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2 학생이 논문 제1저자인 게 말이 됩니까? 대학원생도 어려운데….”
서울의 한 사립대 화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학교 대학원에 2년째 다니고 있는 장모 씨(25)는 20일 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딸 조모 씨(28)가 고교 2학년 때 단국대에서 2주가량 인턴을 한 뒤 이듬해 ‘확장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E)’급 학술지에 제1저자로 이름을 올렸다는 보도(본보 20일자 A1·3면)를 접하고서다. 이날 수많은 2030세대가 조 씨와 자신들의 처지를 비교하며 박탈감과 분노를 드러냈다. |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20일 서울 종로구 적선현대빌딩의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면서 기자들이 질문을 쏟아내자 곤혹스러운 듯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조 후보자는 가족들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국민들의 지적과 비판을 겸허히 수용한다”고 답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
○ “개천 용 필요 없다더니” 2030 ‘부글부글’
조 씨의 논문 등재 소식에 20, 30대 대학원생들이 특히 격한 반응을 보였다. 5년 이상 관련 분야를 전공한 대학원생도 SCIE급 논문에 이름을 싣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SCIE는 국제 학술정보 분석업체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가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과 함께 선별해 관리하는 학술지 데이터베이스(DB)다. 다른 연구자들이 책이나 논문을 쓰면서 많이 인용한 학술지가 SCI와 SCIE에 등재된다. 이 둘은 동급이다. 영어로 발행되는 과학 및 기술 분야 학술지만 3만 개가 넘는데 SCI급과 SCIE급은 1565개뿐이다.
그만큼 SCIE급 학술지에 논문을 실을 땐 깐깐한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대학원생들은 SCIE급이 아니어도 논문을 한 편 내면 ‘드디어 하나 나왔다’며 회식까지 하면서 자축하는 게 보통이다. 논문 작성법 안내서를 내기도 했던 중앙대의 한 교수는 “한 분야의 석·박사도 SCIE급 학술지에 실을 논문을 쓰는 데는 최소 1년이 걸린다”고 지적했다. 가톨릭대 약학대학원을 20일 졸업한 김승기 씨(27)는 “조 씨의 경우엔 ‘보이지 않는 힘’이 있었다고밖에 생각이 안 든다”고 말했다.
공정한 사회를 만들자던 조 후보자의 과거 발언과 최근 그를 둘러싼 의혹을 두고 ‘조로남불’(조 후보자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조롱 섞인 표현도 등장했다. 조 후보자는 2012년 3월 자신의 트위터에 “(개천에서) 모두가 용이 될 수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며 “‘출혈 경쟁’ 말고 예쁘고 따뜻한 개천 만드는 데 힘 쏟자”고 올렸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인턴 과정을 밟고 있는 A 씨(33)는 “나는 말 그대로 ‘개천’ 출신이라서 학창 시절 4시간만 자며 공부했는데 그 시간들을 통째로 부정당한 느낌”이라며 “자기 딸은 금수저의 길만 밟은 (조 후보자의) 이중적인 행태에 치가 떨린다”고 말했다.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김병우 씨(34)는 “고교 시절 SCIE급 논문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학업이 우수했던 조 씨가 2015년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진학한 뒤로는 왜 유급을 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조 씨가 2015년 1학기에 3과목, 지난해 2학기에 1과목을 낙제해 유급된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 “논문에 가장 크게 기여했어야 ‘제1저자’”
조 씨가 논문에 ‘제1저자’ 자격으로 이름을 올린 점을 두고도 논란이 거셌다. 조 후보자 측은 이날 “조 씨가 멀리까지 매일 오가며 실험에 적극 참여하고 6, 7쪽 영어 논문을 완성했다”며 “일반적으로 (제1저자가 아닌) 책임저자가 논문의 저자로 인정되는데, 그 논문엔 지도교수가 책임저자로 명기됐다”고 알렸다. 제1저자라는 지위가 그 이름만큼 중요하지는 않고 조 씨가 정당한 대접을 받았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하지만 대다수의 대학교수들은 이에 대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통상 제1저자는 실험 설계부터 논문 구성 및 집필 등 모든 과정에 가장 많이 기여한 연구자가 되는 경우가 많고, 특히 공저 논문이 인용될 때는 저자의 이름이 제1저자와 ‘나머지(et al.)’로 표기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책임저자가 ‘감독’이라면 제1저자는 그 아래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을 뜻한다”고 말했다.
실험 과정 등을 영어로 완성한 것이 논문에 이름이 실릴 만한 기여라는 조 후보자 측의 해명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았다. 논문을 작성할 때 영어 번역만 담당해주는 업체를 따로 쓰는 경우가 많고 대다수 대학이 외국어 번역 프로그램을 갖췄기 때문에 영문 작성은 중요 요소가 아니라는 얘기다. 연세대 의대 B 교수는 “논문에 기여도가 가장 높은 사람이어야 할 제1저자의 역할이 영문 작성이었다는 건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조 씨가 이름을 올린 논문 작성엔 한국연구재단을 통해 정부 지원금 2500만 원이 투입됐다. ‘나랏돈이 조 씨의 스펙 쌓기에 들어갔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방대의 한 교수는 “(조 씨가 제1저자로 실린) 논문은 2006년 연구비 지원이 결정됐으니 그 시점에는 이미 논문 설계가 완료된 상태였을 텐데 이땐 조 씨가 인턴을 하기도 전이다”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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