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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박물관
학교체벌의 기억
체리 | 2011.05.19 | 조회 5,131 | 추천 76 댓글 4









담임선생님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치미는 화를 도저히 참지 못하는 것 같았다. 종례를 시작한 지도 벌써 20분이 지났다. 반 아이들은 모두 책상 위에 꿇어앉았다. 눈을 꼭 감고 양팔은 바짝 쳐들었다. 겁에 질린 아이들은 가늘게 눈을 떠보려다가도 들킬까 두려운지 다시 질끈 내리감곤 했다.



 


 


 


학급 도난 사건에  70명 전원이 단체기합


 


 


















“한번만 더 얘기하겠다. 체육시간에 00이 가방에서 돈 빼 간 친구는 오른손을 내려 가슴에 얹어라. 그러면 전체 기합은 끝이다. 생각해봐라. 나 하나 못된 짓 때문에 반 친구 70명이 모두 기합을 받아 되겠느냐? 양심이 있으면 손을 가슴에 대라. 모두 눈을 감았으니 보는 사람도 없다.”




교실 이곳저곳에서 훌쩍이는 울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주로 여학생이었다. 남학생들은 툴툴대며 낯모르는 범인을 향해 욕을 해댔다. “어떤 놈이야? 빨리 자수해, 팔 떨어지겠어!” 수군대는 소리, 훌쩍이는 소리로 교실 안이 웅성거렸다. 기진한 아이들은 대부분 머리 위에서 팔을 맞잡고 있었다. 갑자기 선생님이 몽둥이로 교탁을 쾅! 내리쳤다. 아이들이 움칫 놀라 진저리를 쳤다. 다시 선생님의 훈계. “안 나온단 말이지, 좋다. 누가 했는지 밝혀질 때까지 모두 학교에 남아 벌을 받는다. 쥐새끼 같은 도둑놈, 양심껏 자수하길 바랐는데 안 한다고? 내가 꼭 잡고야 말겠다. 범인을 아는 친구는 선생님께 말하라. 누가 얘기했는지 비밀은 철저히 지킨다!”



 









선도와 체벌 '한계' 어디에

1983. 9. 24 [동아일보] 7면




 


 


 
















범인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약이 바짝 오른 선생님은 결국 매를 들었다. 처음엔 반장과 부반장의 종아리를 5대씩 때렸다. 곧 분단장들도 불려나가 종아리를 맞았다. 아이들 통솔을 제대로 못해 도둑이 생겼다는 거였다. 선생님은 매를 칠 때마다 교실 안이 쩌렁쩌렁 울리게 “친구가 죄 없이 맞는다. 그래도 안 나오나!”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날 종례는 아이들 모두가 차례로 종아리를 맞고 한바탕 울음바다가 된 다음에야 끝이 났다.




 


 


 


 


학창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했을 체벌


 


 




















"학생 체벌 규제 필요하다"

1990. 9. 25 [동아일보] 9면



 







학창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이런 집단기합과 체벌을 경험해 봤을 것이다. 위 얘기는 1970년대 말 초등학교 체벌 취재를 했던 교육위원회 출입기자 수첩에 적힌 내용을 재구성한 것이다. 그나마 이 경우는 신문지면을 장식한 여타 체벌이나 교사폭행에 비해 정도가 심하지 않은 편이다.




성적이 나쁘거나 수업태도가 좋지 않다고, 또는 복장이나 두발상태가 불량하거나 숙제를 안 해왔다는 이유로 교사가 학생을 기합주고 때리는 일은 과거 학교에선 시쳇말로 ‘흔해빠진 일’이었다. 초등학교 중학교는 물론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모두 마찬가지였다. 대학에 들어가서야 겨우 선생님으로부터 맞거나 꾸중 듣는 공포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얘기도 있었다.




물론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불가피하게 때릴 경우 가슴 아파하며 ‘사랑의 매’를 들 수밖에 없는 입장을 절절히 설명했다. 아니, 매는 아예 들지 않는 존경스런 선생님도 많았다.




 


 


 
















그러나 일부 선생님은 아이들을 때리지 않고는 가르칠 수 없다는 듯 걸핏하면 손찌검을 한 게 사실이었다. 잣대나 출석부, 회초리로 때리는 건 그래도 나은 편. 어떤 때는 야구 배트나 곤봉, 심지어는 혁대를 풀어 때렸고 발로 가슴팍을 차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남자고등학교 같은 경우 나무를 깎아 다듬은 몽둥이 모서리에 ‘사랑의 매’ ‘군사부일체’같은 문구를 써놓고 다니는 선생님도 있었다. 대개 생활지도교사나 훈육교사들이 그랬다. 보통은 그저 겁이나 주고 마는 경우였지만 학생들 사이에선 그런 선생님에게 잘못 걸린 학생이 된통 얻어맞고 병원에 입원했다는 얘기가 전설처럼 전해지곤 했다.




 


 


 


 


학생들은 사랑의 매로 이해하려 했지만..

 


 


















“사랑하기 때문에 매를 든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학생들은 이해하는 편이었다. 이해하려고 애썼고 또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사랑과는 전혀 관계없이 정말 미워서, 증오하며 때리는 경우를 학생들은 용케도 알아챘지만 그것을 문제 삼고 항의할 수도 없었다. 다만 학생 입장에서 정말로 참기 어려운 것은 인간적인 모욕을 당하고 다른 학생과 차별해 구타를 하는 경우였다.




60년대엔 월사금을 제때 안 냈다고 “공짜로 학교 다닌다면 거지 아니고 무엇이냐?”며 급우들 앞에서 모욕을 주고 때린 교사도 있었다. 저축통장에 저금할 돈을 가져오지 않는다고, 재활용품을 가져오지 않는다고 단체기합을 주는 교사도 많았다. 학생들의 집안 형편은 생각지도 않고 교육위원회 지침이나 교무회의 결정사항만을 최우선으로 따르는 경우였다.



 









체벌, 사랑의 매냐 폭력 행위냐

1990. 11. 6 [동아일보] 19면




 


 


 
















70년대 중반에는 걸핏하면 담임에게 불려나가 매를 맞던 한 소녀가 신문사에 찾아와 울먹였다. “엄마가 담임선생에게 한 번도 인사한 적이 없기 때문에 나만 골라 때린다.”는 얘기였다. 다른 아이 엄마들은 때만 되면 학교에 찾아와 담임을 만나는데 남의 집 가정부를 하는 제 엄마는 그러지를 못해 자기가 미움을 샀다는 것. 치맛바람이 드셌던 시절의 얘기다.




사실 교사들의 도를 넘어선 학생구타는 근대 교육제도가 도입된 이래 항상 논란의 대상이 됐다. 61년 경남 거제에선 초등학교 교장이 한글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10살짜리 아이들을 때리며 기합주다 아이들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학생이 맘보바지를 입고 다닌다고 곤봉으로 때려 상처를 입힌 고교교사, 하급생의 돈을 빼앗은 중학생을 훈계하다 화가 치밀어 몽둥이세례를 퍼부은 중학 교사들이 잇달아 구속되기도 했다.




 


 


 


 


체벌 합법화 공식 논의와 잦은 폭력 사고


 


 




















체벌, 과연 '사랑의 매'인가

1980. 10. 2 [동아일보] 5면



 







학교체벌 문제가 보도될 때마다 당시 사회에서는 격렬한 찬반논쟁이 벌어졌다. 도를 넘는 체벌로 학생 팔이 부러지고 장이 파열되는 등 중상을 입힌 선생이야 옹호할 수 없는 일이지만 말 안 듣는 아이에게 어느 정도 기합을 주고 매를 드는 것을 나무랄 수 없다는 입장이 자주 개진됐다. 그러나 한편에선 아무리 교육적 견지라도 학교 내 폭력은 용인할 순 없으며 교사의 학생 폭행은 아이들을 이중인격자로 만드는 독이란 주장도 제기됐다.




교사들은 원칙적으로 아이들을 때려선 안 되지만 불가피하게 손을 대더라도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초등학교 교감은 “어쩌다 학생을 때린 교사가 말썽에 휘말리지만 그런 교사는 오히려 평소 교육에 열성적”이라며 “선생의 꾸지람이나 체벌이 미움과는 거리가 먼 지극한 성의에서 비롯된 걸 이해하면 좋겠다.”고 했다. ‘콩나물 교실’에서 수업을 하다 보면 한두 명 말 안 듣는 애들에게 벌을 줄 수밖에 없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이 논쟁에서 한 학부모는 “때려서 길들일 수 있는 건 강아지 아니냐?”는 극단적 비유를 들며 “아이들을 때려 순간적 효과는 얻을지 몰라도 결국 열등감과 반항심만 키우고 폭력성향을 본받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어느 대학교수는 “아이들을 체벌로 가르쳐 버릇하면 어른 앞에서만 적당히 가장하는 비열한 아이가 되기 십상”이라며 폭력을 지렛대 삼은 교육은 학생들을 이중인격자로 만들 뿐이라고 경고했다.




 


 


 


















‘사랑의 매냐, 교사 폭력이냐’를 둘러싼 논쟁은 80년대 중반까지는 “어떤 이유에서건 체벌은 금지해야 한다.”는 쪽으로 무게를 실어갔다. 문교부와 교육위, 교원단체 학부모 단체들이 한목소리로 체벌금지를 외쳤다. 66년 서울 초등학교 교장단이 일체의 체벌은 물론 과외공부와 잡부금 징수를 금지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서울시 교육위원회는 그해부터 매년 초등학교 6학년 담임모임, 중학교 진학교사 모임, 고등학교 교장단 회의 등을 열어 체벌금지를 약속하고 서약서까지 쓰게 했다.




한국교총의 전신인 대한교련도 74년 교육주간에 ‘인간회복을 위한 교육복지 건설’ 슬로건을 내걸고 ‘체벌 근절 등 학교교육 비인간화 추방’ 캠페인에 나섰다. 아이들을 바른길로 인도하기 위해 어느 정도 매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없지 않았지만 폭력배제야 말로 교육 민주주의의 요체라는 주장이었다. 이는 뒤집어 생각해보면 당시 일선 학교에 체벌 등 비인간적 요소가 만연해 있고 학생이나 학부모의 불만이 그만큼 높았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인간 회복을 위한 교육을"

1974. 10. 8 [경향신문] 5면




 


 


 


 


사랑의 매? 교사 폭력? 찬반 논쟁

 


 




















'사랑의 매' 교사 체벌 찬반 논쟁

1992. 10. 20 [경향신문] 21면



 







그러던 76년, 대법원은 밤거리를 쏘다닌 7명의 남녀 중학생을 나무라며 때린 지방의 한 중학 교장 사건과 관련, “훈육을 위한 어느 정도의 체벌은 형사 처벌대상이 아니다.”는 판결을 내놓았다. 78년엔 평소 허약한 체질의 학생 뺨을 한차례 때렸다 숨지게 해 기소된 체육교사에게도 무죄가 선고됐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교육당국은 더욱더 체벌금지 입장을 고수했다. 문교부는 그해 전국 교육감과 5대 도시 고교 교장 회의에서 “교사의 학생에 대한 체벌은 물론, 폭언 구타 단체기합도 일절 없도록 하며 특정학생에 대한 편애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체벌 합법화를 공식 논의 무대에 올린 건 83년이었다. 4월 대한교련이 ‘교육상 필요할 경우, 교사가 학생에게 체벌을 가할 수 있도록 하고 교사에 대한 폭행은 가중 처벌한다.’는 요지의 교권보호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공표했다.




 


 


 
















학부모가 대수롭지 않은 학생 체벌에 항의, 학교로 찾아와 교사를 폭행하는 일이 벌어지고 고교생이 조회불참을 나무라는 교사를 폭행한 사례도 빚어진 것이 교권보호 주장에 힘을 실었다. ‘사랑의 매냐, 교사 폭력이냐’는 논쟁이 다시 불붙었고 그 와중에서 예기치 못한 불상사가 일어났다.




6월, 서울의 한 중학생이 교사에게 맞아 장이 파열됐고 이를 괴로워한 20대 교사가 학교에서 음독자살했다. 그는 교장과 자신이 담임을 맡은 반 학생들에게 쓴 유서에서 우발적 실수지만 교육자로서 책임을 지겠다는 절절한 뜻을 밝혔다. 체벌을 둘러싼 찬반논쟁이 다시 격렬하게 일어났다. 그러자 문교부는 다시 어떤 이유로든 체벌을 해서 안 된다는 긴급지침을 각 학교에 내려보냈다. 교육법 정신에 따라 일체 체벌을 금지하며 바람직한 학생지도 기법을 개발하라는 것이었다.




92년에도 수업시간에 만화를 보던 학생을 지시봉으로 때렸다 팔이 부러진 것을 비관한 중학교 여교사가 자살했다. 그해 말 대통령 교육정책 자문회의 소속 교수들이 국민 5천 명을 대상으로 ‘교육에 관한 국민의식조사’를 해본 결과 63.4%가 교육목적의 체벌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그해 모 교육 월간지가 중고생 2천9백 명을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48.6%가 선생님으로부터 체벌을 포함, 심한 벌을 받은 적이 있으며 78.6%는 체벌이 학교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응답했다. 95년 한국교육개발원이 성인 남녀 1천5백 명을 상대로 한 의식조사에서는 68.3%가 체벌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한때 체벌 대신 학생들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벌금을 물게 한 학교도 있었다. 지각하거나 수업 중 졸면 500원, 숙제를 안 해오면 1000원 등을 걷어 학급비로 쓴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바로 체벌보다 못한 비교육적 처사라는 비판에 봉착했다. 반성문 쓰기, 청소당번 시키기, 급우 심부름하기 등 체벌을 대체할 의견도 백출했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학교 구타는 잊을 만하면 튀어나오는 두더지 게임의 양상까지 보였다.




최근 서울시 교육청이 2학기부터 학교체벌을 일체 금지토록 한데 대해서도 의견은 갈리고 있다. 과거 체벌을 둘러싼 논쟁이 순수한 교육적 차원, 인권과 교권, 매 맞지 않을 권리와 집단교육에서의 불가피한 질서 확립의 문제였다면 이번 체벌논쟁에는 이념문제까지 가세했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학창시절, 사랑의 매와 존경스런 선생님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은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교사의 감정적 폭행에 대한 응어리가 불쾌감과 한으로 남은 경우도 없지 않다는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지각하면 500원, 숙제 안해오면 1,000원..초중교 체벌 대신 벌금

1992. 11. 4 [동아일보]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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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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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 | 추천 0 | 08.17  
맞아 그땐 저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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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 | 추천 0 | 08.17  
추천해드렸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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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 | 추천 0 | 08.17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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