 사는 물고기보다는 먼 바다 혹은 바다 깊은 곳에 사는 물고기의 경우에서 더 그러하다. 대표적으로 대서양 고등어, 참치, 가다랑어나 몇 종류의 상어들이 잠을 자지 않는다. 또, 바닷속에 있는 어두운 동굴 속에 사는 물고기들은 눈이 안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장님 물고기들도 잠을 자지 않는다고 생각된다.
장님 물고기. 잠을 자지 않는다고 알려져있다. <출처 (cc) H.Zell at Wiki Commons >
이 물고기들이 사는 환경은 큰 변화가 많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해안가에서 먼 바다, 수심이 아주 깊은 바다, 어둡고 빛이 들지 않는 해저 동굴에서는 갑작스러운 변화나 자극이 거의 없기 때문에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나 기억이 생성될 일이 별로 없다. 잠의 기능이 각성 상태 동안 겪었던 일에 대한 기억을 정리하고 견고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런 물고기들이 잠을 자지 않는 것도 이해가 된다.
또, 주변 환경이 거의 일정하기 때문에 물고기의 행동도 거의 같은 것이 반복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잠을 자지 않는 이유라고 생각된다. 환경 변화가 극심한 곳에 사는 물고기에 비해 각성 상태에서의 움직임이 큰 휴식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심이 깊은 바닷속은 환경 변화가 거의 없다. <출처 (cc) Shankar s. at Flikr >
잠자는 물고기, 있다.
잠을 자는 것은 뇌파에 변화가 생기면서 일어난다. 잠을 자는 상태의 기준이 뇌파의 변화라고 규정한다면, 매일 잠을 잘 때 보이는 것 같은 뇌파 변화의 단계를 보이지 않는 겨울잠이나 여름잠은 잠이라고 불러도 될지 애매하다.
잠을 자는지 확인하려면 항상 뇌파를 측정 해야 하는 걸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눈으로 관찰하는 것만으로 어떤 사람이나 동물이 자고 있는지 깨어있는지를 알 수 있다. 뇌파를 굳이 측정하지 않았음에도 자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었는지 생각해보라.
잠을 자는 상태는 뇌의 활성도 변화를 기준으로 규정할 수도 있지만, 단순히 행동적인 변화만 가지고도 규정할 수 있다. 잠을 잔다는 행동적인 기준은 아주 간단하다. 움직임이 아주 적어지고, 주위 환경으로부터 가해지는 외부 자극에 대해 반응이 매우 줄어드는 상태가 되면 잠이 든 것이다. 이보다도 더 알아채기 쉬우면서 잠이 드는 데 있어 중요한 변화는 바로 눈을 감는 것이다. TV를 보다 잠드신 부모님, 엄마 품에 안겨 보채다 잠든 아기, 장난치기 좋아하던 강아지가 턱을 괴고 잠들었을 때를 떠올려보라. 소파에서 잠든 부모님도, 엄마 팔에 안긴 아기도, 제 집 속의 강아지도 눈을 감고, 깨어있을 때와 달리 움직임이 거의 없어진다. 또, 주변에서 당신이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그들은 별 반응이 없다. 바로 이 같은 행동 변화를 기준으로 한다면 사실 대부분의 물고기가 잠을 잔다.
해저의 모래 위에서 잠을 자고 있는 까나리 <출처 (cc) National Oceanic and Atmospheric Administration>
잠든 물고기는 깨어있을 때보다 움직임이 줄어들고 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이 굉장히 적어진다. 어떤 종류의 물고기는 잠들었을 때 손으로 조심스레 떠서 수면 위까지 올리는 게 가능할 정도다. 대부분 물고기는 물 속에서 가만히 수평으로 떠있는 상태로 잠이 들며, 머리를 약간 수면 쪽으로 들고 꼬리와 지느러미는 축 늘어뜨리고 자기도 한다.
물고기도 꿈을 꿀까?
잠을 자는지는 뇌파를 측정하지 않아도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행동 변화로 쉽게 알 수 있다지만 꿈을 꾸는지는 정말 뇌파를 측정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사람처럼 의사소통을 할 수도 없기 때문에 물고기가 잠을 자는 동안 꿈을 꾸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물고기도 수면 부족상태를 겪고 불면증에 시달린다는 것은 알려져 있다. 실제로 2007년 한 연구진이 밤 동안 잠을 자는 것으로 알려진 물고기인 제브라피쉬를 대상으로 실험을 하기도 했다. 연구진은 제브라피쉬가 잠을 자는 밤 시간에 약한 전류를 흘려줌으로써 물고기가 잠을 잘 수 없게 방해했다. 밤새 잠을 방해 받았던 물고기들은 다음날 낮 동안 각성 정도를 대변할 수 있는 행동인, 입과 아가미의 움직임이 줄어들었다. 또, 다시 어두운 환경에 놓이자 평소보다 더 오랜 시간 잠을 자는 듯한 행동을 보이며 부족한 잠을 보충하려는 것 같은 반응을 했다.
제브라피쉬가 밤에 잠을 자는 동안 약한 전류를 흘려주거나 밝은 빛을 쪼여주어 잠을 방해했다. 그러자 평소 잠을 자는 시간이 아닌 때에 취하는 휴식시간이 훨씬 길어졌다.(빨간색 상자부분을 보면, 위의 경우가 잠을 방해하지 않은 제브라피쉬가 낮 동안 휴식을 취한 시간, 아래의 경우가 잠을 방해 받은 제브라피쉬가 낮 동안 휴식을 취한 시간이다.) T. Yokogawa. et al.(2007) Characterization of Sleep in Zebrafish and Insomnia in Hypocretin Receptor Mutants
뜬 눈으로 밤을 새는 어(漁)선생
잠든 물고기는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움직임이나 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이 거의 없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눈 감기도 할까? 안타깝게도 물고기에게는 눈꺼풀이 없어 뜬 눈으로 잠을 자야 한다.
물고기들은 눈꺼풀이 없다. 하지만 눈을 덮는 세 번째 눈꺼풀이라고 할 수 있는 ‘순막’이 있는 물고기가 있다. 이 사진은 상어의 눈을 순막이 덮고 있는 모습이다. <출처 (cc) Joxerra aihartz at Wiki Commons>
동물이 잠을 잘 때 눈을 감는 가장 큰 이유는 빛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물고기의 경우 육지에서와 달리 빛이 많이 들지 않는 환경에 살고 있기 때문에 굳이 눈을 감지 않아도 잠을 자는 데 큰 무리는 없다.
물고기는 언제 잘까
물고기가 사는 환경은 우리가 사는 육지에서처럼 빛이 많이 들지 않는다. 빛의 양 변화가 별로 없어도 낮과 밤을 구분해서 잠을 잘 수 있을까?
물고기도 다른 동물들처럼 몸의 활성 정도가 하루, 즉 24시간을 주기로 변화한다. 일종의 생체시계를 가지고 있는 것인데, 이 시계가 작동하면서 매일 비슷한 때에 잠을 잔다. 생체 시계는 육상동물의 경우처럼 물고기가 사는 세상 밖에서 들어오는 빛에 의해서도 조절될 수도 있고, 물고기를 둘러싼 환경의 온도 변화, 주위에서 얻을 수 있는 먹이 양의 변화에 의해서도 조절된다.
연어의 경우 주변 환경의 온도가 변하는 것에 따라 잠을 자는 시간이 변화한다. 대서양에 서식하는 독중개, 북미 담수 메기 같은 물고기는 여름 동안에는 야행성이다가 겨울이 찾아와 해가 짧아지면 점점 주행성으로 변한다. 흰빨판이라는 물고기는 여럿이 모여 지낼 때는 주행성으로 행동하다가 혼자서 지내게 되면 야행성으로 변한다. 집에서 애완용으로 많이 기르는 금붕어의 경우 밥을 주는 시간에 따라 잠자는 시간이 변하기도 한다.
일생 동안 특정 시기에만 잠을 자거나 잠을 자지 않는 경우도 많이 있다. 많은 물고기들이 치어일 때는 잠을 자지 않다가 성체가 되면서 잠을 자기 시작한다. 사람의 경우 아기일 때 잠을 무척 많이 자다가 성장하면서 잠자는 시간이 줄어드는 걸 생각해보면 반대인 셈이다. 흑도미는 평소에 잠을 자는 물고기인데, 산란기나 대규모로 이동하는 시기가 되면 전혀 잠을 자지 않는다.
둥지를 지키고 있는 큰가시고기. 알을 품는 동안은 잠을 자지 않는다. <출처 (cc) Animal Diversity Web at Flickr>
열대어의 일종인 시클리드나 큰가시고기의 경우 알을 품는 동안은 잠을 자지 않는다. 부모 큰가시고기의 잠이 사라지는 이유는 부모 물고기가 잠이 든 사이 포식자가 와서 알을 잡아먹을까봐서 때문만은 아니다. 24시간 쉬지 않고 부모 물고기가 지느러미로 알을 굴리며 산소를 공급해줘야 하기 때문에도 잠을 잘 수 없다. 부모가 되면 잠을 못 자게 되는 건 사람과 같은 모양이다.
이불 덮고 자는 물고기도 있다.
잠을 자는 동안은 호흡률이나 심장 박동을 비롯한 기본적인 생체 기능이 떨어진다. 또, 주변 환경의 변화와 자극을 잘 감지하지 못하고 반응도 느려진다. 잠든 생물은 무방비상태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물 속 세계에서도 포식자와 피식자가 존재하는데, 잠든 동안 물고기들은 자기 자신을 어떻게 보호할까?
물고기의 잠은 육상동물의 경우처럼 아주 깊지 않은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잠든 물고기들은 깨어있을 때보다 반응이 훨씬 느리고 주위 환경의 자극에 덜 민감하긴 하지만, 잠을 자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작은 움직임을 보인다. 육상동물이 잠잘 때처럼 아가미를 통해 끊임없이 물을 순환시켜 호흡하는 것뿐 아니라, 잠이 들었어도 천천히 헤엄을 친다. 또, 포유동물로 분류되긴 하지만 바다에 사는 돌고래의 경우, 자는 동안 뇌의 두 반구가 번갈아 활성이 줄어든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물고기는 절대 맘놓고 깊은 잠을 잘 수 없는 걸까? 꼭 그렇지는 않다. 어떤 물고기는 바닷속 바닥에 바싹 붙어서 또는 모래 속에 파묻혀 잠을 잔다. 또, 해조류가 무성한 곳이나 산호초의 틈새, 해면 속에 숨어 잠을 자는 물고기도 있다. 어떤 물고기는 직접 산호나 해조 조각을 모아 성이나 둥지 같은 것을 만든 뒤 그곳에서 잠을 잔다. 놀래기과나 비늘돔류의 물고기는 잠을 자기 전에 점액질을 분비해서 몸을 감싼다. 어떻게 보면 이불을 덮고 자는 것이다. 무리를 지어 사는 물고기들은 일부 물고기가 다른 물고기를 에워싸고 안쪽에 있는 물고기들이 잠을 자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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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늘돔이 이불을 박차고 나갔다? 텅 빈 비늘돔의 점액질성 수면주머니. <출처 (cc) David Louis Burton at Flickr> 2 떼를 지어 움직이는 물고기의 모습. 안쪽의 물고기들이 자고 있을지도 모른다. <출처 (cc) OpenStax College at Wiki Commons> |
‘잠’의 비밀 언제 다 풀릴까
물고기들의 잠에 대해서는 대부분이 추측이라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사실 앞으로 밝혀져야 할 재미있는 사실들이 아주 많다. 지금까지 잠을 뇌의 활동을 통해서만 정의했던 탓이 클 것이다.
집에 기르는 물고기가 있다면 오늘밤 그들의 움직임이 어떻게 변하는지, 갑자기 불을 켜 잠을 깨우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살펴보면 어떨까.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새롭고 재미있는 광경이 펼쳐질지도 모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