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 하강이 국제기구나 전문가들의 예측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각 나라 모두 경기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4일 주요 경제단체장을 청와대로 초청해 2시간 동안 오찬을 가진 자리에서 경제 상황 전반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지난달 16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고용 상황이 양과 질 모두 뚜렷하게 개선되고 있다. 경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밝혔던 것과 달리 이날은 경제 상황에 대한 위기감을 드러낸 것. 수출부진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디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하락) 우려가 커지는 등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 달성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계속되자 문 대통령이 경제계 달래기를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 경제계, 근로시간 단축·규제개혁 등 불만 토로
이날 오찬에는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김영주 한국무역협회 회장 등이 참석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초청을 받지 못했다.
경제단체장들은 내년부터 300인 미만 중소기업에 적용되는 주 52시간 근로제에 대한 보완책, 최저임금 인상 등에 따른 기업 활동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김기문 중기중앙회 회장은 “주52시간제와 관련해 전체 중소기업의 56%가 준비가 안 된 것으로 조사됐는데 노동부는 전체 39% 만이 준비가 안 됐다고 발표했다”고 지적했다. 손경식 경총 회장은 “유연한 근로제도 보완이 시급한데 노사합의로 국회에 가 있는 탄력근로제도뿐만 아니라 선택적 근로제, 재량근로제 등은 국회 상황을 봤을 때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문 대통령은 “정부도 기업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며 “정부 차원의 보완책을 마련하고 있으니 조만간 의견을 구하겠다”고 밝혔다. 중소기업 주52시간 근로제 보완 방침을 직접 밝히면서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한 속도조절을 시사한 것이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국회에 제출된 입법안에 대해 경제계도 애로사항을 개전해 법안이 신속하게 처리되도록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규제개혁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거시적인 결과로 나오는 숫자들은 일부 관리되고 있는 것 같은데 성장의 과정과 내용을 보면 민간 생태계가 건강하지 못하다”며 “정부 차원에서 시행할 수 있는 대대적인 규제 혁파에 나서주시면 좋겠다”고 건의했다.
이날 간담회에선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비준과 관련해 “노사 양쪽의 균형된 입장 반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손 회장은 “정부가 경제를 살리겠다는 확실한 친기업 메시지를 기업에게 전달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또 “다국적 기업이 참여해 개성공단이 다시 열리면 많은 기업들에게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 靑, 오찬 급히 추진…형식·내용 비공개 이례적
이번 오찬은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됐다. 대변인 등이 배석했던 이전 경제인 간담회와 달리 이번에는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 김상조 대통령정책실장, 이호승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 신지연 제1부속비서관 등 최소한의 인원만 배석했다. 오찬 일정도 지난달 26일 유엔총회 참석 차 미국 뉴욕을 방문하고 귀국한 뒤 급히 추진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가 그만큼 경제 전반을 걱정하는 목소리에 대해 위기감을 느낀 것으로 보였다는 분석이다. 청와대는 “편하게 이야기한 자리”라며 브리핑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가 중기중앙회 측이 주52시간 근로제와 관련해 ‘문 대통령이 여러 대책을 마련하고 정부에서 곧 보완책을 발표할 예정’이라는 자료를 내놓자 뒤늦게 대통령 발언을 수정해 일부 공개했다.
김상조 대통령 정책실장은 오찬에 참석한 경제단체장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실무진을 통해 좋은 아이디어를 청와대로 보내주시면 최대한 반영하도록 하겠다”고도 했다. 청와대는 “중소기업 애로 해소를 위한 제안을 실행할 방법이 있는지, 경제 활력과 혁신성장을 위해 적극 행정을 통해 해결할 방법이 있는지 등 제기된 의견들에 대해 검토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