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우는 언제나 수면 부족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 …) 봉우는 오관(五官) 중 다른 기관들은 다 잠자지만은 청각만은 늘 깨어 있는 셈이다. 그러니까 자연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렇게 된 연유를 그는 6·25 사변으로 돌리는 것이다. 피란 나갈 기회를 놓치고 적치(敵治) 삼개월을 꼬박 서울에 숨어 지낸 봉우는 빨갱이와 공습에 대한 공포감 때문에 잠시도 마음 놓고 잠들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 손창섭의 <잉여인간>중에서-
<해설 / 정호웅 문학평론가>
6·25의 전란 중에 피란을 가지 못하고 적치하에서 보낸 사람이 있었지요. 천행으로 살아 남긴 했는데, 그 이후로 불안과 공포 속에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 모든 일에 의욕을 잃고 떠도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작가 손창섭(1922-)이 명명한 ´잉여인간´의 한 유형입니다. 폭력적인 역사 전개 앞에서 살아갈 도구와 방법을 잃고 만 이들 선량한 사람들을 잊지는 않았을 테지요? 그들에 대한 연민과 빗나간 역사에 대한 분노를 중첩시키고 있는 이 소설의 중후한 시대적 감각이 새삼스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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