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회사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C씨는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나오려다가 흠칫 놀라 문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숨을 죽였다. 자신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볼 일을 보았는데 누가 밖에 있었다고 생각하니, 쑥스럽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고 해서 그 사람이 나간 후 자신도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밖에 있는 그 사람은 나갈 생각을 하지 않고 ‘아, 아!’하면서 목소리를 가다듬는 소리를 내는 게 아닌가. 아니, 이 사람이 뭘 하려고 그러나 하고 적잖이 긴장을 하는데 이윽고 밖에 있는 사람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너, 오늘 보니 참 이쁘다. 화장도 잘 먹었는데…. 무슨 좋은 일이 있니? 그냥 평소와 같다고? 음, 그래? 하긴 넌 언제 봐도 늘 멋져. 생기있고 의욕적이고 늘 뭔가 하려고 하는 의지가 엿보여서 좋아. 넌 요즘 아주 잘 하고 있어. 난 네가 언제나 힘들어도 잘 이겨낼 거라고 믿어. 오랫동안 널 보아왔기 때문에 난 널 잘 알거든. 잘 할 수 있어. 그래서 내가 널 언제나 좋아하잖아. 늘 이 모습 잃지 않길 바래. 다음에 또 보자.” 그리고 곧 어깨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 내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밖으로 나가는 발소리가 났다.
C씨는 좀 놀라웠지만 호기심도 나서 얼른 그 사람의 뒤를 보았다. 단정한 투피스 차림의 여성은 곧 C씨 사무실 입구와 조금 비껴서 나있는 앞 사무실로 들어가 버렸다. 참, 별난 사람도 다 있다 하면서 사무실로 돌아왔는데 내내 잊히지 않았다. 그래서 C씨는 다음 날 틈을 봐서 그래도 자신과 가장 친근한 선배를 잡고 물어보았다. “선배님. 저 혹시, 저희 앞 사무실 사람들을 좀 아세요? 오늘 어깨까지 오는 굵은 웨이브 머리에 회색 투피스를 입은 사람 혹시 아세요? 약간 굵은 목소리에다가요.” “아, L씨 말이군. 이 빌딩에서 그 사람 모르면 간첩이야. 지난 해 그 회사 판매왕이거든. 이것만으로 유명해진 게 아니라 늘 밝고 예의바르고 적극적인 성격에 자원봉사 같은 좋은 일을 소리 없이 많이 하는 걸로 소문났거든. 그런데 L씨는 왜에? 화장실에서 무슨 소리라도 들었어?” “어떻게 아세요?” “하하, L씨의 마인드콘트롤은 유명해. 요즘에 은근히 사람들이 L씨를 따라하는 거 같애. 그러면 자신도 판매왕이 될 수 있으려나 하는가봐. 남자들은 여자 화장실에 들어올 수 없으니 그녀의 1인극을 볼 수 없는 게 안타깝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