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과 나눠 먹던 가장 친근한 떡우리 조상들은 철마다 또는 각종 경조사 때마다 떡을 해서 이웃과 나눠 먹었으며 그중에서도 시루떡은 가장 많이 해 먹는 친근한 떡이었다. 붉은팥 시루떡은 지금까지도 이사한 다음 이웃에 두루 돌리는 풍습이 남아 있다.
한문으로는 ‘증병(甑餠)’이라고 하는 시루떡을 만들려면 떡가루와 고물이 있어야 하는데, 떡가루는 주로 멥쌀이지만 찹쌀을 섞거나 찹쌀만으로 만들기도 하며, 고물은 붉은팥 외에 거피팥이나 녹두, 깨 등도 얹어서 만든다. 멥쌀가루는 찰기가 없어 그대로 찌면 퍽퍽하고 잘 부서지므로 떡가루에 물을 고루 내려서 찌면 촉촉하고 부서지지 않는다. 예전의 시루떡은 떡가루와 고물에 소금으로만 간을 맞춰서 단맛이 거의 없었는데 요즘 떡집에서는 설탕을 함께 섞어서 달착지근하게 만든다.
떡가루는 방앗간에서 빻아 체에 쳐 왔더라도 다시 한 번 고운 체에 내려야 한다. 자주 해 먹는 집에서는 소량씩 빻으려면 번거로우므로 빻아 놓고 한 번에 쓸 만큼씩 비닐 봉지에 넣고 반드시 찹쌀인가 멥쌀인가를 메모해서 냉동실에 넣어 두고 쓰는 것이 편리하다. 떡쌀은 적어도 물에 여섯 시간 이상 담가 두어 물기를 최대한 흡수한 상태에서 빻아야(습식분쇄법) 떡을 만들었을 때 제맛이 난다. 요즘에는 완전히 건조시킨 쌀가루나 찹쌀가루를 봉지에 담아서 팔기도 하지만 떡을 하기에는 향기나 감촉도 안 좋고 맛도 덜하다.
찰곡식에는 아밀로펙틴이 많이 들어 있어 익으면서 한데 뭉치는 성질이 있다. 그래서 찹쌀로 떡을 하면 김이 위까지 통하지 않아 아래는 익고 위쪽은 익지 않아 가루가 허옇게 남아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떡가루를 안칠 때 두께를 2~3cm 정도에 그쳐야 하며 물을 내려서는 안 된다. 반면 멥쌀가루에 호박이나 상추, 느티 등 다른 재료를 섞어서 하려면 4~5cm 두께로 안쳐야 푸짐하다.
떡을 찌는 시루는 질그릇으로 된 것이 가장 좋다. 알루미늄이나 유기, 도기로 만든 시루는 시루에 닿는 부분의 떡가루나 고물이 말라 버려서 아예 익지도 않거나, 너무 오래 찌면 더운 김이 고여서 떡이 흠뻑 젖기도 한다. 또 시루는 위아래의 넓이가 달라서 떡가루 분량을 잘 맞추어야 떡의 두께가 고르다. 물이 담긴 솥 위에 시루를 얹고 그 틈새를 김이 나가지 않게 잘 막아야 한다. 이를 ‘시룻번’이라 하는데 쌀가루를 체에 칠 때 남은 무거리나 밀가루를 되직하게 개어서 끈처럼 만들어 꼭꼭 눌러서 막는데 일단 불을 끄고 나서 붙여야 잘 붙는다.
시루 밑에는 구멍이 나 있는데 풀로 엮은 ‘시룻밑’을 깔고 고물을 넉넉히 뿌리고 나서 떡을 켜켜로 안친 다음 뚜껑을 덮어야 한다. 먼저 젖은 행주나 베보를 덮고 나서 나무나 냄비 뚜껑을 덮도록 한다. 그냥 뚜껑을 덮으면 김이 뚜껑 안쪽에 모여서 물방울이 되어 떡 위에 떨어져 고물을 적시게 된다. 너무 오래 찌면 가장자리에 물이 돌아서 질척해지는데 예전에는 아낙네들이 허리 아픈 데에 효험이 있다고 하여 나누어 먹기도 했다고 한다. 위쪽에 김이 오르기 시작하면 뚜껑을 덮어서 큰 시루이면 한 시간 정도 찌지만 한두 되 들어가는 작은 시루이면 20~30분이면 충분히 익는다. 긴 대꼬치로 찔러 보아 흰 가루가 묻어나지 않으면 다 익은 것이다. 잡귀를 쫓는다는 붉은팥 시루떡붉은팥 시루떡은 시월 상달에 고사 지낼 때와 이사할 때, 함 받을 때 등 우리 조상이 가장 즐겨 먹어 온 떡이다.
고사를 지내거나 이사를 할 때는 반드시 붉은팥 고물을 쓰는데, 잡귀가 붉은색을 무서워하여 액을 피할 수 있다는 주술적인 뜻이 담겨 있다. 잔치나 제사 때에는 붉은팥 고물 대신 흰팥이나 녹두, 깨 등의 고물을 쓴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서는 ‘팥떡’에 대해 “쌀이 두 되면 붉은팥 한 되쯤이 필요하다. 밥 짓듯이 팥에 물을 붓고 한소끔 끓인 후에 좀 두었다가 팥알이 다 퍼진 후에 다시 뭉근하게 불을 때었다가 퍼내어서 소금을 넣고 주걱으로 으깨어 놓는다. 방아 찐 멥쌀가루에 찹쌀가루를 조금 넣고 물을 내려야 좋다”고 하였다. 시루떡 안칠 때 주의할 점으로는 “솥에다가 물을 붓고 사기 접시를 놓으면 물 끓을 때 접시 소리가 나는데 만일 물이 마르면 소리가 안 날 것이므로 곧 물을 더 붓는다. 또 물속에 밥풀이 들어가면 물이 넘어 나오므로 솥을 씻을 때 조심해야 한다”고 일러주고 있다. 푸짐하고 먹음직스런 물호박떡늦가을 농촌 들녘에 나서면 초가 지붕이나 밭이랑에 누렇게 물들어 가는 호박을 흔히 볼 수 있다. 늙은호박이란 애호박의 반대되는 말로, 호박이 충분히 자라서 누렇게 서리가 내릴 때까지 두었다가 따서 겨울 내내 죽이나 떡을 해 먹고, 말린 호박고지로 나물을 해 먹기도 한다.
늙은호박을 청둥호박, 맷돌호박이라고도 하며, 껍질이 매우 단단하고, 살은 붉은빛이 도는 노란색인데 겨우내 저장할 수 있다. 말린 호박고지는 단맛이 많아 찹쌀가루에 섞어서 찰떡을 만들면 아주 맛있다.
늙은호박으로 만든 물호박떡은 늦가을에서 겨울에 제맛이 나는데 날호박을 저며 쌀가루에 섞어서 만들거나 말린 호박고지를 불려 섞어서 만든다. 물호박떡을 만들 때에는 호박에 수분이 많으므로 멥쌀가루를 쓴다. 멥쌀가루에 얇게 썬 호박을 섞어 떡 켜를 두툼하게 하고 흰팥 고물을 뿌리고 안쳐서 찐다.
흰떡 사이사이에 주황색의 호박이 부드럽게 흐를 듯이 수북하여 보기에도 탐스럽고 맛도 좋다. 이 떡을 할 때는 다른 떡보다 떡가루에 물을 적게 내리고, 호박 색이 옅으면 단맛이 적어서 맛이 덜하므로 호박에 설탕을 뿌렸다가 넣는 것이 좋다. 썰었을 때 다른 시루떡처럼 단정해 보이지는 않지만 푸짐하고 서양의 케이크처럼 층이 생겨서 먹음직스럽다. 그 밖의 시루떡각색편(各色餅)이란 떡가루에 다른 재료를 섞어서 색이나 향을 첨가한 시루떡을 말한다. 멥쌀가루로 떡 켜를 얇게 하고 고물을 곡물 대신 밤, 대추, 잣 등의 건과를 쓰며 국화꽃잎, 나뭇잎 등으로 장식한다. 떡의 결을 곱게 하려면 떡가루에 물을 내려서 가는 체에 쳐서 두께를 고르게 해야 한다. 고명으로 아름답게 문양을 내고 그 위에 한지를 덮고 살짝 눌러서 쪄낸다. 그러지 않으면 고명이 떡에 잘 박히지 않고 따로 돌아다녀서 지저분해 보이기 때문이다. 공이 많이 드는 떡이므로 여러 가지 떡을 한데 고일 때 가장 위에 얹는다.
녹두편은 여름철에 자주 만드는데 노르스름한 통고물이 보기도 좋고 품위가 있다. 녹두 고물을 만들려면 타갠 녹두를 불에 불려서 비벼 껍질을 말끔히 없애고 시루나 찜통에 쪄낸다. 대개 시루편의 고물은 으깨서 쓰지만 녹두는 통녹두를 그대로 쓴다.
4월 초파일 무렵 느티나무에 돋아나는 연한 잎, 여름철에 흔한 상추, 겨울에 나는 무 등으로도 시루떡을 해 먹을 수 있다. 떡가루에 느티잎이나 상춧잎, 채썬 무 등을 섞어서 켜를 두툼하게 하여 찐다. 느티떡이나 상추떡은 푸른잎의 풋풋한 향과 팥고물이 잘 어울리고, 무떡도 단맛이 있어 별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