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가 그럴 수 있을까 쇠나 플라스틱이 그럴 수 있을까 수많은 손과 수많은 팔 모두 높다랗게 치켜든 채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빈 마음 벌거벗은 몸으로 겨우내 하늘을 향하여 꼼짝않고 서 있을 수 있을까 나무가 아니라면 정말 무엇이 그럴 수 있을까 겨울이 지쳐서 피해간 뒤 온 세상 새싹과 꽃망울들 다투어 울긋불긋 돋아날 때도 변함없이 그대로 서 있다가 초여름 되어서야 갑자기 생각난 듯 윤나는 연록색 이파리들 돋아내고 벌보다 작은 꽃들 무수히 피워내고 앙징스런 열매들 가을내 빨갛게 익혀서 돌아가신 조상들 제사상에 올리고 늙어 병든 몸 낫게 할 수 있을까 대추나무가 아니라면 정말 무엇이 그럴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