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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부르는 대로 받아 적그라.. -작은이야기에서-
아린아린이 | 2020.01.29 | 조회 268 | 추천 1 댓글 0

학교에서 오자마자 책가방을 팽개치고 밖으로 뛰어나가려던 영칠이는 찰머니에게 붙잡혔다..

군대 간 작은삼촌에게 편지를 써 달라신다.. 군대 가면 총도 쏘고 건빵도 준다는데

할머니는 무슨 걱정이 그리 많은지, 삼촌이 군대 간 뒤로는 사립문에 바람 소리만 나도 고개를 빼신다..

작은삼촌은 두 달 전 편지에 추석쯤에는 휴가 오겠다더니만, 이미 보름이 넘도록 소식이 없다..

할머니가 꼬불쳐둔 알사탕 하나에 영칠이는 겨우 연필을 찾아 들고 앉았지만, 미꾸라지 잡으러 가기로한

애들이 몰려와 ˝영칠아~ 노올자~!!˝하고 합창을 할까봐 자꾸 사립문 쪽으로 눈길이 간다..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오빠 대신 제가 쓰겠다고 나섰다가, ˝계집애가 글은 무슨 글˝

하고 면박을 당한 점순이는 심통이 났다..

오빠 책을 틈틈이 훔쳐봐 나도 쓸 수 있다고 해도 들은 척 안한다..

부엌에서 에미나 거들라는 말에 고무즐 놀이나 하러 나가버릴까 하고 신발을 찾아 신었지만,

으스대며 또박또박 편지를 받아 적는 오빠가 부러워 선뜻 엉덩이가 떨어지지 않는다..

초가지붕에서 미끄럼을 타던 늦가을 햇살이 마당으로 내려오다 부엌에서 뛰어나오던 덕칠이하고 박치기를 했다..

덕칠이 이마에서 튕겨나와 마루 밑 놋요강에 머리를 박은 햇살이 고구마 도둑 있다고 엄마한테 일러 바쳤으나,

엄마는 쪽문 너머로 들려오는 할머니의 편지 불러주는 소리에 눈시울만 붉히고 있다..

친정 막내도 군대 갈 때가 되었는데...

시렁 위의 주발 아줌마들은 매운 연기에 눈물을 찔끔거리면서도

일곱이나 되는 이 집 딸 며느리 험담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 수다에 숯검댕이 반지르르한 부엌 한 귀퉁이에 걸려 있던 소반상은 헛기침을 하고,

물독 아래 숨을 죽이고 숨어 있던 생쥐 내외는 끽 웃는다...

˝어디꺼정 적었냐?˝

˝갈밭 둘째 누나와 자형도 무고하고, 명자, 명숙이도 건강하게 자알 큰다는 소식, 추석 때 다녀간 네 작은형한테 들었다아~ 여기꺼정 썼습니더.˝

영칠이는 갈밭 고모 밑으로 다른 고모가 셋, 삼촌이 둘이나 더 있는데 하며 한숨을 쉬고,

할머니는 갈밭 애는 딸만 둘이라 이번에는 고추 하나 낳아야 사돈 볼 면목이 설 텐데, 하는 생각에 한숨을 쉰다..

댓돌 위에 가지런히 놓인 깜장 고무신도 주인을 기다리다 지쳐 끄덕끄덕 졸고 있고,

안방문 위 낡은 액자 속 근첨한 표정의 할아버지도 어금니를 깨물어 하품을 참고 있다..

김장을 기다리는 고추, 마늘한테도 가봐야 하고, 좀 있으면 방안으로 들어갈 메주들도 시간이 없단다...

˝자나깨나 이 에미는 네 걱정뿌니다.. 다~ 적었냐?˝

˝자 나 깨 나 이 에 미 는 .......... 다 적었냐도 씁니다이.... 히~!!˝

어느덧 여덟 남매를 차례로 짚어나간 할머니의 자정 연정은 편지지 한 장을 넘쳐나와, 서쪽 하늘에 걸려 있는 조각구름을 붉게 물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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