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바람 김 산
고추와 상추와 딸기와 방울토마토 모종을 심었다
해바라기와 케일과 샐비어 씨앗도 뿌렸다 매일같이 조리개로 한가득 물을 주고 퇴비도 주고 잡초도 솎아주었다 양껏 물을 머금은 식물들은 하루가 다르게 키가 자랐고 가지를 자르고 지주대를 박자 줄기들이 꼿꼿하게 올라왔다 중심을 잡아줘야 열매가 맺힐 거라 생각을 했다 문득, 중심이 사라져야 바람이 춤을 출 거란 생각을 했다 지주대를 뽑아버리자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휘청거리던 식물들 한쪽이 다른 한쪽으로 비스듬히 무너지면서 오롯해지고 있었다 심지도 뿌리지도 않은 민들레 한 송이가 화단 모서리 콘크리트를 비집고 칠렐레팔렐레 춤을 추고 있었다 빛도 물도 흙도 없이 바람만으로 온 세계를 뒤흔들고 있었다 ⸻계간 《시사사》 2020년 여름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