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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순맘의 생생 출산후기
아이뭐 2011-02-20     조회 : 8115

출산 14일 전. 36주 1일차: “아가가 조금 늦게 나오게 할 순 없나요?”

  선생님께 아가가 예정일보다 빨리 나올지 모른다는 얘길 들었다. 자궁벽이 많이 얇아졌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요즘 배뭉침이 잦긴 했다. 지하철 계단을 오를 때마다 배가 단단하게 뭉치며 부풀어 올랐고, 잠 잘 때 바로 누워자는게 숨에 벅차 옆으로 누워 잔지 며칠 지난 거 같다. 하지만 회사에 산더미 같이 쌓인 업무가 있다는 것과, 아직 인수인계를 완벽히 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려, 아가가 예정일보다 조금은 늦게 나오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토순아. 엄마도 토순이를 빨리 보고 싶지만.. 조금만 천천히 나와주지 않을래? 엄마 일좀 정리하고, 그동안 못쉰거 맘껏 쉰 담에 나오면 안될까?” 아직은 철이 덜 든 예비 엄마였다.

 

 

 

출산 5일 전. 38주 3일차: 육아휴직과 함께 시작된 가진통

   "얏호!”야근의 야근을 거듭하던 회사생활을 끝내는 날. 기분이 날아갈듯 했다. 앞으로 1년간은 머리 아프게 컴퓨터를 마주보며 일과 씨름하는 회사를 떠나올 수 있을 테니까. 사막의 오아시스를 찾아 헤매는 것처럼, 목마르게 이 날을 기다려왔다. 곧 있을 출산의 두려움과 육아의 어려움은 까마득히 모른 채.. 예정일이 일주일도 더 남았으니 그동안 마련하지 못한 육아용품도 사고, 밀린 책도 읽고 푹 쉬며 자유를 만끽해야지?! 라고 굳은 다짐을 하며, 역시나 마지막 야근을 하였다. 하지만 몰랐다. 아랫배가 살살 아파오는게 가진통의 시작임을.

 

 

 

출산 4일 전. 38주 4일차: 폭풍전야

  남편과 오붓이 삼계탕으로 저녁을 먹고, 집에서 TV 를 보고 있었다. 아랫배가 살살 아파오기 시작했다. 참을 수 없을 만큼 아픈 건 아니었으나, 마치 아랫배에 먹구름이 잔뜩 끼인 것처럼 아픈 느낌. 생리통과 비슷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간을 재보니, 7분, 15분, 8분 불규칙한 간격으로 10초정도 아팠다. 처음엔 “설마” 하며 TV만 보던 남편이, 계속되는 진통에 긴장한 채 시간을 체크해주었고, 그런 진통은 2시간정도 지속된 뒤에 싹 사라졌다. 불안한 마음에 바로 병원에 갈까 싶기도 했지만, 왠지 엄살 부리는거 같기도 하고.. 진통이 이렇게 아프지 않나 싶기도 해서 그냥 다음날이 정기검진에 가기로 했다.

 

 

 

출산 2일 전. 38주 6일차: “생리통 정도에 자궁문이 열렸다니. 아가 낳을 만 하겠네?!”

  정기검진 일. 여전히 장스 2층 대기실에는 검진을 기다리는 산모들이 많았다. 올챙이처럼 배만 볼록한 날씬이 산모 , 터질 듯한 배에 뒤뚱 뒤뚱 걷는 것도 힘들어 보이는 산모, 곱게 단장한 예쁜 산모, 벌써 훌쩍 큰 첫째와 같이 온 둘째를 가진 산모. 조용한 대기실에서 남편과 수다를 떨며 여러 산모들을 관찰하는 이 시간은 지루하지 않다. 그게 여유로움의 끝인 시간이었던 거 같다. 벌써 자궁문이 1cm 나 열렸다는 이가영 선생님의 청천벽력 같은 말. 해맑게 웃으시며“아가를 곧 보겠네요. 이상 생기면 바로 오세요” 라는 말을 듣고, 아직은 겪어보지 못한 출산의 고통에 대한 두려움으로 입술이 바짝 말라왔지만, 1cm 열린게 생리통 정도의 통증이면 아기는 낳을만하겠다 라는 근거 자신감이 생기기도 했다.

 

 

 

출산 당일. 39주 1일차

AM. 3시: 잠을 깨운 진통

  알 수 없는 진통에 눈을 떴다. 사실 자는 내내 배가 싸~하게 아픈 건 느껴졌으나, 졸음에 밀려 눈뜨지 않고 계속 뒤척였다. 한번 자면 업어가도 모를만큼 깊이 잠드는 나인데.. 자고 있는 나를 깨울 고통이라. 조금 불안한 마음에 비몽사몽으로 진통의 간격을 재기 시작했다. 정확히 7분 간격으로 생리통보다 더 심한 진통이 왔다. 이틀 전 약한 생리통 정도의 진통에 자궁문이 1cm 가 열렸으니, 내 잠을 깨울 만큼의 진통이면 자궁문이 더 많이 열렸으리란 생각과. 자궁문이 3~4cm 열리면 무통주사를 맞을 수 있고, 시기를 놓치면 무통주사를 맞을 수 없으리란 생각에 눈이 번쩍 뜨였다. 자고 있는 남편을 깨우고는 아가가 나온다고. 빨리 병원에 가자고 재촉했다. 부랴부랴 입원물품인 속옷, 아기 속싸개, 배냇저고리, 회음방석 등을 챙기고, 마지막으로 화장실에 가서 일을 보니 진갈색의 끈적한 액체가 속옷에 묻어있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이슬이다.

 

 

 

AM. 5시: 입원은 했지만...“오늘 아가 볼 수 있는거야?”

  아침해가 슬슬 얼굴을 내밀 무렵. 새벽의 푸르름이 가시지 않은 시간. 우리 차는 병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차 안에서도 여전히 7분 간격으로 진통이 왔고, 마음은 급해졌다. 지하 주차장에서 남편이 주차중일 때, 진통은 더 심해졌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남편에게 빨리 오라며 배를 움켜쥐고 있으니 주차장에 계신 아저씨가 빨리 올라가라며 남편을 보낸다. 의사선생님이 내진을 보시더니 자궁문이 아직 1.5cm 밖에 안열렸다고 하신다. 세상에나! 저번 진통보다 많이 아파서 최소한 4cm는 열렸으리라 믿었는데 아직 한참인가보다. 이제는 6분 간격에 30초간 아까보다 10배 강한 통증이 밀려오고 있는데.. 의사선생님은 “환자님이 말한 진통이면 꽤 진행되었다는 건데, 확실한거죠? 믿고 입원 시켜드리는 겁니다.”라고 하신다. 이상하게도 선생님이 내진 보실 때는 꾸준히 있던 진통이 멈춰진 듯 했고, 엄살 부리는 거 같은 이상한 기분에 자신감이 없어졌다. 평소에 엄살이 심한편이라, 나의 불확실한 표정에 남편은, “오늘 우리 토순이 볼 수 있는거 맞는거야?”라고 했지만, 결국엔 입원하기로 결정.

 

 

 

AM. 6시: “10분을 참아야 하지만....3분 관장”

  입원절차를 밟고 진통실에 들어갔다. 진통실은 조용하다 못해 평화로웠다. 과연 이곳에서 내가 아가를 낳는 것인가?! 여전히, 오늘 아가를 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들고 온 짐 그대로 다시 집에 갈 것만 같은 느낌?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배에 태동검사기를 붙이고 말로만 듣던 관장을 하고서야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왠지 뱃속이 시원해진 느낌이 든 관장. “환자분, 최소 10분은 참고 화장실 가셔야 합니다”... 하지만 나는 관장을 하자마자 바로 화장실에 가고야 말았다. (정말 참기 힘듭니다. ㅠㅠ)

 

 

 

AM. 7시: 촉진제를 맞고, 고통의 쓰나미가 시작되었다.

  정확히 6분 간격으로 30초간 진통이 지속되었다. 아까보다는 더 아픈 느낌. 신기한 건, 진통이 지속되는 30초간은 정신없이 아프긴 했지만, 진통이 없는 6분 동안은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진통이 싹 사라졌다. 진통이 없을땐 남편과 웃으며 수다도 떨고, 사진도 찍었다. 앞으로 겪을 고통의 쓰나미를 전혀 모른채 수액과 촉진제를 맞았다. 30분 후부터는 진통의 세기가 점점 강해질 거라고 했고, 정말 신음소리가 저절로 새어나올 만큼 진통이 심해졌다. 철없는 남편은 아직까지는 내가 괜찮아 보였는지, 진통중인 나에게 긴장을 풀어준다며 메롱~을 하며 약 올리기 시작했다.

 

 

 

AM. 9시: 양수도 터졌고, 눈물도 터졌다.

  본격적인 고통이 계속 밀려왔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점점 심해지는 진통에 남편 역시 긴장을 했고, 손을 잡아주며 힘을 내라고 한다. 이인식 원장님이 내진을 하셨고, 아직 30%밖에 진행되지 않았다고 한다. 한참 진통 중 업무로 회사에서 전화가 왔고, 아픈 와중에 전화를 받을 만큼의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무통주사를 맞았다. 심해지는 진통에 간호사님을 계속 귀찮게 하며 무통을 외쳐댔고, 결국은 40% 정도 진행 되었을 때 무통 주사를 맞았다. 조금은 참을만 하겠지 라고 생각을 하였으나 웬걸. 진통은 더욱 더 심해져만 갔다.

  내진을 보던 중 쏴아~ 하며 양수가 터졌다. 흘러나오는 양수와 함께 갑자기 눈물이 터졌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정말 오늘 아가를 낳긴 낳는구나!”라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면서, 앞으로 더 심해질 진통이 두려워 눈물이 절로 나왔다. 간호사 언니가 링거를 손에 쥐어주며, 이제 슬슬 아가 낳을 준비를 하라며, 아가를 밑으로 내려오게 하기 위해 복도를 걸으라고 한다. 남편과 손을 붙잡고 복도를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진통이 올 때는 복도 난간을 붙잡으며 ”으윽“ 신음 소리를 냈고, 진통이 없을 때는 아가를 빨리 내려오게 하기위해 부지런히 걷는데 열중하고.

 

 

 

AM. 10시: "엄마는 공짜로 되는게 아니다?!“

  도저히 걸을 수가 없었다. 배를 끊을 듯한 고통.. 간호사님께 도저히 못 걷겠다고 하니, 내진을 봐주신다. 어린아이처럼 아프다고 우는 내게, “엄마는 공짜로 되는 거 아니에요. 힘내요!!” 라며 침착하라며 호흡법을 알려주신다. 그리고는 드디어 가족 분만실로 옮겨졌고, 간호사님은 나와 단둘이 힘주는 연습을 하였다. 주위에서 백만년간 못본 변을 보는 느낌으로 힘을 주라고 누누이 들어왔다. 하지만 아직은 그런 느낌이 오지 않았고, 3분 간격으로 짧아진, 배 위로 기차가 지나가는 것 같은 진통에 짐승처럼 소리를 질렀다. “엄마가 소리 지르면 아가가 힘들어해요”라고 간호사님께 혼나가며, 옆에서 나를 돕는 남편의 어깨를 물어뜯으며 나는 한 마리의 짐승이 되고야 말았다.

 

 

 

AM. 11시: “나 죽을거 같아. 수술 시켜줘!!!” 남편의 어깨를 물다.

  계속 소리 지르기를 반복. 남편은 옆에서 발만 동동 구르며, 천천히 호흡하자며 나를 달랜다. 죽는 고통이 이런거구나 싶을 정도로 밀려오는 통증. 배 안에서 폭탄이 터진 듯했다. ‘이런 와중에 호흡을 하자고? 지금 누구 아이를 낳으며 내가 이 고생인데?’ 라는 생각에 남편의 어깨를 물었다. 엄마는 공짜로 되는건 아니지만, 엄마만 이런 고통을 느끼다니.. 아빠는 공짜로 되는구나 싶었다. 정신없이 소리를 지르다가 진이 빠질 무렵. 간호사님이 급히 어딘가로 호출을 하고, 드디어 의사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출산 과정이 어느 정도 진행이 되어야 의사선생님이 들어온다고 들었다. 의사선생님 뒤로 후광이 비췄으며 이제 곧 아가를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에 힘이 다시 났다.

“진통이 있을 때 힘을 주세요” 라는 선생님의 침착한 말. 나는 순한 양이 되어, 그동안 짐승처럼 소리 질렀던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조용히 “끄응~~!” 힘을 주었다. 정말 항문에 수박이 걸린 느낌. 딱 세 번. 온 몸의 힘을 항문으로 밀어내니 “미끄덩~” 아가가 나왔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진통이 멈췄다.

 

 

 

AM. 11시 43분: 천사가 내게로 왔다.

  세상이 달라보였던 그 순간이었다. 그 전에는 진통 때문에 울었지만, 아가가 나오고 나서는 엄마가 된 감동에 눈물이 났다. 탯줄을 자르는 남편도 감동으로 눈가에 눈물이 글썽였다. 열 달 채 안된 울 아가가 내 가슴위에 올려져 꼬물꼬물 움직이고 있었다. 눈은 뜨지 않았지만 그 조그만 입을 움직이며 젖을 찾는 사랑스러운 울 아가. 갓 태어난 아가는 쭈글쭈글하다던데, 울 아가는 왜 이렇게 예쁠까?

그 동안 매정하게 보였던 간호사님, 얄미웠던 남편이 너무나 고맙게 느껴졌고, 아가를 받아준 서영훈 선생님께 무엇보다 감사했다. “아가가 조그마해서 순산하신 겁니다. 회음부 꿰맬 때 아프면 말씀하세요” 친절하신 서영훈 선생님. “감사해요 선생님. 우리 아가 너무 예뻐요”라는 말을 무한 반복했다. 내 옆에서 아가를 씻고, 체중을 재는 것을 보며 감격에 차있는 사이, 내 몸에서는 태반이 나왔고, 회음부를 꿰매고, 자궁에 고여 있는 피를 배를 눌러 뺐다. 아무런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고, 진통은 거짓말처럼 멈췄지만 몸이 으슬으슬 떨리며 스르륵 잠이 들었다.

 

 

 

엄마가 된다는 것.

  뱃속에 담고 있을 때는 전혀 실감하지 못했다. 꼬물꼬물 움직이는, 나와 내 남편의 사랑으로 만들어진, 따뜻한 온기가 깃들어 있는 예쁜 천사가 나올 줄 상상도 못했다. 힘들게 좁은 엄마의 골반을 통해 세상의 빛을 보고, 탯줄이 잘리어진채 우는 아가를 보는 그 순간, 내가 보는 세상은 예전과 달라져 있었다. 부모님과 남편이 챙겨주기만 하던, 2% 부족하던 내가, 이제는 우리 아가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거 같은 기분이다. 이 세상에서 내 얼굴에 침을 묻히고, 내 옷에 오줌을 싸고, 내 머리카락을 잡아 당기는게 용납되는 유일한 존재. 바로 우리 아가다. 매일 매일 잠들어있는 아가의 평온한 얼굴을 보며 행복함을 느끼고, 비로소 “엄마”가 되었음을 실감한다. 나는 이제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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