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는 삼류라는 걸 들켜도 좋을 나이가 되었다. 아니 나는 자진해 손들고 나온 삼류다. 젊은 날 일류를 고집해 온 건 오직 삼류가 되기 위해서 였는지도 모른다. 더러는 삼류 하면 인생의 변두리만을 떠올리지만 당치 않는 말씀 일류를 거쳐 삼류에 이른 사람은 뭔가 다르다. 뽕짝이나 신파극이 심금을 울리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너무 편해 오래 입어도 끝내 버리지 못하는 낡은 옷 같은 삼류 누가 삼류를 실패라 하는가. 인생을 경전(經典)에서 배우려 하지 말라. 어느 교과서도 믿지 말라. 실전은 교과서와 무관한 것 삼류는 교과서가 가쳐쳐 준 문제와 해답만으로는 어림없는 것 글/ 김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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