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무엇이 되고 싶었을까? ( 분명, 시인은 아니었고 ) 무엇을 위해 살고 있을까? ( 아마도 나를 위해 살 것이고 ) 지금 난 어디쯤에 서 있는 걸까? ( 정상의 중간쯤 ) 이곳은 어디일까? ( 물 없는 고비 사막 ) 이라는 생각이 막 스친다.
글을 쓰려고 하니 아픈 몸이 마음을 기댄 채 쓰러져 있고 쓰러진 몸은 지친 영혼을 다그치며 축 늘어진 시를 부둥켜안고 울고 있다. 아픈 몸 지친 영혼 이제는 시(詩)까지 아프다. 시인의 집까지 흔들린다. 컴퓨터 옆 낡은 테이블 위엔 조금 먹다가 남긴 커피 머그잔이 세 개씩이나 있고 생각날 때 마다 곳곳에 붙여둔 포스트잇에 담긴 메모는 내 손길을 기다리듯 눈 끝에 툭툭 채 인다. 보내야 할 이메일, 내야 할 세금 청탁받은 원고까지 숙제처럼 나를 괴롭힌다. 무엇을 먼저하고 무엇을 나중에 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갑자기 소설가 김성동의 <황야에서> 의 글들이 눈앞에 밟힌다. 한 남자의 자살 여행을 기록하고 있는데 자신이 죽으려 찾아간 바다에서 절망의 끝을 깨닫는다. 절망의 끝에는 또 다른 희망이 있다는 의미로 해석 할 수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 길은 시작이 되고 이별 후에는 또 다른 만남이 기다리고 있다는 명제와도 같다. 실제로 작가 중에서 다자이오사무는 죽을 생각으로 <추억>이라는 작품을 썼고 결국 그의 마지막 소설인 <인간실격>은 죽음을 위한 마지막 작품이 되고 말았다. 이름난 작가치고 치열하게 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내가 시인으로 데뷔하고 글을 쓰기 시작한지 12년이 된다. 어느 시인의 프로필에는 저서가 100권이 넘는다. 많이 쓴다고 해서 늘 좋은 작품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좋은 작품을 많이 쓸 수 있는 것은 선택받은 시인이고 축복이다. 하지만 인기에 목숨 걸며 나약하게 사는 마음이 가난한 시인은 되기 싫다. 설령 글이 맘이 들지 않아 출간을 포기하고 미루고 또 미루다가 이만 원짜리 브랜드 커피 대신 300원짜리 자판기를 마셔도 수십만 원짜리 백화점 와인 대신 동네 마트에서 단 돈 만 원짜리 와인을 마신 다해도 나는 나일 수밖에 없고 그것이 나의 자존심이며 글을 쓰는 내 가치관에 길들여진 내 양심이다. 아마도 난 어쩌면 영원히 내가 가둔 틀에 박혀 세상 구경 제대로 못하고 오래도록 이렇게 갇혀 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순간이 지금은 편안하고 행복하다. 난 12년 동안 8권의 책을 냈다. 이젠 체력이 바닥난 느낌이다. 끝까지 살아남으려면 지금보다 더 강해져야 하는데...... 자신이 없다. 내 영혼의 방부제인 사랑, 나를 아끼는 자존심 그거 하나로 버텼는데...... 가야할 길은 너무 멀고 높다는 생각만 든다. 내가 바라보는 그곳이......오늘은 더 멀고 더 높게 느껴진다. 그래, 어떤 것에도 너무 집착하지 말고 남들이 달려도 그냥 난 내 속도로 가는 거야. 과속하면 사고가 날지도 모르잖아. 어쩌면 영원히 목적지에 갈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냥 내 방식대로 내 유한한 생명으로 무한한 그 어떤 것에 도전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