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이 길을 걷고 있었다. 한여름이라 무척 더운 탓에 두 사람은 땀을 뻘뻘 흘렸다. 이윽고 외딴 산길에 접어들었을 즈음 무밭이 나타났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했다. ˝얘, 목이 말라 안 되겠다. 무를 한 개 뽑아 먹어야겠으니 너는 여기서 지키고 있다가 누가 오거든 빨리 알려라.˝
아들에게 단단히 이룬 뒤 아버지는 성큼성큼 무밭에 들어가 무를 뽑으려고 허리를 구부렸다. 그런데 갑자기 밭머리에 서 있던 아들이 소리를 질렀다. ˝아버지, 누가 봅니다.˝ 아버지는 어이쿠! 큰일났구나 싶어 재빨리 밭머리로 나와서 주위를 살펴보았으나 아무 인기척도 없는 것이었다. ˝아무도 안 오지 않냐! 남자가 간이 커야지. 똑똑히 지켜.˝
핀잔을 주고 아버지는 다시 밭으로 들어가서 허리를 구부리고 무에 손을 댔다. 그런데 그때 또 아들이 ´아버지! 누가 봅니다´라고 소리쳤다. 그래서 급히 나와 사방을 둘러봤지만 이번에도 역시 아무도 없었다. ˝망보랬더니 아무도 없는데 뭘 보고 큰 소리냐. 딴 생각 말고 똑똑히 지켜.˝ 아버지는 다시 무밭으로 들어가서 조금전에 뽑다만 무를 뽑으려 했다. 그때 였다. ˝아버지! 정말입니다. 누가 보고 있습니다.˝
정말이라는 소리에 아버지는 헐레벌떡 나와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곧 아무도 없는 것을 안 아버지가 단단히 화가 나서 아들에게 역정을 냈다. 그러자 아들은 ´하늘이 내려다보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더 이상 무를 뽑을 수가 없었다.
멋쩍어진 아버지는 아들의 머리를 한대 쥐어박으면서 ´가자! 장난으로 그래봤다´ 하고는 서둘러 앞장서 걸어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