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바이
내 이름은 유나, '나유나' 아빠가 지어 주셨다.
오늘 유치원 선생님이 이름이 예쁘다며 칭찬해 주셨다.
'히히...'
그래서 그런지 나 '나유나'는 너무 기분이 좋았다.
세상 사람들은 가끔 나를 보며 앙증맞고 깜찍하다고 말한다.
벌써 다섯 살이나 됐는데도 말이다.
다섯 살인 내가 보는 어른들은 바보스럽고,
단세포처럼 우둔한 존재일뿐,
어른들은 가끔 나에게 나이가 어떻게 되냐며 머리를 쓸어내리며
귀엽고 착하게 생겼다고 이런 딸을 둔 엄마가 좋겠다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내 나이만 생각하고 나를 마냥 어리게만 생각하는 듯 하다.
난 그런 어른들을 바라보며 속으로 맘껏 비웃어 준다.
(그 우매한 어리석음에...말이지)
가끔 그런 어른들 앞에선 더욱 더 생긋이 웃는 얼굴로 어리광을 부리고...
떼를 쓰고 말을 받아주며 기분을 맞쳐주면 너무들 좋아 하는데
이상하게도 난 그런 어른들의 태도에 작은 쾌락을
느끼며 즐기고는 한다.
하지만...
난 또래 얘들과는 많은 점에서 틀리다.
난 결코 일기장에 내 진짜 감정을 적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치원 선생님이 일기를 적어 오라고 하면 애들은
틀림없이 엄마 아빠가 새옷을 사준 얘기,
어제 엄마한테 혼났던 얘기, 아빠 엄마가 싸웠던 얘기
그나마 이제 겨우 배우기 시작한 엉망인 글로 일기장을 채울게 뻔하지만
하지만 나 는 다르다.
결코 내 진짜 감정을 일기장에 적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두개의 일기장이 존재한다.
하나는 진짜 내 생각과 그 날에 일어난 일들을 적은 일기장이며
다른 하나는 선생님한테 보이기 위한 알리바이용 일기장.
나 같은 꼬마가 무슨 알리바이가 필요하냐고?
이렇게 묻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사람의 어리석음을 한껏 비웃어 주겠다.
알리바이는 나 같은 꼬마일수록
더 필요하다.
특히 나처럼 두 얼굴을 가진 꼬마일수록.....말이다.
얼마전의 미술시간에 있었던 일기다.
199*년 5월 *일
오늘은 유치원에서 그림 그리기를 하는 날 이다.
난 무엇을 그릴까? 고심을 하다...
꽃밭으로 날아다니는 나비를 그리고자 했다.
한참을 그림을 그리고 있던 중,
선생님은 나의 그림솜씨를 칭찬해 주셨다.
'히히...'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저쪽에서 나영이가 나를 자꾸 째려보고 있다.
아마도 선생님이 자기 그림은 칭찬해 주지 않자 질투를 하는듯하다.
나는 그런 나영이를 무시하고 마저 그림을 그렸다.
그림 그리기 시간이 끝나고,
선생님은 '참 잘했어요' 라는 도장을 찍어주신뒤
뒤에 게시판에 걸어주셨다.
그런데 또 나영이가 나를 계속 째려본다.
선생님이 이번에는 그런 나영이를 보며 왜? 그러냐고 물어본다.
나영이는 입술을 삐쭉이 내민 채, 선생님께
고자질 하듯이 얘기를 한다.
"내 그림이 하나가 그린거 보다 더 예쁘잖아요"
선생님은 당황하신 듯 순간 말씀이 없다, 나영이를 데리고는
원장선생님 방으로 들어가더니 잠시 후,
나영이와 함께 방에서 나오셨는데 나영이의 양손에는 과자며
초코렛이 들려져 있는게 아닌가?
나영이는 나를 향해 혀를 크게 내밀며 의기양양한 눈 빛으로
나를 무시하는듯한 표정을 짖는다.
아무래도 무슨 조치를 취해야 겠다.
화장실에서 깨끗이 손을 씻던중, 나영이가 다가왔다.
손을 씻고 있던 나를 보며 입술을 삐쭉 내밀며 비켜 달라고 한다.
나는 손을 다 씻지 못했음으로 비켜 주지 않았다,
나영이는 그런 나를 옆으로 밀치며 자신부터 씻어야 하니 계속
비켜달라고 떼를 쓴다.
난 화가 났지만, 애써 태연한척하며 그런 나영이의 행동을 무시하고는
아무 말 없이 손을 씻었다.
그러자 그런 나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나영이는 물감이 가득 묻은 손을 내옷에다가 문지르고는 가버렸다.
나 라는 아이는 다른 애들처럼 화내지 않는다.
단지 조용히 생각할 뿐이지...
손을 다 씻고 교실로 들어왔다, 벌써 급식이 시작되었다.
나는 생글거리는 얼굴로 나영이 에게 다가갔다.
"나영아... 우리 밥 같이 먹자..."
나영이는 밥을 같이 먹자는 내 말을 들은척도 안한다.
나는 전혀 개의치 않고 다시 말을 이었다.
"니 그림이 내 것보다 잘 그렸어... 진짜야..."
그러자 나영이는 눈을 크게 뜨고는 나에게 다시 물어본다.
"정말??"
나는 정말 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정말이야.. 엄마가 그러는데 어른들은 그림을 잘 볼 줄 모른 데...
선생님도 원래는 니 그림이 더 예쁜다고 하는데 내가 반장 이여서 그랬나봐..."
그 말에 나영이는 활짝 웃어보이며 자기 자랑에 빠져 헤어 나올줄 모른다.
'멍청한 계집애...'
그런 나영이의 행동을 지긋이 바라봤다.
심하게 속에서 매스꺼움을 느꼈고, 오바이트가 나오는것을 애써 참느라 이마에
땀방울까지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했다.
결국 나영이와 난 식사를 같이 하게 되었다, 같이 식사를 하면서
난 기회를 엿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난 적당한 틈을 봐서 나영이의 옷에 반찬을 하나 떨어뜨렸다.
물론 일부로...
나영이는 자신의 옷에 반찬이 떨어지자 울상을 지으며 내게 화를 낸다.
나는 미안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엄마~ 나영아 미안.. 어떡하지... 맞다 화장실에 휴지 있던데~ "
나영이는 울상을 지으면서도 화장실까지 가기 귀찮아하는 눈치였다.
나는 더욱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나영아~ 화장실에 가야할거 같다니까~~"
그러자 그 바보는 그제야 일어서서 화장실로 향했다.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우리 유치원이 좋은 점이 한가지 있다면 일주일에 한번은 원하는
아무 자리에나 않아서 밥 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이 그 날 이였다.
애들은 딴 곳에서 밥을 먹고 있었고 선생님들은
아마도 원장 실에서 밥을 먹고 있을 것이다.
나는 나영이를 끌고 일부러 놀이방까지 데리고와서 밥을 먹었다.
나는 침착히 머리 속에 그려보고 있었다.
우선 가방에서 락스를 꺼냈다.
아까 화장실에서 몰래 가지고 온 것이다.
그리고 내 주스 컵에다가 락스를 부었다.
그리고 그 락스통을 나영이의 가방에 몰래 넣어두었다.
물론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히히히히....'
이윽고 나영이가 돌아왔다.
나영이의 옷을 보며 나는 미안하다고 말한 후
나도 잠깐 화장실을 간다고 하고선 일어나 나왔다.
나는 애들이 많이 모여있는 곳으로 가서 선생님이
놀이방에서 밥을 먹으라고 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애들이 우르르 놀이방으로 몰려 왔다.
나와 아이들 그리고 나영이는 어울려 밥을 잘 먹었다.
마침 주스가 떨어진 아이가 식당까지 가기 귀찮아서 칭얼거리자
나는 선심 쓰듯 내 주스를 주면서 먹으라고 했다.
내 주스를 받아든 아이는 창민 이라는 아이였다.
창민이는 고맙다고 말하며 주스를 가져갔다.
나는 가슴을 두근거리며 지켜 보았다.
이윽고 창민이가 주스를 한 입 먹기가 무섭게 오바이트를 하며
바닥에 나뒹굴자 놀이방은 온통 아수라장이 되버렸다.
'쿡쿡쿡...'
선생님들이 뛰어들어왔다.
내 계획대로 차차 진행되고 있었다.
창민이는 병원에 실려갔고 이젠 나의 시간이다.
반장인 나는 선생님한테 구구절절 말해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걸 육하원칙에 맞추어 말한다고 아빠가 말했었다.
나는 완전히 겁에 질린 얼굴로 울면서 떠듬떠듬 말을 했다.
나의 완벽한 연기력에 나 조차도 놀랄 지경이다.
"훌쩍... 내가요... 화장실에 갔다오면서 애들한테 놀이방가서 같이
밥 먹자고 하면서 애들하고 놀이방으로 갔었어요.
훌쩍.. 훌쩍... 다 같이 밥 먹다가 창민이가 주스가 없다고 해서 내 껄 줬어요.
훌쩍훌쩍... 그리고 창민이가 그렇게 됐어요.. 훌쩍훌쩍...
내가 화장실 가기 전에 쪼끔 마셨을 땐 괜찮았단 말이에요...
훌쩍... 선생님 내 잘못이에요....? 엉엉엉엉엉~~."
선생님은 나를 안으면서 내 잘못이 아니라고 토닥거렸다.
안경을 쓰고 예리하게 생긴 다른 반 선생님이 나를 보며 물어보셨다.
"이나야.. 혹시 이나가 화장실 갈 때 놀이방 에 누구누구가 있었어?"
나는 정신 없이 훌쩍이다,
"훌쩍... 응... 나영이 밖에 없었어요..훌쩍훌쩍..."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선생님의 품에 안겨서
울먹였고 선생님은 나를 토닥거리며 안경낀 선생님과 서로 마주보았다.
게임 오버~ 큭큭큭...
나는 선생님의 품에 안긴 채 더욱 큰소리로 울며 빙긋이 웃었다.
선생님들은 우리를 마당으로 내보내서 놀도록 하게 했다.
물론 아이들의 가방검사를 하기 위해서겠지...
조금 있다 경찰 몇 명이 마당을 지나 놀이방 으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이윽고 나영이의 엄마가 불려 들어갔다.
나영이는 울면서 엄마와 경찰아저씨 들에게 끌려나갔다.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 나영이는 유치원에 나오지 않게 되었다.
'큭큭큭.. '
속이다 시원했다.
그 다음날엔 창민이 엄마와 우리 엄마가 원장 실에 들어갔다 왔다.
'히히히...' 엄마가 나한테 각별히 신경을 써줬다.
하지만 그걸로 끝나면 너무나 시시했다.
나영이가 유치원에서 사라진지 며칠이 지나서 나는 수업시간에
선생님에게 큰소리로 물어봤다.
나영인 어디 갔냐고...
선생님은 무척 당황해 하는 눈 치더니
나영이는 먼 데로 이사를 가서 더 이상 우리 유치원에서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큰소리로 울면서 말했다.
"선생님 거짓말쟁이~ 나영이가 날 죽이려고 하다가
창민이가 죽게 된 거잖아요..엉엉엉엉~~"
순진한 다섯 살 박이 아이들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래... 이 바보들아... 너희는 그냥 내가 한말을 믿기만 하면 돼...
나영이는 이윽고 그 동네에서도 살 수 없게 돼버렸다.
순진한 내친 구들은 뽀르르르 달려가 자기 엄마에게 내가 한말을 전해 버렸으니까...
안 그래도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있던 엄마들도 있었겠지만 말이다.
아줌마들은 나영이를 두고 '애 살인마' 라던지 '정신병자' 라고 말이 많았다.
아이들 역시 나영이가 지나가면 돌을 던지거나 욕을 했다.
다 이게 내가 공을 들인 결과지.. '큭큭...'
나영인 머리에 돌을 맞고 피를 흘린채 울곤 했다.
아니면 남자애들을 시켜서 나영이를 실컷 때려주게 하였다.
남자애들 대부분이 창민이 친구였다.
그럼 우리는 나영이의 뒤에다가 대고 소리를 질렀다
"나영이는~~~ 나영이는~~~ 살인자 래여~~ 살인자 래여~~~~"
물론 이 살인자란 말도 내가 애들한테 가르쳐준 것이다.
그러다가 나영이 아줌마는 창민이 엄마와 우리 엄마가 합세해서
공격하는 육탄전을(?) 못이겨 동네를 떠나고 말았다.
그리고 나영이는 내 곁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솔직히 나영이를 그냥 죽여 버리는 게 속이 더 시원했겠지만
그러면 잠깐 밖에 재미가 없잖아?
'큭큭큭...' 멍청한 그 얘는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에서 한평생을 시달리며 살꺼야.
어린 나이에 뭘 알겠어?
그랬다고 그러면 그런줄 알겠지...
흠.. 요즘 들어 조금은 피곤하고 무섭다.
나영이가 사라져서 좋기는 한데 밤마다 꿈에 창민이가 나타난다.
위와 심장이 많이 안 좋았던 창민이는 락스를 한꺼번에 너무 많이 삼켜서
위세척하는 도중 에 죽어 버렸기 때문이다.
'멍청하긴...'
냄새도 못 맡고 그렇게 많이 꿀꺽 삼키다니...
지금도 창민이가 나를 노려보고 있다.
천장에 찰싹 붙은채 말이다.
전엔 꽤 귀여웠던 녀석인데 지금은 얼굴이 뒤틀리고
충혈된 눈을 한 채로 나를 노려본다.
입에선 피를 흘리면서... 나도 같이 창민이를 노려본다.
창민이의 피가 내 머리 위로 내 침대위로 주르륵 떨어진다.
나는 걱정이 된다.
'이 피는 어떻게 하지?'
조금있다 엄마 아빠가 외출에서 돌아오면 뭐라고 말하면 되나?
지금 내 옆에는 나보다 한 살 어린 동생이 새근새근 자고 있다.
그리고 내방 구석에 엄마가 아끼는 커다란 개 한 마리 가 낑낑댄다.
나는 자고 있는 내 동생을 보고 그리고 개를 보고 빙긋이 웃었다.
나는 또 하나의 알리바이를 작성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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