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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의 아름다움
싼타오 2020-03-28     조회 : 315

지난 연말 조계사에서 종권을 둘러싼 못된 중들의 상상을 초월한 난동이 벌어졌을 때, 불교신자와 일반 사회인들이 입은 마음의 상처와 환멸은 극에 달했을 것이다. 같은 옷을 걸친 인연으로, 산중에서 안거 정진 중인 무고한 스님들도 깊은 상처와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없었다.

시간마다 보도되는 라디오 뉴스를 들으면서 내 자신도 참괴의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다. 사흘동안 밤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중국 흑룡강성과 유럽과 미주에 있는 신자들이 보내온 편지에도 한탄과 분노의 소리가 가득 담겨 있었다.

같은 중으로서 낯을 들고 다닐 수 없어 한동안 바깥출입을 자제했었다. 먹물옷을 걸치고 있다는 사실에 면목이 없었기 때문이다.

출가 수행자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온갖 욕망과 집착에서 벗어나 자신을 청정하게 지키고 남을 보살펴 주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정신적으로 뛰어난 자질이 아니면 아무나 감당할 수 없는 길이다. 세속적인 욕망에 사로잡힌 저질들이 종교집단을 이루면 동서고금을 물을 것 없이 그 조직은 반드시 부패하기 마련이다.
마음에 입은 상처가 심할 때 더러는 옛 사람의 서화에서 위로를 받을 때가 있다. 무심히 서체와 그림을 보고 있으면 옛 사람의 그 기개와 인품이 함께 들여다 보인다.

허균이 엮은 「한정록(閑情錄)」에는 왕휘지에 대한 일화가 몇 가지 실려 있다. 중국 동진 때 그는 산음(山陰)에서 살았다. 밤에 큰 눈이 내렸는데 한밤중 잠에서 깨어나 창문을 열자 사방은 눈에 덮여 온통 흰빛이었다.

그는 일어나서 뜰을 거닐며 좌사(左思)의 ´초은시(招隱詩)´를 외다가 갑자기 한 친구 생각이 났다. 이때 그 친구는 멀리 섬계라는 곳에 살았는데, 서둘러 작은 배를 타고 밤새 저어가서 날이 샐 무렵 친구집 문전에 당도했다. 그러나 그는 무슨 생각에선지 친구를 부르지 않고 그 길로 돌아서고 말았다.

어떤 사람이 이상하게 여기고 그 까닭을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흥이 나서 친구를 찾아왔다가 흥이 다해 돌아가는데, 어찌 꼭 친구를 만나야만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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