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라는 기억을 모아 -풍향 서태우-
명치끝에 걸린 가을은 스스로 빨간 멍자국을 내더니 기어코 선명한 생채기를 남기고 사랑은 날이 선 검처럼 형체 없는 거친 칼자국을 내더니 성숙을 위한 아픔이니 참으라 합니다. 햇살에 검게 그을려 비쩍 마른 또 하나의 그리움은 바스락 거리는 낙엽의 속삭임에도 소스라치게 놀라고 지난밤 내린 비로 밤새 성장통을 겪은 샛노란 은행잎은 고운 수채화를 그리고 있습니다. 샛노란 슬픔을 즈려밟으며 못다한 내 사랑도 즈려밟으며 딱지가 되어 버린 정마저 즈려밟으며 그대와 걷던 그 길을 걸어가겠습니다. 가을이 다 가기 전에 추억이라는 기억을 모아 잊었던 한 사람을 그리워하며 노란 은행잎 그 길을 걸어가겠습니다. 지난 가을에 그랬던 것처럼 마지막 아픔의 가을이 되기를 그렇게 기도하며 걸어가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