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유일하게 일하는 동물
자연계의 생물은 모두가 빈둥빈둥 놀고 있는데 유독 인간만이 일을 하고 있다. 인간은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일을 한다. 왜냐하면 문명의 진보에 따라서 의무나 책임, 공포나 구속, 야심 따위에 사로잡혀서 인생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생각컨대 이러한 것들은 자연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회 생활에서 생겨난 것이다. 지금 창 저쪽에 보이는 교회의 첨탑 주위를 비둘기 한 마리가 유유히 날고 있다. 그러나 저 비둘기는 점심에 무엇을 먹을 것인가 걱정하지 않는다. 비둘기의 점심보다는 우리들의 점심이 훨씬 복잡하다 것, 또 우리가 먹는 몇 가지 물건 중에는 수천 명의 노동과 경작, 장사, 수송, 배달, 조제 등의 고도로 착잡한 제도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인간이 짐승보다 먹을 것을 구하기가 힘든 것은 이 때문이다. 만일 한 마리의 야수가 도시 안으로 들어와,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을 얻기 위해 저토록 분주히 일들을 하고 있나 하고 생각할 것 같으면 이 인간 사회에 대해서 깊은 회의와 곤혹을 느낄 것이다. 인류만이 울 안에 갇혀 사육되고 있으면서도 먹을 것 하나 제대로 얻지 못하고 복잡한 문명과 복잡한 사회에 강요되어 일을 하며, 먹을 것 때문에 머리를 썩이지 않으면 안 된다. 하기야 인간 생활에도 좋은 점이 있기는 하다. 그것은 ── 지식의 기쁨, 담화의 즐거움, 연극 관람시에 공상을 해보는 재미 따위가 그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인간 생활은 너무나 복잡해서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나 활동의 90%가 먹는 문제에 점령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문명이란 주로 먹을 것을 찾는 일이고, 진보란 식량 획득의 어려움이 더욱더 심해져가는 일에 불과한 것이다. 먹을 것을 얻는 일이 이처럼 곤란하게 되어 있지 않다면 인간은 오늘날처럼 부지런히 일을 해야할 이유가 아무것도 없다. 위험은 우리들이 지나치게 문명화되어 있다는 데에 있는 것이다.
도시의 거리를 어슬렁거리며 걷다 보면, 미용실이나 화원, 선박회사가 있는 큰 거리 뒤의 약방, 식료품점, 철물점, 이발소, 세탁소, 대중식당, 신문잡지 가판점 등이 즐비해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계속해서 한 시간 쯤 더 산보를 해보라. 만일 그것이 대도시라면 우리들은 아무리 가도 똑같은 곳에 있는 셈이 된다. 왜냐하면 어디까지 가더라도 여전히 약방, 식료품점, 철물점, 이발소, 세탁소, 대중식당, 신문잡지 가판점 등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 가게에 있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고 있을까? 왜 그런 곳으로 왔을까? 대답은 지극히 간단하다. 세탁소 주인은 이발사와 식당 급사의 옷을 세탁하고, 식당의 급사는 세탁소 주인과 이발사의 식사를 나르고, 이발사는 세탁소 주인과 식당 급사의 머리를 깎는다. 이것이 문명이다. 기가 막히지 않는가? 확실히 이들 세탁소 주인이나 이발사나 급사 가운데에는 일생동안 그 일하는 곳에서 단 5리도 다른 곳으로 나가보지 못한 자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영화˝라는 오락거리가 있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천만다행이다. 스크린에서는 새도 울고, 울창하게 흔들거리는 나무도 보이고, 터키ㆍ이집트ㆍ히말라야ㆍ안데스ㆍ폭풍우ㆍ난파선ㆍ대관식ㆍ개미ㆍ송충이ㆍ사향쥐ㆍ도마뱀과 지네의 싸움ㆍ언덕ㆍ파도ㆍ모래ㆍ구름ㆍ달까지도── 이 모든 것이 스크린 위에는 나타난다.
오, 현명한 인류여, 무서우리만큼 현명한 인류여! 기가 찬다. 머리에 서리가 낄 때까지 조금도 쉴 사이없이 먹기 위해서 죽도록 일만하고, 끝내 논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마는 이 문명이야말로 참으로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