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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섹시 스타들을 살펴볼까요? 그렇다면 킴 베이싱어를 먼저 꼽아야겠죠. <내츄럴>(83)에 잠깐 등장했을 때도 임팩트는 대단했지만, <나인 하프 위크>(86) 이후 그녀는 미키 루크와 함께 한국 팬들의 뇌리에 깊게 박힙니다. 이 영화, 재개봉관에선 대단했죠. 당시 한국 관객들에겐 다소 충격적인 영화이기도 했고요. <노 머시>(86)는 당시 ‘섹시계’의 남녀 양대 산맥이었던 리처드 기어와 킴 베이싱어가 만났다는 이유만으로, 영화는 조금 실망스럽지만 엄청난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고요. 영원히 섹스 심볼로 남을 것 같았던 여배우. 하지만 이 배우가 오스카 트로피를 가져갈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97)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할 때, 그녀는 시상식장에서 거의 울먹였죠.
베이싱어와 함께 캐슬린 터너가 있죠. <나인 하프 위크>가 있다면 <보디 히트>(81)가 있고요. 아무리 모델 출신이라고는 해도, 캐슬린 터너의 각선미는 정말 죽여줬습니다. 그리고 <보디 히트>에선 영화사상 손꼽힐 팜므 파탈 연기를 보여주죠. 안타깝게도 그녀의 1980년대 대표작들은 한국에서 만나기 쉽지 않았습니다. <로맨싱 스톤>(84)과 <프리찌스 오너>(85) 정도가 극장가에 걸렸죠.
같은 섹시 스타 계열이라고는 하지만, 미셸 파이퍼는 어떤 고상함이 있습니다(음… 엄밀히 보면 섹시 스타라고 하긴 조금 그렇네요).올리비아 뉴튼존에게 바통을 이어받은 <그리스 2>(82)가 있긴 하지만, 한국에서 그녀의 출세작은 <스카페이스>(83)입니다. 알 파치노의 광적인 눈빛 저편엔 처연한 느낌의 미셸 파이퍼가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레이디 호크>(85)가 이어집니다. 이 영화, 은근히 여고에서 단체관람들 많이 했던 영화죠. 미셸 파이퍼의 필모그래피는 참 꾸준하죠. 어느 순간 확 올라간 적도 없고, 그렇다고 심하게 처진 적도 없는, 우등생 같은 배우입니다.
다음은, 조금은 미안한 표현이지만 ‘반짝 스타’들입니다. 하지만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정말 ‘반짝이는’ 존재들이었죠. 먼저 신시아 깁. <영 블러드>(85)에서 로브 로와 보여준 베드 신, 잊지 못하시는 분들 많을 겁니다. 하지만 <살바도르>(85)에서 수녀로 등장해 험한 꼴(?)을 당할 땐, 정말 마음이 아팠죠.
그녀의 이름은 기억 못해도, ‘베이비’라는 애칭을 많이들 기억하실 겁니다. 아버지 조엘 그레이는 <카바레>(72)로 오스카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던 댄서 겸 배우였고요. <더티 댄싱>(87) 열풍 속과 함께 그녀는 급격한 스타덤에 오릅니다. 한국에도 ‘베이비 패션’을 흉내낸 언니, 누나들이 꽤 있었고요. 하지만 이후 이렇다 할 작품이 없었죠. 최근 모습을 보니, 성형 탓인지 많이 변했더군요.
<백 투 더 퓨처>(85)는 마이클 J. 폭스만 스타덤에 올린 건 아니었습니다. 폭스의 엄마로 나온 리 톰슨은 정말 상큼했죠. 작은 마을의 순진한 소녀 역에 정말 잘 어울렸던 그녀. 비디오로만 출시되었던 <사랑 시대 Some Kind of Wonderful>(87)도 나쁘진 않았고요. 하지만 <하워드 덕>(86)은… 살짝 잊고 싶네요.
<코만도>(85)에서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의 딸로 등장했을 때 열세 살. 하지만 그녀는 전형적인 ‘아역스타 신드롬’에 걸렸고 이후 활동은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죠. 아직 30대니, 그녀도 제니퍼 코넬리나 다이안 레인처럼 화려한 재기에 성공하길 바랍니다.
홍콩 배우로 넘어가 볼까요? 그렇다면 단연 왕조현이죠. 그 시절, 우린 귀신에 홀린 게 분명했습니다. <천녀유혼>(87)이 상영되던 한국의 재개봉관. 왕조현이 등장하는 장면이 되면, 극장 이곳저곳에서 플래시가 터졌습니다. 아버지 카메라를 몰래 들고 나온 녀석들은 그렇게 왕조현 사진을 찍어, 교실에서 한 장에 100원씩 팔았죠. 코팅 책받침과는 차원이 다른, 대단한 신드롬을 일으켰던 왕조현이었습니다. 이후 왕조현은 한국에서의 엄청난 인기를 등에 업고 음료 CF에도 출연했는데요, 주윤발의 ‘X키스’와 왕조현의 ‘크리X’가 한동안 대결하기도 했습니다. 아… 왕조현. 그 시절 재개봉관을 전전하며 <천녀유혼>을 열 번도 넘게 봤던 수많은 마니아들에겐,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이름입니다.
천진함과 요염함을 자유자재로 구사했던 여배우. 하지만 한국에서 종초홍은 단연 <가을날의 동화>(87) 이미지로 기억되고 있죠. 여기에 <종횡사해>(91)가 덧붙여지기도 하고요. 그녀는 진실한 사랑을 믿는 여인의 전형이었습니다. 너무 이른 은퇴(1990년대 초)가 아쉬울 뿐이죠. 갑자기 <가을날의 동화>가 다시 보고 싶네요.
1980년대 홍콩 액션영화를 이야기할 때, 양자경이라는 이름을 빼놓을 순 없겠죠. 1985년 <예스 마담>이 나왔을 때, 그녀는 ‘여자 성룡’이라 불러도 무방할 액션 스타였습니다. <땡큐 마담> 시리즈의 호혜중도 있었지만, 양자경을 따라잡진 못했죠. <예스 마담> 얘기를 하니까, 양자경과 함께 출연했던 나부락이라는 여자 배우도 생각나네요. 서양 배우였는데, 발차기가 예술이었습니다. 180도 앞차기로 등 뒤에 있는 적의 얼굴을 가격할 정도였죠. 아무튼 양자경, 이제 할리우드와 세계를 무대로 달리는 배우가 되어 있습니다.
1970년대의 원더우먼과 소머즈를 잇는, 1980년대 TV 여성 스타를 알아볼까요? 여러 배우들이 있었지만, <블루문 특급>(85)의 시빌 셰퍼드가 생각나네요(당시 그녀가 브루스 윌리스보다 다섯 살 위였다는 사실, 알고 계셨습니까? 저도 지금 검색해보고 알았습니다. -_-) 이후 이렇다 할 히트작은 없지만, 당시 시빌 셰퍼드는 최고의 전성기였죠. 1980년대 말에 <택시 드라이버>(76)가 되늦게 한국에 개봉되면서 그녀의 젊은 시절을 만날 수도 있었죠.
페이 그랜트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분은 많지 않겠지만, < V >의 줄리엣은 아실 겁니다. 제가 중학교 때 TV에서 방영되었는데, 많은 친구 녀석들이 그녀와 사랑에 빠졌죠. 간혹 파충류 먹는 다이애나가 좋다는 녀석들도 있었지만, 대세는 줄리엣이었습니다. 아련하네요… < V >의 추억….
이렇게 두 번에 걸쳐 1980년대 한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남녀 배우들을 살펴봤습니다. 미진한 점 있었겠지만, 많은 이해 바랍니다. 언제 또 기회가 되면 잠시나마 옛 생각에 젖을 만한 기사를 준비하겠습니다. 기대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