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낮추고 벼를 보아라 벼는 혼자 살려고 하지 않는다 스무사나흘 정도 살 맞대어 살다가 큰 논으로 분가하면 그때부터 다시 한달 보름 동안 자기 몸을 쪼개고 쪼개다 여름을 들인다 몸 낮추고 벼를 자세히 바라보면 이 여름 푸른 이유를 알 수 있다 눅눅한 장마철, 축축한 욕심 씻어낸 자리에 벼는 하늘과 시퍼런 사랑을 뜨겁게 해댄다
벼꽃이 피고 이삭이 영글고
몸 낮추고 벼를 보아라 벼 이삭이 혼자 익는 게 아니다 어미 없는 자식이 어디 있으랴 비우고 비워 탱탱한 사랑을 세상 밖으로 내놓는 가을 미련없이 털어버리는 벼는 또다시 제 몸 썩혀 반년의 생을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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