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이름의 유래
오늘날 영국을 가리키는 England라는 명칭은 고대영어의 ‘엥글라란드’(Englaland)라는 말에서 유래했는데 Englaland란 앵글족(Angles) 사람들의 땅이라는 뜻이다.
앙겔른 반도의 위치
원래 앵글족은 북유럽 발트해 지역, 현재 독일 북부와 덴마크 남부의 땅인 앙겔른(Angeln) 반도에 살던 사람들이다. 이 반도는 모양이 각(角; angle)이 진 모양이어서 이런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고, 앵글족은 색슨족(Saxons)과 쥬트족(Jutes; = 유트족)과 더불어 대륙에서 브리튼 즉, 영국 섬으로 600~700킬로미터의 바닷길을 따라 이주해 왔다. 이 엥글라란드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고대영어에서는 ‘앵글리쉬’(Ænglisc)라 했으며 이것이 English의 어원이다.
한자문화권에서는 England의 Eng-의 음을 따른 ‘영(英)’과 -land의 뜻을 따른 ‘국(國)’의 합성으로 ‘영국’이라는 국가명이 만들어져 널리 사용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이 방식을 따라 ‘영국’이라는 나라이름을 사용하고, 그 언어는 ‘영국의 언어’라는 의미를 가진 ‘영어’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
영어의 시대구분
영어는 역사적으로 크게 고대영어, 중세영어, 근대영어, 현대영어로 나눈다.
오늘날의 영국 본토인 브리튼 섬에는 원래 켈트족(Celts)이 철기시대부터 오랫동안 살고 있었다. 1세기에는 로마의 군대가 이 섬을 정복하였다. 5세기에 이르러 게르만어를 사용하는 부족들이 대규모로 이주해 왔다. 이들은 앵글족, 색슨족, 쥬트족으로 이들의 언어가 오늘날 영어의 근원이 되었으므로 고대영어는 바로 이 시기, 즉 5세기부터 시작된 것으로 여겨진다.
바이외 태피스트리에 기록된 정복왕 윌리엄의 모습(검을 들고 의자에 앉아 있는 인물)
그 후 1066년에는 프랑스 노르망디의 윌리엄 2세(정복왕 윌리엄)가 브리튼 섬을 정복하여 통치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대규모의 프랑스어 어휘들이 영어에 들어오게 된다. 중세영어는 노르만 정복부터 시작되어 1500년대까지 계속된다.
1500년을 전후로 영어는 대모음 추이(Great Vowel Shift)라 부르는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유럽의 많은 언어들은 철자와 발음이 대개 대응관계가 있는데 반해, 영어는 철자 그대로 읽으면 틀린 발음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대모음 추이의 결과이다. 이 변화가 약 200여 년에 걸쳐 일어나게 되는데 1500년 전후로 계속되었기 때문에 1500년을 기점으로 삼는다. 또한 1476년 시작된 인쇄술이 충분히 정착된 시기가 1500년 즈음인 것과도 관련이 있다.
1500년부터 시작된 근대영어는 1700년까지 인쇄술, 셰익스피어, 영어성경, 르네상스, 사전편찬, 신대륙 이주 등 중요한 사건과 발전을 겪게 된다. 이 시기 동안에 영어는 철자, 정서법, 문법 등이 획기적으로 통일되고 구조와 발음상 현대영어와 유사한 형태를 띠게 된다.
근대영어 시기 이후의 영어는 현대영어라 부른다. 현대영어는 영어의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이다. 영문학사에서는 유명한 문학 작가들이 활발하게 활동한 황금시대라 할 수 있다. 국제정치에 있어서는 미국이 세계무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면서 영어의 영향력이 커지는 시기이다. 언어적으로는 영어의 규범문법이 크게 발달하고, 본격적인 영어사전들이 출판되고, 영어가 과학기술이나 학술적인 언어로 자리 잡아 세계 공용어로 발전하게 되는 시기이다.
영어의 시대 구분
영어의 시대 구분구분 | 시기 |
---|
고대영어(Old English) | 449~1066 |
중세영어(Middle English) | 1066~1500년 |
근대영어(Early Modern English) | 1500~1700년 |
현대영어(Modern English) | 1700~현재 |
영어발달의 역사적 주요 사건 9가지
영어의 발달에 큰 영향을 준 역사적인 사건을 들어보면, 북유럽 민족들의 침략과 이주, 로마의 지배, 게르만의 이주, 기독교 전파, 노르만 정복, 르네상스, 성서, 인쇄술, 신대륙 이주 등을 꼽을 수 있다.
1. 북유럽 민족들의 침략과 이주
인도유럽인 중 원시 게르만어를 사용하던 사람들이 기원전 10세기경부터 독일 엘베강과 스웨덴 남부지역에 정착해 살았다. 이들은 서기 5세기에 브리튼 섬으로 대거 이주를 시작하여 당시 브리튼 섬에 살고 있던 켈트족을 대체하여 브리튼 섬의 주된 민족을 형성하였다.
2. 로마의 지배
줄리어스 시저의 갈리아 전기(1783년 판)갈리아 전기 4권과 5권에서 브리튼 섬을 침공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기원전 1세기에 세계적인 제국을 형성하던 로마는 줄리어스 시저가 기원전 55년에 브리튼 섬을 침공한 이래 빈번하게 공격의 대상이 되었고 기원후 43년에는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브리타니아, 즉 로마령 브리튼을 지배하였다. 브리튼 섬에 대한 로마의 지배는, 고트족과 반달족 등의 게르만족이 끊임없이 로마를 공격함에 따라 400년 경 군대를 로마로 철수시킴으로써 끝났다.
3. 게르만의 이주
로마가 브리튼 섬을 떠나자 브리튼 섬은 게르만족의 공격 대상이 되었다. 그들 중, 오늘날 덴마크에 해당하는 북유럽으로부터 앵글족, 색슨족, 쥬트족은 대규모로 브리튼 섬에 이주하였고 여기에서 이들을 가리키는 앵글로색슨이라는 말이 생겨나게 되었다. 토착민이었던 켈트족은 이들을 야만인(barbarian)이라 불렀고, 이들 새 이주민들은 켈트족을 ‘노예’ 또는 ‘외국인’이라는 뜻을 가진 weales라 불렀는데 이 말에서 오늘날의 웨일즈(Wales)의 유래가 되었다.
4. 기독교 전파
영국 캔터베리에 있는 세인트 오거스틴 사원성 어거스틴이 세운 베네딕트회 수도원으로 현재 터와 정문만 남아 있다.
로마가 브리튼 섬을 통치하는 동안 기독교가 널리 퍼졌지만 6세기 말 성 어거스틴이 활동하는 동안 브리튼 섬에는 기독교가 광범위하게 그리고 급속하게 전파되었다. 기독교는 로마를 배경으로 한 종교였으므로 로마자가 널리 쓰이는 데에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성서의 번역과 설교문, 신앙적인 시와 문학 등이 영문학의 역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
5. 노르만 정복
정복왕 윌리엄(가운데)과 그의 이복 형제인 주교 오도(좌) 그리고 모르탱의 로베르 백작(우)의 모습
1066년 정복왕 윌리엄(William the Conqueror)이라 불리는 프랑스 노르망디의 윌리엄 2세가 브리튼 섬을 정복하여 통치하게 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대규모의 프랑스어 어휘들이 영어에 들어오게 되어 오늘날의 영어에는 프랑스어 단어, 그리고 프랑스어의 조상언어인 라틴어의 단어가 매우 많다. 이때부터 중세영어가 시작된다.
6. 르네상스
셰익스피어의 초상화셰익스피어가 남긴 작품은 영어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14세기에 대륙에서 시작된 르네상스는 16세기와 17세기에 영국에 변화의 물결을 일으켰다. 영국의 르네상스는 엘리자베스 여왕과 셰익스피어로 대표된다. 당시 라틴어는 교육과 학문의 언어로 간주되었다. 이 시기에 라틴어와 그리스어로 된 고전문학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많은 단어들이 라틴어와 그리스어로부터 영어로 유입되었다. 거의 무분별함에 가까운 고전어 수용은 토착어인 게르만계의 어휘들의 비율을 크게 낮추게 되었지만, 한편 영어의 사용 영역의 획기적인 확대를 가져왔다. 이로써 그동안 비천하고 볼품없는 언어였던 영어는 16세기 말에 이르면 그 어휘의 풍부함으로 인해 문학과 학술 언어로 손색이 없는 유용하고 강력한 언어가 되었다.
7. 성서
영문학의 최고 걸작으로 칭송받는 흠정역 성서(1611년 초판) 표지
영어의 역사에 큰 획을 긋는 사건은 성서의 출판이다. 일찍이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는 1384년에 성서를 비밀리에 영어로 번역하였고 그 필사본이 유통되었다. 1611년에는 54명의 학자가 동원되어 200년 동안의 노력의 결실로 흠정역(King James Version 또는 Authorized Version)이라 부르는 영어 성서가 출판되게 된다. 이 성서는 영문학의 최고 걸작으로 널리 인정되고 있으며, 성서의 보급은 문어체 영어가 대중에게 널리 전파되는 계기가 되었다.
8. 인쇄술
에드워드 4세에게 인쇄물 견본을 보여주고 있는 윌리엄 캑스턴
중세영어에서 현대영어로 옮겨가는 시기의 가장 획기적인 일 중 하나는 인쇄술의 발달이었다. 이미 1476년에 윌리엄 캑스턴(William Caxton)에 의해 시작된 인쇄술의 발달은 당시 방언마다 제각기 갖고 있던 매우 복잡하고 불규칙한 철자나 문법이 통일되는 데에 크게 기여하였다. 당시 ‘비록’이라는 뜻의 단어 though는 그 표기법이 500개가 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쇄술은 주로 북부 방언으로 된 글들을 출판하였는데, 이 때문에 당시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더 세력이 컸던 런던 방언이 북부 방언에게 우위를 빼앗기게 되었다.
9. 신대륙 이주
영국은 1600년대 초부터 북미 동해안 지역에 식민지를 건설하였다. 이에 따라 영국인들이 미국으로 이주하기 시작하였으며, 이 지역을 새로운 영국이라는 뜻을 가진 뉴잉글랜드라 부르게 되었다. 특히 1620년 필그림들이 신앙을 지키려는 목적으로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플리머스 지역에 도착하여 정착촌을 이루게 됨으로써 미국은 종교적인 자유의 땅으로 널리 인식되게 되었다. 영국인들의 신대륙 이주는 영어의 위상에 큰 변화를 가져온 사건이다.
플리머스항에 정박 중인 메이플라워호
그 이유는 신대륙의 이주를 통해 영어 사용자 수가 획기적으로 증가하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엘리자베스 1세가 왕위에 있던 16세기의 영어사용자는 약 600만 명에 불과하였으나 엘리자베스 2세가 왕위에 있는 21세기 초반의 영어사용자는 8억 명이 훨씬 넘는다. 이러한 획기적인 증가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미국인들이 영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