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은 계속 오르죠. 뽑으려고 해도 사람은 안 오죠. 주 52시간제가 내년 1월부터 시행되면 중소기업 대표들은 범법자가 될 겁니다.”
근로자 300인 미만인 중소 가구업체 A사는 내년 1월 1일부터 주 52시간제를 지켜야 한다. 위반하면 대표가 형사 처벌을 받는다. A사 대표는 주 52시간제 시행을 준비했냐는 질문에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한숨만 내쉬었다. 이미 외국인 근로자가 없으면 공장을 돌리기 어려울 만큼 인력난이 심한데 주 52시간제에 대비해 인력을 충원하려고 해도 뽑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수작업이 많은 업종 특성상 일손이 달리면 생산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A사 대표는 “근로시간이 줄어들면 주문 받는 양을 줄일 수밖에 없어서 벌써부터 걱정”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인들이 25일 서울 영등포구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와 중소기업인 간 고용노동정책 간담회’에서 주 52시간 시행을 1년 이상 유예해 달라고 건의한 건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이다. 장기 불황과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 부담으로 중소기업들의 체력이 고갈된 상황에서 주 52시간제까지 시행되면 더 버틸 수 없을 것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해지고 있는 것이다.
가장 우려하는 건 주 52시간제가 시행되면 생산량을 줄일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실제 지난해 5월 중기중앙회 조사 결과 주 52시간제 시행 시 예상되는 애로사항으로 ‘가동률 저하로 인한 생산 차질과 납기 준수 곤란’을 꼽은 기업이 31.2%로 가장 많았다. ‘구인난으로 인한 인력 부족’(19%)이 뒤를 이었다. 중소 제조업체 10곳 중 4곳이 하도급 업체인데, 하도급 업체들은 납기가 ‘생명’이다. 화학 분야 중소기업 C사 대표는 “갑자기 며칠 내로 납품하라는 주문이 떨어지면 납기를 맞추기 위해 연장근로를 할 수밖에 없는데 내년에 주 52시간제가 의무화되면 어떻게 하느냐”며 답답해했다.
중소기업 근로자의 임금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중기중앙회에 따르면 주 52시간제가 시행되면 중소기업 근로자의 평균 월급은 247만1000원에서 222만 원으로 25만1000원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 근로자 상당수가 연장근로 수당으로 낮은 임금을 보전하고 있는데 주 52시간제가 시행되면 이런 수당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최근 고용노동부가 주 52시간제를 예정대로 내년 1월 시행하겠다고 밝히자 중소기업계에서는 근로기준법 개정에 마지막 기대를 걸고 있다. 국회에는 지난달 더불어민주당 이원욱 의원이 발의한 근로기준법 개정안 등이 계류돼 있다. 이 법안에는 근로자 △200인 이상 300인 미만은 2021년 △100인 이상 200인 미만은 2022년 △50인 이상 100인 미만은 2023년 △5인 이상 50인 미만은 2024년으로 시행 시기를 늦추는 내용이 담겨 있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만약 이 법대로 유예된다면 기업들의 숨통이 트일 것”이라며 “중소기업들은 이번 정기 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되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