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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역사
happykingdoom1004 | 2020.04.23 | 조회 553 | 추천 1 댓글 3

종이

얇으면서 가볍고 적당히 질긴 매체

요약 종이는 고대 중국에서 처음 발명되었으며, 종이의 개량과 확산에 크게 기여한 인물로는 채륜()을 들 수 있다. 종이가 없던 서양에서 오랫동안 기록매체로 사용된 것은 파피루스(papyrus)와 양피지였다. 중국의 제지술은 늦어도 6세기에 우리나라에 전래되었고, 8세기에는 이슬람을 통해 서방으로도 전파되었다. 17세기 이후에는 종이 생산이 기계화되기 시작했으며, 19세기에는 동양에도 서양식 제지소가 설립되었다.




종이는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존재이다. 무엇보다 종이는 책의 재료로 인류의 문화를 전승하는 주된 수단이 되어 왔다. 그림을 그리거나 지폐를 만들거나 포장을 하는 데에도 종이가 필요하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화장지도 종이의 일종이다. 이처럼 우리는 수많은 종이 속에 파묻혀 살고 있다. 종이가 인류의 사랑을 받아온 데에는 종이만의 매력이 있는 것 같다. 종이는 얇으면서 가볍고 적당히 질기면서 오래가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정보기술이 발전하면서 종이가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도 제기되지만, 사실은 종이에 대한 수요가 더욱 증가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인터넷에서 찾아낸 정보를 종이로 인쇄하는 양이 적지 않은데다가 종이의 새로운 용도가 끊임없이 창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굿바이 구텐베르크, 채륜 포에버!(Goodbye Gutenberg, Cai Lun forever!)”라는 재미있는 표현도 등장하고 있다. 인쇄된 책은 없어지더라도 종이는 영원하다는 뜻이다.

종이의 개량과 확산에 크게 기여한 채륜

종이의 개량과 확산에 크게 기여한 채륜

고대 서양의 기록매체는?

종이의 영어명인 페이퍼(paper)는 파피루스(papyrus)를 어원으로 삼고 있다. 파피루스는 고대 이집트의 나일 강변에서 자생하던 수초()를 뜻한다. 기원전 3000년경에 이집트 사람들은 파피루스의 껍질을 벗겨내고 속을 가늘게 찢은 다음, 그것을 엮어서 말리고 다시 매끄럽게 하여 원시적인 기록매체를 만들었다. 이러한 파피루스는 중국에서 처음 등장한 종이와는 다르다. 파피루스는 기본적으로 식물의 껍질을 말린 것에 해당하지만, 중국 종이는 식물섬유를 물에 풀어 체로 걸러낸 것이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파피루스 문서는 대부분 종교문서인데, 죽은 사람의 관 속에 미라와 함께 넣어두었던 ≪사자의 서(Book of the Dead)≫가 유명하다. 그밖에 파피루스는 공문, 회계, 의학, 설계도 등 매우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파피루스는 고대 이집트 이래 9세기경까지 기록용 재료로 사용되었지만, 유럽에서는 주력 매체가 되지 못했다.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기원전 305년~기원전 31년)가 파피루스의 유출을 금지했던 것이다. 그 이유는 당시 이집트의 왕이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보다 로마 제국의 페르가뭄 도서관이 더욱 발전하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파피루스로 만들어진 ≪사자의 서≫의 일부분

파피루스로 만들어진 ≪사자의 서≫의 일부분

유럽 사람들이 오랫동안 주된 기록매체로 사용한 것은 양피지였다. 양피지를 뜻하는 영어(parchment)와 독일어(Pergament)는 모두 페르가뭄(Pergamus, 현재 터키의 베르가마)을 어원으로 삼고 있다. 1세기 로마의 정치가이자 학자인 대()플리니우스(Gaius Plinius Secundus Major)는 ≪자연사(Naturalis Historia)≫ 제13권에서 양피지가 기원전 150년경에 페르가뭄에서 발명되었다고 썼다. 하지만, 양피지는 그 이전부터 이미 사용되어 왔으므로 페르가뭄에서는 이전보다 개량된 양피지가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양피지는 양이나 송아지의 가죽을 깨끗이 씻은 후 완전히 털을 깎아서 만든 것이다. 양피지 위에 글을 쓰는 것은 파피루스의 경우보다 더욱 간편한 작업이었다. 또한 파피루스 문서가 두루마리의 형태를 띠었던 반면, 양피지 문서는 바느질로 묶어 오늘날과 같은 책의 형태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양피지는 한 장을 만드는 데 새끼 양 한 마리가 필요할 정도여서 값이 비싸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따라 양피지는 화려한 채색 필사본들을 만드는 데 주로 사용되었다. 15세기 초에 제작된 ≪베리 공작의 매우 호화로운 기도서≫는 그 대표적인 예에 해당한다.

양피지로 제작된 ≪베리 공작의 매우 호화로운 기도서≫ 중 1월 장면

양피지로 제작된 ≪베리 공작의 매우 호화로운 기도서≫ 중 1월 장면

채륜이 종이를 최초로 발명했는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종이는 고대 중국에서 처음 발명되었다. 종이에 대한 본격적인 기록은 ≪후한서≫의 <채륜전>에 나타나 있다. “예로부터 서책은 대부분 죽간()으로 엮었고, 겸백(, 비단)을 사용한 것을 종이()라고 하였다. 겸백은 비싸고 죽간은 무겁기 때문에 모두 편리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채륜()은 종이를 만들 마음이 나서, 수부(, 나무껍질), 마두(, 삼베 뭉치), 폐포(, 헝겊 조각), 어망() 등을 이용하여 종이를 만들었다. 원흥() 원년(105년)에 황제에게 바쳤다. 황제는 채륜의 재능을 칭찬하였고, 그때부터 모두 종이를 사용하였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종이를 ‘채후지()’라 불렀다.”

이러한 기록은 “후한의 채륜이 105년에 종이를 최초로 발명했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었다. 그것은 오랫동안 정설로 인정되어 오다가 1930년대 이후에 다양한 고고학적 증거가 발굴되면서 많은 비판에 직면하였다. 마지(, 마를 주성분으로 하는 종이)가 이미 기원전 50년경 혹은 기원전 2세기에 사용되었다는 점이 밝혀졌던 것이다.

그렇다면 채륜은 종이를 처음 발명한 사람이 아니라 기존의 마에 여러 가지 식물섬유를 섞어 종이를 새롭게 개량한 인물에 해당한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채륜의 기여는 종이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중국 각지에 흩어져 있던 종이와 그것의 제작법에 관한 정보를 체계화하고 확산시켰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채륜이 105년에 종이를 개량한 이후에 중국의 제지술은 지속적으로 발전하였다. 마에 이어 닥나무와 뽕나무 등이 종이의 재료로 사용되었고, 수액()을 첨가하면 벌레가 해치지 못한다는 사실도 발견되었다. 또한 7세기가 되면, 나무판에 글자나 그림을 새겨 먹을 칠해서 종이 위에 찍어내는 방법, 즉 목판인쇄술도 등장하였다. 제지술과 인쇄술의 발전으로 중국에서는 수많은 서적이 보급될 수 있었는데, 중국은 15세기까지 세계의 어떤 나라보다도 많은 수의 인쇄된 서적을 보유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명나라 말기에 송응성()은 ≪천공개물≫에서 종이를 죽지()와 피지()로 구분한 후 죽지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먼저 여름에 대나무를 짧게 잘라 물에 담가둔다. 100일 정도 지나 그것을 망치로 쳐서 거친 껍질을 씻어 벗기면 저마()의 섬유와 같은 죽마()가 만들어진다. 여기에 잿물을 섞어 8일 밤낮을 펄펄 끓여 맑은 물로 잘 헹군 다음 다시 잿물과 함께 끓여서 10일 정도 지나면 섬유가 붓게 된다. 이것을 절구에 찧으면 끈적끈적한 곡분()과 같이 되는데, 물로 가득 채운 초지조(, 종이의 원료를 물에 풀고 그 물로 젖은 종이를 뜨는 기구)에 넣고 지약()을 섞는다. 그리고 젖은 종이를 뜸틀에서 걸리고 틀을 벗긴 뒤 건조시킨다.

죽지의 제작공정에 관한 목판화

① 대나무를 잘라서 물에 담가 두고 죽마를 만든다.

죽지의 제작공정에 관한 목판화

② 충분한 시간을 들여 끓인다.

죽지의 제작공정에 관한 목판화

③ 죽마를 틀로 거른다.

죽지의 제작공정에 관한 목판화

④ 틀을 벗긴 뒤 종이를 포개어 쌓는다.

죽지의 제작공정에 관한 목판화

⑤ 종이를 건조시킨다.

죽지의 제작공정에 관한 목판화

세계로 전파된 중국의 제지술

중국에서 발명된 제지술은 한반도에도 빠르게 전파되었다. 우리나라에 제지술이 도입된 시기로는 3세기, 4세기, 6세기 등이 거론되고 있는데, 가장 늦게 잡아도 610년이 된다. 같은 해에 고구려 승려인 담징()이 일본에 종이를 전해주었다는 기록이 ≪일본서기≫에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종이는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는 범한다라니()로 알려져 있다.

특히 신라 시대에는 닥나무로 만든 저지()가 크게 발달했는데, 그것은 희고 질긴 종이라는 의미의 ‘백추지()’로 불리면서 중국과 일본에서도 소중히 여겨졌다. 신라의 백추지는 고려의 만지(), 조선의 견지()와 경면지() 등으로 이어지면서 한국종이, 즉 한지()의 전통을 형성해 왔다. 고려 시대에는 종이를 만들어 국가에 바치는 특수 행정단위인 지소()가 설치되었으며, 조선 시대에는 1415년(태종 15년)부터 관영 제지공장에 해당하는 조지소()가 운영되었다.

서방에서는 늦어도 5세기 초에 종이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지만, 중국의 제지술이 전파된 시기는 8세기로 알려져 있다. 그 계기는 이슬람 아바스 왕조의 내부 싸움에 당나라가 개입한 데서 찾을 수 있다. 751년부터 시작된 탈라스 전쟁에는 고선지() 장군이 이끈 당나라 부대가 참여했는데, 그 전쟁에서 포로가 된 당군 가운데 제지기술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 기술자들에 의해 사마르칸트에 제지소가 생겨났으며, ‘사마르칸트지’란 이름의 종이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이후 시리아의 다마스쿠스에도 제지소가 세워졌고, 다마스쿠스지는 수 세기에 걸쳐 유럽에 수출된 유명한 종이가 되었다.

유럽에서는 아랍인들에게서 제지술을 전수받아 12세기 중엽부터 제지업이 성행하기 시작했다. 유럽 최초의 제지소로는 1150년에 스페인에 세워진 하티바 제지소가 거론되고 있다. 스페인에 이어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등지에서 제지소가 줄줄이 문을 열었다. 한 때 유럽 최초의 제지소로 알려졌던 독일의 뉘른베르크 공장은 1391년부터 운영에 들어갔다. 영국은 대륙보다 늦은 14세기에 이르러서야 종이를 문서로 쓰기 시작했으며, 1495년경에 테이트(John Tate)가 하트퍼드셔에 첫 제지소를 세웠다. 급기야 1440년경에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가 개발한 활판인쇄술이 널리 확산되면서 유럽 사회의 기록매체는 양피지에서 종이로 급속히 전환되기 시작했다.

1493년에 그려진 뉘른베르크의 광경

1493년에 그려진 뉘른베르크의 광경오른쪽 하단부가 제지공장을 나타내고 있다. 소음과 냄새 때문에 제지공장이 도시 외곽에 세워졌다는 점도 흥미롭다.

서양 종이의 대량생산

종이 생산의 기계화는 17세기 후반 네덜란드에서 고해기(, beater)가 발명됨으로써 시작되었다. 그것은 마 조각이나 면 넝마와 같은 원료를 두들겨 풀어 종이를 만드는 기계에 해당한다. 당시의 고해기는 홀랜더(hollander)로 불렸는데, 발명자를 정확히 알 수 없어 나라 이름을 따 붙인 명칭이었다. 고해기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개량되었고, 이를 매개로 유럽 사회는 질긴 종이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단계에 진입할 수 있었다.

종이를 연속적으로 생산하는 기계인 초지기(, paper machine)는 1800년을 전후하여 등장하였다. 최초의 초지기는 1799년에 프랑스의 제지공인 로베르(Louis-Nicolas Robert)가 발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로베르의 초지기는 1803년에 영국의 기계공인 돈킨(Bryan Donkin)에 의해 더욱 개량되었고, 영국의 자본가인 푸어드리니어 형제(Sealy and Henry Fourdrinier)는 돈킨의 설계를 바탕으로 1804년 이후에 몇몇 실용적인 초지기를 잇달아 제작하였다. 푸어드리니어 기계(Fourdrinier machine)는 긴 철망으로 이루어진 장망식() 초지기에 해당하며, 오늘날 제지용 기계의 원형으로 작용하고 있다.

1970년대에 사용된 푸어드리니어 기계의 모습

1970년대에 사용된 푸어드리니어 기계의 모습

1809년에는 철망이 원통형으로 되어 있는 환망식() 혹은 원망식()도 출현하였다. 그것은 영국의 발명가인 디킨슨(John Dickinson)이 처음 개발했으며, 두꺼운 판지도 뜰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즉, 1개의 원망을 갖춘 것은 얇은 종이를 뜨는 데에 사용하고, 여러 개의 원망을 갖춘 것은 뜬 종이를 합쳐 판지를 제조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다.

자연 속에 기술이 있다

종이의 생산량이 크게 증가하면서 종이의 원료를 적시에 조달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로 부상했다.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제지업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곳에서 나왔다. 1719년에 프랑스의 과학자인 레오뮈르(René-Antoine Réaumur)는 말벌이 나무껍질을 갉아서 침과 버무려 종이와 비슷한 재질의 집을 만드는 광경을 목격했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나무의 섬유에 해당하는 펄프로도 종이를 만들 수 있겠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특정한 수확 시기에만 채취할 수 있는 기존의 원료와 달리 나무는 계절에 관계없이 안정적으로 공급될 수 있었다. 레오뮈르의 아이디어는 독일의 기계공인 켈러(Friedrich Gottlob Keller)에 의해 현실화되었다. 켈레는 1844년에 쇄목기(wood pulp grinder, )를 발명했는데, 그것은 증기기관을 활용하여 나무를 부순 후 펄프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기계였다.

켈러의 쇄목 펄프법은 독일의 인쇄 전문가인 펠터(Heinrich Voelter)에 의해 개선되어 1860년대를 통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이어 1862년에는 아황산법에 의한 목재펄프 제조법(sulfite process)이, 1879년에는 황산법에 의한 크라프트 펄프(sulfate or kraft process)가 개발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원목에서 펄프를 제조하는 광경

원목에서 펄프를 제조하는 광경

서양종이, 즉 양지()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방법은 종이의 원조인 동양에도 전파되었다. 중국에서는 1800년대 초에, 일본에서는 1872년에 서양식 제지소가 설립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1884년에 일본에 수신사로 가 있던 김옥균()이 미국 라이스버튼(Rice Burton) 사의 환망식 초지기 한 대를 구입하면서 서양의 제지술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1901년에는 최초의 근대적 제지소가 설립되었으며, 1913년에는 조선지료제조소가 설립되어 종이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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