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이의 생리대여자의 욕구를 읽어낸 획기적인 발명 매달 여자들에게만 찾아오는 손님! 웬만큼 눈치가 없는 사람을 빼놓고는 남녀 구분의 표시인 ‘생리’를 금방 떠올리게 된다. 불과 5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여자들은 이 손님을 기저귀라는 원시적인 수단으로 맞이해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귀찮고 짜증나는 건 둘째치고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아무리 단단히 동여매도 흘러나오는 것은 예사였고, 동여맨 자국마저 옷 위로 표시가 나 마치 광고(?)라도 하는 것 같아 외출조차 두려웠다. 이 같은 문제를 말끔히 해결하여 지구촌 여성들을 ‘생리의 공포’로부터 해방시킨 사람은 일본의 사카이 다카코 여사다. 회사원이었던 사카이 여사도 생리가 심할 때는 출근조차 할 수 없었던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생리를 감쪽같이 치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사카이 여사는 몇 년째 끙끙 앓으며 자나 깨나 이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문을 들은 후배 하나가 그녀에게 다음과 같이 귀띔해 주는 것이 아닌가. “흡수성이 강한 종이(화장지)로 만들면 흘러나올 염려도 없고 화장실에서 감쪽같이 갈아 끼울 수 있잖아요.” 사카이 여사는 귀가 번쩍 뜨였다. 즉석에서 20만 엔을 주고 이 아이디어를 사들였다. 우선 모든 종이를 모아 그 중 흡수성이 가장 강한 것을 찾아내 알맞은 크기로 접었다. 다음은 흘러나옴을 방지하기 위해 겉 부분에 얇은 방수막 처리를 하고, 착용이 편리하도록 부위에 따라 두께와 크기를 조절했다. 약품을 이용한 위생처리도 잊지 않았다. 연구는 여기에서 우선 일단락지었다. 사카이 여사는 때마침 찾아온 생리를 이것으로 맞이해 보았다. 그 결과 생리가 흘러나오지 않고 표시가 나지 않는 데다 날아갈 듯이 편리했다. ‘이 편리함을 모든 여자들에게 나눠 주자.’ 사카이 여사는 특허등록을 마친 후 서둘러 회사를 설립하고, ‘안네’라는 상표로 생산을 개시했다. ‘안네’에 대한 소문은 순식간에 번졌다.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여중생까지도 스스럼없이 찾았고, 어느 약국에서든 ‘안네’ 하고 속삭이기만 해도 금방 알아들었다. 매월 어김없이 5000만여 개가 팔려 나갔다. 또한 수출 요청이 쇄도했으나 국내 시장을 감당하기에도 벅찰 지경이었다. 생리대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3년이 채 되지 않아 세계 여성들을 생리의 공포로부터 해방시켜 주었다. ‘안네’ 회사는 이 발명 하나로 거뜬히 중견기업의 대열에 올라섰다. 한편 한국 최초의 1회용 생리대는 유한킴벌리가 1971년 1월부터 출시한 ‘코텍스’였으며, 이후 1975년 들어서는 접착식 생리대인 ‘뉴후리덤’이 출시돼 끈이 없는 생리대 시대를 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