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동영상 포인트
공지 [필독]회원등급 확인 및 기준, 등급조정 신청 방법 안..
좋은글
나도 돈을 줍고 싶다
싼타오 | 2020.03.27 | 조회 243 | 추천 1 댓글 3

한 사내가 우연히 퇴근길에 돈을 주웠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역 입구 계단을 내려가다가 뭔가 발에 툭 채이는 것이 있어 보았더니 지갑이었다. 그는 얼른 지갑을 주워 양복 상의 안주머니 속에 넣고 재빨리 계단을 내려갔다. 갑자기 남의 물건이라도 훔친 것 같아 아까와는 달리 계단을 거의 뛰어내려가다시피 했다.
그러나 막상 표를 끊고 개표구를 빠져나가려고 하자 얼른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쩌면 지갑을 잃어버린 사람이 지금쯤 두리번거리며 지갑을 찾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다시 지갑을 주웠던 장소로 가 보았다. 급히 계단을 오르내리는 사람들만 있을 뿐 아무도 지갑을 찾는 사람은 없었다. 혹시 좀더 기다려 보면 지갑 주인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싶어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어 보았으나 누구 하나 지갑을 찾으러 오는 사람은 없었다. 그제서야 그는 은근히 마음을 놓았다. 잃어버린 물건이란 어차피 누가 주워 가도 주워 갈 것인데 내가 주워 가면 어떠랴 하는 생각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는 ´만남의 장소´라고 씌어진 나무 의자에 앉아 슬며시 지갑을 꺼내 보았다. 지갑은 까만 고급 가죽 지갑으로, 그 속엔 10만원 짜리 자기앞 수표 두 장과 만원 짜리 지폐 몇 장이 들어 있었다. 지갑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명함이나 주민등록증, 운전 면허증 따위는 없고 그저 돈만 달랑 들어 있었다.

´이건 정말 행운이야. 행운의 여신이 나를 도와준 거야. ´ 그는 속으로 가만히 소리쳤다. 어젯밤 돼지꿈도 꾸지 않았는데 이게 웬 횡재냐 싶었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데 내가 이걸 마다할 리가 없지. 그래도 난 지갑을 돌려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는 스스로 그 지갑을 가질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곧장 집으로 퇴근하려던 생각을 바꾸어 친구한테 전화를 걸었다.
˝야, 기태야, 퇴근 안하냐? 내가 술 한잔 살 테니까 만나자. 내가 그쪽으로 갈까? 북창동? 그래, 그래, 북창동 입구에 있는 커피숍에서 일단 만나자.˝ 기태는 커피 숍에 먼저 나와 있었다. ´구두쇠 같은 네가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어 술을 다 산다고 그러냐´하는 표정으로 기태가 빤히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그런 기태를 창동 갈비 집으로 데리고 갔다.

˝보라구. 이 돈 이거, 조금 전에 길에서 주운 거야.˝ 술이 몇 순배 돌자 그는 주운 돈 자랑부터 먼저 했다.
˝오늘은 정말 재수가 좋았어. 가끔 가다가 이런 횡재수도 있어야 살맛이 나는 거야. 돈이란 사람이 직접 찾아 나서서는 안 되고, 이렇게 제발로 사람을 찾아와야 되는 거야. 이거, 주운 돈으로 먹으니까 술맛이 아주 좋군 그래.˝ 기태가 멍하니 부러운 듯이 쳐다보다 그는 더욱 신이 나서 떠들었다.
˝내가 국민학교 4 학년 때쯤이었을 거야. 우리 동네 다리 위에서 돈을 한번 주운 적이 있어. 지금 돈으로 치면 한 몇 십만원쯤은 될 거야. 난 학교에서 배운 그대로 가까운 파출소에 갔다 주면 주인한테 돌려줄 수 있다고 배웠거든. 그래서 파출소 순경한테 돈을 주었어. 순경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어디서 주웠느냐, 이름은 뭐냐, 어느 학교 몇 학년 몇 반이냐 하고 일일이 묻고 적더군. 그래서 난 기다렸지. 이런 착한 학생이 있다고 학교로 연락이 와서 틀림없이 선생님께 칭찬을 받을 줄 알고 말이야. 그런데 그러고는 그만이야. 아무리 기다려도 아무 소식도 없는 거야. 난 다시 파출소를 찾아가서 그 돈을 어떻게 했느냐, 정말 주인을 찾아 주었느냐 하고 묻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어. 그렇지만 난 순경들이 그 돈을 어떻게 했는지는 늘 궁금했어. 차차 나이가 들고 세상 돌아가는 걸 알게 되면서부터 난 순경들이 그 돈을 주인에게 돌려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지만 말이야. 그 돈을 그냥 내가 갖는 건데, 지금도 그때 일만 생각하면 후회가 돼. 아마 순경들은 이게 웬 떡이냐 싶어 그 돈으로 자기들끼리 술 먹고 치웠을 거야. 아예 처음부터 주인을 찾아 돌려줄 생각조차 안했을 거야. 그래서 내가 지금 그때 일을 보상받기 위해 이렇게 또 돈을 주웠는지 몰라. 나로서는 정말 기분 좋은 일이야. 

1
추천

반대
0
카카오톡 공유 보내기 버튼
댓글쓰기
최신순 추천순
jjj123 | 추천 0 | 03.27  
좋은글 감사합니다
0    0
행복한나를 | 추천 0 | 03.27  
저도 돈 줍고싶네요ㅜㅜㅜㅜㅜ
0    0
북기 | 추천 0 | 03.27  
추천합니다
0    0
마부를 길들인 말 (3)
싼타오 | 조회 283 | 추천 1 | 03.27
우리의 인생은 죽죽 뻗어가기보다는 (3)
싼타오 | 조회 214 | 추천 1 | 03.27
인생이란 사랑하는 그 무엇으로 채워져.. (4)
싼타오 | 조회 256 | 추천 1 | 03.27
사소한 것을 (4)
싼타오 | 조회 212 | 추천 1 | 03.27
처음 이곳에서 (4)
싼타오 | 조회 265 | 추천 1 | 03.27
허물을 덮어주세요 (4)
싼타오 | 조회 220 | 추천 1 | 03.27
더하기와 빼기 (3)
이유아이유 | 조회 260 | 추천 1 | 03.27
쓸모 있음과 없음 (3)
이유아이유 | 조회 271 | 추천 1 | 03.27
분명함과 희미함 (3)
이유아이유 | 조회 272 | 추천 1 | 03.27
용기 (3)
이유아이유 | 조회 275 | 추천 1 | 03.27
저기 우리 어머니가 오십니다 (3)
이유아이유 | 조회 267 | 추천 1 | 03.27
품위 있는 죽음 (2)
이유아이유 | 조회 288 | 추천 1 | 03.27
사랑과 우정 (2)
이유아이유 | 조회 233 | 추천 1 | 03.27
만년필 속의 메모 (2)
이유아이유 | 조회 198 | 추천 1 | 03.27
도올 김용옥의 ´도올논어´ 중에서 (2)
이유아이유 | 조회 217 | 추천 1 | 03.27
어미들 (2)
이유아이유 | 조회 205 | 추천 1 | 03.27
문은 어디로 열리나 (3)
북기 | 조회 209 | 추천 1 | 03.27
구두가 없어서 불편할 때는 다리가 없.. (2)
북기 | 조회 206 | 추천 1 | 03.27
진정한 위로 (3)
북기 | 조회 274 | 추천 1 | 03.27
어느 노인과 눈빛 (3)
북기 | 조회 265 | 추천 1 | 03.27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