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날더러 진솔하다고 하셨습니다. ˝투명합니다. 진솔하군요.˝ 나는 당신이 내린 정의가 칭찬인지 비방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고백하지만 나는 별로 솔직한 편이 아닙니다. 감추고 싶은 것은 감추고, 숨겨야 위신이 설 것 같으면 숨깁니다. 나는 내 결점과 실수, 누추함과 허술함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무진 애를 쓰고 있습니다. 감추고 숨겨서 잠시라도 내 체면을 지키려고 그렇게 하며, 창피한 것을 면하려고 그렇게 합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습니다. 우리는 갑자기 큰 저택을 처분하고 변두리 언덕바지에 있는 작은 집으로 이사했습니다. 나는 친한 동무들에게 이 사실이 알려질까 봐 학교가 파하면 요리조리 피해서 도망치듯 집으로 오곤 했습니다. 그러나 내 거동을 수상히 여긴 동무들은 어느 날 내 뒤를 밟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집 대문 앞까지 와서 큰 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 순간 나는 차라리 죽고 싶었습니다. 저녁도 굶고 오래오래 울었습니다. 나는 ´진솔하다´, ´투명하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어렸을 적 그때 일이 생각납니다. 내게는 남들에게 나를 근사하고 멋지게, 크고 현란하게 보이고 싶어하는 허영이 있습니다. 또 현실적 처지야 어떻든 정신만은 귀족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기도 합니다. 내가 이런 사람인데도 당신의 눈에 진솔한 사람으로 보인다면-- 그렇다면 그럼 진솔하지 않은 사람들은 도대체 어떨까 잠시 상상해 봅니다. 숨기고 감추는 일은 사실 피곤합니다. 어렸을 적, 동무들의 눈을 피해 귀가할 때도 나는 공연히 먼길로 빙빙 돌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리고 큰 잘못이라도 저지르고 도망치는 것처럼 불안했습니다. 숨기고 감추다 보면 공연한 죄의식에 잠겨서 떳떳하지 못합니다.
나는 숨기고 감추는 일로부터 훌훌 해방되고 싶을 때 에세이를 씁니다. 에세이에서는 무얼 숨기고 감출 수가 없습니다. 조금만 숨겨도 글이 막힙니다. 마치 혈관이 막혀서 순환이 되지 않는 것처럼요. 여기에 감동이 있을까요? 어림도 없습니다. 진솔하지 않으면 피가 통하지 않는 것이나 같습니다. 이내 들통이 납니다. 나보다 독자가 먼저 알고 답답해 합니다. 숨기고 싶으면 애초에 글을 쓰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오늘 당신은 나더러 진솔하다 하셨습니다. 나는 잠시 당황합니다. 내가 그 동안 푼수처럼 할 말 안 할 말 가리지 않고 떠벌이지는 않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 어수선한 속내를 품위 없이 드러내어 난장처럼 터놓았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나를 움츠러들게 합니다. 그래서 ´진솔하다´는 당신의 말씀이 무작정 기쁘지 않고 자꾸 걱정스러운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가끔 이중적인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이것만은 언제 어디서고 절대로 변함이 없는 외곬입니다. 내가 당신이 계신 이 세상을 사랑한다는 것,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당신 때문이라는 것. 당신은 나의 고집, 나의 자존심, 그리고 나의 슬픔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