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데일리 = 배국남 대중문화전문기자] 하재영, 그는 분명 1970년대 스타다. 박정희 권위주의 정권아래 숨 막히던 시절 1975년 젊은이들의 방황과 좌절을 잘 그렸던 ‘ 바보들의 행진’의 주연을 맡아 단숨에 스타 대열에 합류했다. 이후 영화에서 주연을 맡으며 스타로서 명성을 쌓았다.
평범하면서도 우수에 찬 외모, 그리고 차분하면서 다양한 빛깔의 감정을 내는 목소리의 하재영, 그가 한동안 브라운관과 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 최근 모습을 드러냈다. 윤석호PD의 KBS월화 드라마 ‘ 봄의 왈츠’다. 그는 이 드라마에서 주연도 비중있는 조연도 아니다. 극중 피아니스트인 재하(서도영)가 청산도에서 찍는 뮤직비디오의 배경이 되는 집 주인인 아티스트배역이다. 아티스트역을 맡은 하재영이 최근 방송분에서 얼굴을 내밀고 몇마디 대사도 없지만 그의 출연만으로도 ‘봄의 왈츠’가 풍성함을 느낄 수 있다.
윤석호PD의 하재영의 출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배용준과 최지우를 일본의 최대 한류스타로 부상시킨 ‘겨울연가’에선 최지우의 아버지역으로 나와 일찍 죽는 것으로 처리됐다. ‘ 겨울 연가’뿐만 아니다. 그는 윤석호PD의 계절 연작 세 번째 작품인 ‘ 여름향기’에서도 송승헌이 좋아했지만 교통사고로 죽은 애인의 아버지역을 맡아 좋은 연기를 선보였다.
하재영은 윤석호PD의 계절연작에서 이처럼 조연 아니면 단역으로 출연했다. 그의 스타성과 명성에 비하면 배역의 비중은 적을지 모르지만 그가 잠깐이라도 시청자와 만나는 순간 그 드라마는 좀 더 볼만해지고 완성도가 높아지는 힘을 발휘한다.
한시기에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스타가 단역이나 조연으로 나오는 것이 힘들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편견을 극복하고 단 한 장면에서라도 최선을 다해 시청자와 드라마를 위해 노력하는 연기자는 스타시절에 느끼지 못했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어 좋다.
하재영은 진정 아름다운 배우다. 그의 연기는 잔잔하면서도 감정의 파문을 깊게 일으킨다. 그의 연기의 문양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은 2000년 KBS에서 방송한 전경린 원작의‘TV문학관-다리가 있는 풍경’이다. 이 드라마에서 하재영은 주연을 맡아 폭압적인 유신체제의 70년대에서 현실에 좌절한 지식인 아버지(하재영)의 방황과 사랑을 잘 드러냈다.
하재영이 ‘봄의 왈츠’의 후반부에 나오는 것만으로 시청자들은 행복함을 느낀다. 한때 스타였던 연기자가 단역이라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진한 감동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