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라는 이름의 외계인 / 주연아( 수필가)
결혼 25주년을 앞두고 나는 우리의 필연적 화두인 사랑에 대해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영원히 변함없는 그런 애정을 갈구하지만 그것이 과연 가능한 얘기일까. 남녀가 처음 만나 불타는 연정에 빠지게 되는 것은 특정 호르몬의 분비로 인해 일어나는 화학반응이라고 한다. 그러나 3년쯤 지나면 이 호르몬은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되고 남녀는 시들해진다고 한다.
그렇다면 결혼 생활에 있어 초창기의 뜨거운 정열이 사라지고 나면 어떻게 될까. 서로에 대한 이해와 의무,그리고 연민,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남녀의 에로스적인 사랑은 점차 동지간의 필리아적인 사랑으로 변질되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보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사랑은 인생이란 사막 속에 있는 오아시스가 아니라 햇살 속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허망한 신기루일지도 모른다. 하얗게 부서지는 덧없는 거품 같은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사랑의 본질이 허무한 거품 같은 것이라 하더라도,부질없이 쓰러질 모래 위의 집과 같은 것이라 할지라도,결혼한 이상 우리는 이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자면 식어가는 정열을 은근한 사랑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하리라. 그 과정에서 우선은 서로를 잘 이해하는 일이 필수적인 것일 게다.
나의 상대를 파악하기 위해 암중모색하는 가운데 우연히 접한 책이 한 권 있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제목의 이 책은 서로 다른 정신적 육체적인 구조를 가진 남녀의 차이점을 분석해 내재된 심리를 알아보는 내용의 것이다. 화성과 금성이라는 서로 다른 별에서 날아 온 남녀는 결혼함으로써 지구라는 새 별에 안착하게 된다.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서로에게 끌렸던 그들은 바로 그것 때문에 또 괴리를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이 책에는 남자라는 이름을 가진 외계인들의 문제적 행동에 대한 풀이가 시원한 해답으로 나와 있었다.
남자,그 영원한 물음표에 대한 이 안내서를 내가 미리 읽었더라면,미안해야 마땅할 일에 미안하다는 말을 죽어도 하지 않는 남편을 요괴인간 보듯이 하지 않고 그의 자존심을 존중해 주었을 텐데…. 남자는 문제가 생기면 내면의 동굴 속으로 침잠해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 나온다는 것을 알았더라면,고민을 모두 빨리 털어놓으라며 잠겨 있는 동굴 문을 벌컥 열지는 않았을 텐데…. 화성에서의 언어와 금성에서의 언어는 같은 어휘이되 그 의미가 그토록 다르다는 것을 알았더라면,싸늘한 충고와 비판 대신 따뜻한 신뢰와 이해의 눈길을 보냈을 텐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