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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돈은 없지만 행복"... 배우 부부의 연기인생 2막
쓰다 2020-05-20     조회 : 370
 영화 <나는 보리>에서 부모이자 부부로 호흡을 맞춘 곽진석(우)-허지나(좌) 배우.

▲ 영화 <나는 보리>에서 보리와 정우의 부모로 호흡을 맞춘 허지나(좌)-곽진석(우) 배우. ⓒ 영화사 진진

 
귀가 들리지 않지만 그 누구보다 서로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주고 온몸으로 표현하는 부부가 있다. 가족 중 유일하게 소리를 들을 수 있기에 종종 소외감을 느끼는 열한 살 보리(김아송)는 그런 엄마와 아빠 품에서 구김 없이 자란다. 

말로만 들어도 행복한 풍경이 영화 <나는 보리>에 담겨 있다. 부유하지도 않고 신체적으로 불리한 조건이기도 하지만, 행복지수만큼은 높은 보리 엄마와 보리 아빠 역할을 실제 부부기도 한 곽진석, 허지나 맡았다. 이들의 반려견까지 영화에 등장한다. 말 그대로 '온 가족 캐스팅'이었다.

대중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지만 두 사람은 각각 스턴트 배우 및 액션 연기로, 그리고 무대 공연에서 십수 년 넘게 헌신한 베테랑이다. 두 사람 모두 서울액션스쿨 8기 출신으로 20대 초부터 지금까지 영화, 드라마, 연극을 가리지 않고 장기를 발휘해 오고 있다. 

인연의 힘

두 사람이 영화에 출연한 사연이 좀 묘하다. 단편 <높이 뛰기>에 이어 코다(CODA, 청각장애인 부모를 둔 건청인 자녀)를 소재로 장편을 준비하던 김진유 감독의 간곡한 청이 있었다. 본래 참여하기로 했던 배우들이 모두 일정 문제로 하차했기 때문이다. 2008년 <우린 액션배우다>로 곽진석이 정동진영화제를 찾았을 때 감독은 자원봉사자였고, 이후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으며 인연을 이어왔다고 한다. <나는 보리> 역시 준비하는 과정을 곽진석, 허지나는 처음부터 감독과 나누고 있었다.

"정동진영화제 때 같이 축구도 하고 그랬다. 감독이 지금은 살쪘지만 그땐 날렵하고 이천수라 불릴만큼 잘했다. 좀 닮긴 했지(웃음). 제가 아는 배우들이 출연을 예정하고 있었고, 저야 나이가 안 맞아 출연 욕심을 부릴 수 없었지. 다만 여자경찰 역은 허지나 배우를 추천해야겠다는 그런 사소한 욕심은 있었다(웃음). 그 배우들 출연이 좌절됐을 때 같이 아쉬워도 하고 그랬는데 뜬금없이 우리 둘에게 출연해달라더라. 너무 고민 안 한 건 아니냐. 속으론 얘가 하다하다 안 돼서 영화를 포기했나 싶더라. 

감독이 본인 이야기(실제로 김진유 감독의 어머니가 청각장애가 있다 - 기자 말)를 영화로 만드는 건 일생에 한 번일 텐데 누구보다 중요하다는 걸 아는데 여러모로 당황스러웠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일주일만 고민해보겠다고 했다. 허지나 배우랑 같이 한다니 거기에 의지가 됐지. 일주일도 안 돼서 내가 먼저 전화했다. 감독님의 선택을 채워보겠다고." (곽진석)

"그땐 뭐 '빼박캔트(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였지. 이미 여러 상황을 다 정리하고 오셨기에 감독님의 선택지가 우리밖에 없었다. 전 오빠랑 좀 달리 제안이 왔을 때 무조건 감사했다. 근데 그걸 겉으로 드러내긴 촌스럽고(웃음). 영화 시작 단계 때 오빠에게 시나리오를 받아 이미 읽었는데 너무 좋았다. 와 글 정말 잘 쓴다 생각했지. 그때부터 감독에 대해 호기심이 가기 시작했다. 영화도 딱 시나리오대로 나왔다." (허지나)


그렇게 강원도 주문진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영화 촬영이 시작됐다. 감독의 고향이기도 하다. 보통 저예산 독립영화 현장이 열악하기 마련인데 두 사람은 "너무 좋았고 행복했다"고 입을 모았다. "촬영을 쉴 때 배우나 스태프들이 각자 쉬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선 그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음에도 함께 해변에서 뛰어놀곤 했다"며 "여러 현장을 경험해봤지만 정말 파라다이스였다. 아마 이후에도 이런 현장을 만나긴 쉽지 않을 것이다"라고 곽진석이 당시를 회상했다. 
 
 영화 <나는 보리> 관련 사진.

▲ 영화 <나는 보리> 관련 사진. ⓒ 영화사 진진

 
두 사람이 부부였기에 급박하게 돌아가는 일정에서도 시너지 효과가 났다. 주로 수어와 홈사인(청각장애인 가정마다 정해놓은 간단한 수화)을 사용해야 했는데 곽진석, 허지나는 자신의 일상에서 마치 보리 아빠와 엄마인 양 여러 아이디어를 나누고 감독에게 제안했다고 한다. 허지나는 "감독님이 자율성을 주셨고, 개인적으론 새로운 언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라 좋았다"며 "짧게나마 그 세계에 들어갔다 나올 수 있어서 좋은 경험이었다"라고 말했다.

"현장에 프로듀서가 없었다. 감독이 그 역할까지 하느라 정말 힘들었을 텐데 아역 배우를 챙기고, 주변 상황까지 다 침착하게 챙기더라. 배우들은 현장에 가면 시야가 좁아지잖나. 나름 여러 작품에서 주변 캐릭터를 해오며 주연을 맡은 형, 누나들이 리더십을 발휘하는 모습을 쭉 봐왔는데 난 잘 안 되더라. 아 역시 멀었구나. 매일 반성하며 촬영했다. 모두가 처음이었다. 저도 주인공이 처음, 감독도 장편이 처음, 스태프들도 다른 영화에서 막내 등을 하다가 이 영화에선 각각 책임이 있는 위치에서 제 몫을 하려 했다. 제 눈엔 각자의 성장드라마같더라. 너무 아름다웠다."(곽진석)

딸인 보리, 아들인 정우 역할로 출연한 김아송, 이린하 등 아역 배우들은 허지나가 감독과 함께 마음을 쏟았다. 연기할 상태가 될 때까지 기다려주고, 그 나이에 맞게 얘길 들어주고 소통하려는 노력이 있었다고 한다. 허지나는 "원체 아이들이 똑똑하고 말도 잘 들었다"며 "감독님 또한 본인 영화임에도 아이들을 몰아붙이지 않고 세심하게 상태를 봐가며 촬영을 진행하셨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이미 다 이뤘다... 소소하게 최선 다할 것"

곽진석이 강조했듯 두 사람은 부부이면서 동료로, 나아가 서로의 매니저로 제 역할을 끊임없이 발전시키고 있었다. 인터뷰 전날 두 사람이 함께 영화사에 프로필을 돌리러 다니기도 했다. "작품을 기다리는 배우의 삶이 힘들 때가 있지만 주체적으로 살아가려 한다"며 곽진석이 웃어 보였다. 실제로 곽진석은 종종 자신의 SNS에 두 사람의 일상을 공유한다. 연기 연습, 요리, 최근엔 SNS를 전혀 하지 않던 허지나가 유튜브 채널을 열어 또다른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얼마 전 스턴트를 그만 두고 연기에 집중하면서 뭔가 마음이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연기적으로 아직 더 고민해야겠지만, 옆에서 허지나 배우가 믿음을 심어준 덕도 컸다. 연기적인 부분도 서로 스스럼 없이 얘기하고 밑바닥을 드러낼 사이가 됐다. 제겐 허지나라는 무기가 있어서 현장에 가기 전까지 잘 다듬어 보려 한다." (곽진석) 

"무엇보다 둘이 같은 직업이라 서로 매니저를 해줄 수 있어서 좋다. 또 언제든 연습할 상대가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같다. 오디션을 보러가든 실제 촬영장에 가든 남편을 상대로 언제 어디서든 연습할 수 있다. 이건 가족사업이니까 누가 뭘 하든 잘하길 바랄 수밖에 없지(웃음)." (허지나)

 
 영화 <나는 보리>에서 아빠 역을 맡은 배우 곽진석.

▲ 영화 <나는 보리>에서 아빠 역을 맡은 배우 곽진석. ⓒ 영화사 진진

 
<짝패> <뚝방전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부당거래> <신세계> <옥자> 등의 무술팀과 단역을 거쳐 온 곽진석,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그냥 청춘> <레퀴엠 포 안티고네> 등 다수의 무대 공연을 경험해 온 허지나는 서로의 장단점을 명확히 이해하고, 동시에 가족으로서 완벽하게 품을 줄 아는 마음이 있어 보였다. 

미용사, 복싱 선수를 거쳐 연기에 정착한 곽진석과 연기에 도움이 될까 싶어 대학교가 아닌 중국 소림사 유학을 선택했던 허지나가 닮아 보였다. 적어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온몸을 던지는 그 열정만큼은 두 사람답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016년에 필리핀 세부에서 소수의 지인들 틈에서 올린 수중결혼식 또한 그들다운 선택이었다. 

"서로가 걸어온 길을 인정하는 부분이 크다. 제가 영화판에서 얼마나 노하우를 쌓았는지 허지나 배우가 인정하고, 저 역시 연극판에서 쌓아온 그의 경험을 인정한다. 의견대립이 아닌 티키타카가 맞는다고 할까(웃음). 결혼식도 그땐 뭔가 의미를 찾고 싶었던 것 같다. 소규모 결혼식을 하자니 그게 더 비싸고, 우리 둘의 행사니까 친한 지인만 불러서 해외로 가 물속에서 하자고 했다. 그 사진을 SNS에 올리고 말았던 거지. 여전히 우리가 결혼한 걸 모르는 지인도 있다." (곽진석)  

"결혼식이야 그냥 둘이 놀러간 거지. 간김에 드레스를 입은 거고. 부모님께 좀 죄송했지만 식보단 우리가 이후에 잘 사는 모습을 보이는 게 효도라고 생각한다. 친구가 대부분 연극 배우인데 우리도 돈은 없지만 축의금 받기는 싫고... 그냥 우리가 잘 지냈는데 보상은 필요없을 것 같았다." (허지나) 

 
 영화 <나는 보리>에서 엄마 역을 맡은 배우 허지나.

▲ 영화 <나는 보리>에서 엄마 역을 맡은 배우 허지나. ⓒ 영화사 진진

 
<나는 보리>로 이들은 연기 인생 2막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 선택받는 게 배우의 운명이라면 두 사람은 보다 초연하게 그리고 뚝심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겠다는 각오를 내비쳤다. 

"예전처럼 액션으로 먹고 살진 않겠지만 운동은 계속 하고 있다. 장기는 갖고 가야지. 사람들이 요구하면 그에 맞게 써야 하니까. 보리 아빠 같은 역할을 원한다고 말하는 건 자만심인 것 같고, 자연스럽게 쓰임받도록 제가 노력하고 유도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게다가 스스로 전 액션 배우라고 한 적이 없다. 주로 맞아서 쓰러지거나 (주연 배우를) 상대하는 역할을 많이 했다. 그걸로 액션 배우라 하기엔 부끄럽다. 

옆에서 허지나 배우를 볼 때마다 그의 공감력이 참 대단하다고 느낀다. 원래도 잘하는데 연습량도 상당하다. 제가 쫓아갈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이 친구의 절반이라도 쫓아가자는 마음이다(웃음). 제가 연기 커리큘럼을 제대로 배운 게 아닌 현장에서 날것을 보면서 했는데 허지나 배우를 보며 많이 정리가 됐다. 안정적인 위치가 아닌 건 맞지만 나름 해보고 싶은 건 이뤄가면서 해봤다고 생각한다.

지금 상황도 그래서 만족한다. 작년에 한효주씨가 주인공인 <트래드스톤>에 단역으로 잠깐 출연했다. 얼떨결에 할리우드 영화를 찍었지만 이 정도면 다 이룬 거 아닌가(웃음). 이미 봉준호 감독님이 가장 한국적인 걸로 세계를 잡아먹었다. 상황은 더 나아졌다고 본다. 코로나19로 다들 힘들지만 우린 그것과 상관없이 버티는 게 매우 익숙한 사람들이다. 이골이 났지!(웃음)" (곽진석)
 
"마침 제 직업을 찾았다. 유튜버다(웃음). 배우라는 직업이 선택을 받는 직업이라면 언제든 제가 원하는 시간에 부지런히 움직이기기만 해도 콘텐츠를 만들 수 있겠더라. 소소하고 튀지 않게 이건 해나가면서 오디션도 다닐 거고, 드라마와 영화 일이 들어온다면 최선을 다해 할 것이다." (허지나)

 
 영화 <나는 보리>에서 부모이자 부부로 호흡을 맞춘 곽진석(우)-허지나(좌) 배우.

▲ 두 사람은 최근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에게 감사를 전하는 '덕분에 챌린지'에 참여했다. ⓒ 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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