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러는 졌으나 보름을 갓 지난 달은 부드러운 빛을 흐붓이 흘리고 있다. 콩 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중에서-
<해설 / 정호웅 문학평론가>
이효석 (1907-1942)의 그 유명한 ´메밀꽃 필 무렵´의 한 부분입니다. ´밤중을 지나 죽은 듯이 고요한´ 가운데,달빛에 젖은 메밀꽃의 흰색과 대궁의 붉은 색, 콩 포기와 옥수수 잎새의 푸른 색이 서로 뒤섞여 현란한 생명의 약동을 펼쳐 보이는군요. ´정중동(靜中動)의 미학´이라 하겠습니다. 처녀와의 하룻밤 사랑에 젖어 지내는 늙은 장돌뱅이 허생원이 그의 아들로 짐작되는 청년에게 업혀 개울을 건너는 인간사 또한 그만 그 자연의 품안에 녹아들고 말았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