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삼(海蔘)은 말 그대로 '바다의 인삼'이란 뜻이다. 그런데 최근 해삼에도 인삼의 사포닌(saponin)과 유사한 성분이 있음이 밝혀졌다고 하니 옛날 어른들의 슬기로움에 머리가 뱅 돌 지경이다. 해삼을 영어로는 'seacucumber(바다 오이)'라고 하는데, 살아 있을 때 보면 몸이 원통형으로 길쭉하고, 우둘투둘한 돌기가 가득 난 것이 진짜 물오이를 빼닮았다. 반면 일본 사람들은 물 밑에 쥐처럼 생긴 것이 찬찬히 기어 다닌다고 해서 해삼을 바다 쥐란 의미로 '해서(海鼠)'라 부른다.
산에서 나면 산삼이요, 바다에 살면 해삼이라, 다들 이 '삼(蔘)'자가 붙는 것엔 사족을 못 쓴다. 그래서 우리는 보신이 된다고 바다삼이라 부르는데 저쪽 사람들은 그것이 오이 꼴이다, 쥐를 닮았다 해서 이리 이름을 붙인 것이다. 여기에 임어당(林語堂, 1895~1976) 선생께서 하신 말씀이 언뜻 떠오른다. "우리 중국 사람들은 물고기를 보면 잡아먹을 생각을 먼저 한다. 반면 서양인들은 그들의 발생, 생태 등을 알고 싶어 한다." 어쩌면 우리에게도 딱 들어맞는 말씀이 아닐까?
해삼은 불가사리, 성게와 같은 극피동물(echinodermata) 가운데 하나이며, 겨울에서 봄까지 우리나라의 얕은 바다라면 어디에서든 볼 수 있지만 바다 수온이 올라가는 한여름 철이면 싹 자취를 감춰 버린다. 이때 해삼은 서늘한 깊은 바다로 들어가 여름잠을 잔다. 크기도 천차만별이어서 100센티미터인 것도 있다고 한다.
일부 동물들은 겨울이 되면 겨울잠을 자지만 해삼은 반대로 여름철이 되면 서늘하고 깊은 바다로 들어가 '여름잠'을 잔다.
촉수를 둥글게 쭉 펴서 위에서 떨어지는 것들을 모아 먹는 무리, 바닥을 기어 다니면서 바닥의 모래나 진흙에서 유기물을 걸러 먹는 무리, 해조류를 뜯어 먹는 무리 등 섭식 방법도 가지가지다. 해삼은 마치 지렁이가 땅굴을 파고 유기물을 먹고 나서 다시 똥을 싸서 땅을 기름지게 하는 것처럼 개흙을 먹어 유기물 범벅인 바닥을 정화한다. 이처럼 비단 자연계에 쓸모없는 존재란 없다.
해삼은 청삼, 흑삼, 홍삼으로 구별하기도 하는데, 이처럼 체색이 다른 것은 먹이 차이 탓이다. 바닥 흙의 유기물을 먹는 놈들이 흑해삼과 청해삼이며, 해조류 중 홍조류를 주로 먹는 것이 홍해삼이다. 이렇게 땅에는 없는 특수한 영양분들을 먹기에 해삼이 약이 된다고 하는 것이다. 한데, 해삼을 먹는 나라가 그리 많지 않아서 지중해 연안의 몇 나라와 동남아, 중국, 일본, 우리나라 정도라 한다.
예로부터 해삼은 혈분을 돕는 한약재로 썼다고 하며, 해삼 백숙, 해삼 알찌개 등 중국에서의 해삼 요리만 해도 스무 가지가 넘는다. 석회질의 작은 골편 탓에 오도독오도독 씹히는 쫄깃한 해삼 회에다 먹음직스러운 해삼탕도 별미이다. 한편, 해삼도 마른 짚에는 맥을 못 추는데, 지푸라기의 고초균이 산 해삼을 통째로 녹여 버리기 때문이다.
해삼은 잡아먹힐 지경이 되면 내장을 항문으로 확 쏟아 버리는 자해를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 나부랭이가 펼치는 자해 공갈과는 그 의미부터가 다르다. 어쨌거나 횟집 수조 속의 해삼을 손으로 움켜 쥐려면 값을 물어 줘야 할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런데 속을 다 빼 주고 살아남은 해삼은 내장을 새롭게 재생하니 모질고 질긴 생명력을 지녔다 하겠다. 해삼을 자극하여 아예 창자를 빼낸 다음 몸을 가로로 잘라 양식장에 던져 뒀더니 기어이 두 마리가 기어 다니더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해삼 창자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좋아해서 횟집에서 단골에게만 준다는 해삼 내장 젓갈 같은 것도 있다.
해삼은 위험이 닥치면 자신의 내장을 항문 밖으로 쏟아 버리는 자해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살아난 해삼은 다시 내장을 새롭게 재생한다.
해삼은 항문 안에 있는 '숨쉬기 나무(호흡수)'라는 특이한 호흡기관으로 호흡한다. 그런데 식용하지 않는 깊은 바다에 사는 아주 큰 해삼 항문에는 숨이고기(Encheliophis sagamianus)라는 것이 살고 있다. 이 물고기는 농어목 숨이고기과의 해산어로 체장이 20센티미터 남짓이며, 몸은 옆으로 납작하고 길쭉한 것이 꼬리 끝은 날카롭게 뾰족하고 배지느러미가 없으며 비늘도 없고, 체색은 연한 회색에 작은 갈색 반점이 다소 촘촘히 나 있다.
식용 해삼이 아닌 아주 대형 해삼에만 살며, 드물게는 불가사리에 사는 놈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숨이고기가 아닌 놈이 항문에 들어오면 해삼이 사정없이 맹낭(盲囊)을 터뜨려 홀로수린스(holothurins)라는 독을 뿜어 버린다는 것이다. 그렇게 한 번 당한 물고기는 다시는 해삼에 근접조차 못 한다. 눈도 코도 없는 해삼이지만 적과 동지는 귀신같이 알아낸다.
해삼의 항문 안에는 숨쉬기 나무라는 특이한 호흡 기관이 있다. 그런데 아주 큰 해삼의 경우 이 항문 안에 숨이고기가 살면서 서로 공생 관계를 이루기도 한다.
실은 해삼과 숨이고기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공생을 한다. 큰 고기가 잡아먹으려는 낌새가 보이면 숨이고기는 얼른 해삼의 똥구멍으로 쏙 들어가 피해 버린다. 이렇게 숨이고기는 해삼한테 톡톡히 신세를 지는 대신 연신 항문을 들락날락거려서 깨끗한 물을 흘려 주어 호흡수의 가스 교환을 돕는다. 그렇고말고, 이 세상에 힘 들이지 않고 거저 얻는 공짜는 없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