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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박물관
정주영회장의 80년대 행적
정주영 | 2012.02.19 | 조회 19,036 | 추천 108 댓글 4
























1980년대, 후퇴하는 한국 경제 동승기










 

















#사진1#



1980년대. 또다시 군부통치 시대였던 이때, 정주영은 누구보다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정주영은 자수성가형 기업가인데, 자기 손으로 일군 기업들을 강제로 빼앗기다시피한 아픔을 겪게 된 것이다.

우리 경제는 1977년을 기점으로 점점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경기 흐름을 타는 까닭이기도 했지만, 80년대 들어서면서 몰아닥친 우리의 정치 현실이 경제를 제대로 이끌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1980년 5월 31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가 발족되면서 국보위 시대는, 국보위 위원장의 비상대책에 따라 진실한 기업은 위축되고 권력에 편승해 이권을 차지하려드는 기업이 날뛰었던 경제계 혼란의 시대요, 정주영에게는 암흑의 수난시대였다.
훗날 정주영이 대통령 후보에 출마함으로써 정치에 입문하게 된 것도 1980년대에 경제인으로서 겪어야만 했던 아픔을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라의 조타수 역할을 하는 정치인들이 경제에 대해 너무 무지했었고, 시류에만 편승하려는 경제인들의 얄팍한 술수가 판을 치던 1980년대의 잘못으로 전체 국민 경제가 회복하기 어려운 지경으로까지 떨어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많은 기업들이 80년대를 넘기지 못하고 쓰러져 갔다. 정주영과 그가 일군 현대도 한국중공업을 빼앗기다시피 하는 등 숱한 아픔을 겪었다. 그러나 정주영의 도전 정신은 이러한 어려움을 발판으로 더욱 넓은 세계로 도약하는 밑받침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올림픽 유치 책임을 떠맡고
 

















#사진2#



1981년 5월, 기업인 정주영에게 올림픽 유치라는 임무가 주어졌다. 물론 정주영이 원해서 맡게 된 것은 아니었다. 사전에 일언반구 말도 없다가 갑자기 통고를 받고 물러서지도 못할 상황이 된 것이다.

주어진 일을 안 할 수도 없고 일을 하는 이상은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 정주영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 국무위원들 대다수가 올림픽 유치를 불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었다. 우리보다 월등히 나은 조건을 내세우는 일본이 경쟁 상대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올림픽 유치 관련 주무부서인 문교부 체육국이 유치 활동에 소요되는 예산 등을 당시 올림픽 망국론자였던 총리에게 상신했다가 일축당하자 그때부터 상황은 더욱 어려워졌던 것이다. 다른 국무위원들의 태도도 마찬가지였다.
9월 20일부터 열리는 바덴바덴에서의 동계, 하계 올림픽 유치 활동 기간에 마련되는 전시장에 낼 홍보 영화와 홍보 책자 준비가 제일 급한 것이었고, 이에는 1억8천만 원쯤의 예산이 필요했다. 이 돈은 당연히 신청을 하려는 서울시가 내야 하는 것인데 서울시에는 올림픽과 관련된 당해 연도 예산이 없어 불가능하다고, 먼 산 바라보듯 하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정경 유착이란 의혹 방지 수단으로, 다음해 예산으로 변제한다는 조건을 달아 1억8천만 원을 입체(立替)해 주고 영화를 제작하도록 했다.

정주영은 우선 정부의 유치 의사를 타진했다. 문교부장관은 대통령의 지시라며 조금은 미온적이었지만 당시 안기부장은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당시 안기부의 위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 때문에 정주영은 우리 기업이 거래하는 각국 기업인들을 통한 그 나라의 IOC위원 접촉을 염두에 두고 안기부장의 지원 다짐을 다시 확약 받았다. 정주영은 우리 기업인들이 현지에 와 합심해서 활동하는 등의 온갖 정성을 기울이면 올림픽 유치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 생각했다.












 

















#사진3#



운명의 날이 다가왔다. 정주영은 유럽을 돌아 바덴바덴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미온적이던 일부 기업인들은 안기부가 나서서 바덴바덴에 모이도록 협조해 주었다. 출발에 앞서 정주영은 현대 프랑크푸르트 지점에 긴급 전문을 보내 급박한 일정 계획 아래 현지 도착 후 관련국과의 로비, 각종 지원에 대한 만반의 준비 명령을 내렸다. 현대 프랑크푸르트 지점의 전 직원과 그 부인들, 밥하는 아주머니들까지 이미 바덴바덴으로 아예 지점을 옮겨 현지 사무소 준비와 임대 주택 확보를 끝냈다. 정주영은 바덴바덴에 도착하자마자 철저한 사전 정보 입수 및 개별 로비 활동 전개, 제 경비 지원 체제 구축, 치밀한 사후 관리 및 일일 점검 등, 수주 전략과 똑같은 득표 전략을 수립했다.

그러나 유치 주최측인 서울시장과 우리 IOC위원이 나타나지 않았다. 세계 각국의 IOC위원들이 묵고 있는 브래노스 파크호텔 출입은, IOC위원이 와서 그 호텔에 투숙해 주어야 그를 만난다는 구실로라도 들어가 다른 나라 IOC위원들을 접촉할 수 있다. 그런데 IOC위원이 오지 않았으니 답답한 노릇이었다.
한번 맡은 일을 다른 사람들이 협조하지 않는다고 그만 둘 상황이 아니었다. 정주영은 우선 꽃바구니 하나씩을 IOC 각국 위원들 방으로 넣어 주었다. 그때 경쟁상대였던 나고야시는 IOC위원 부부들에게 최고급 일제 손목시계를 선물했던 모양인데 시계 선물에 대한 인사는 없고 정주영의 꽃바구니은 가는 곳마다 환영받고 고맙다는 인사를 받았다.

조상호 대한체육회 회장, 최만립 총무를 비롯해서 우리 경제인들도 만사를 젖히고 달려와 자기 호주머니 돈을 쓰면서 참으로 열심으로 활동해 주었다.

마침내 9월 30일 오후 4시. 사마란치 IOC위원장이 불어로 “쎄울 꼬레아!”를 선언했다. 바덴바덴의 10일 간은 갖가지 애로 속에서도 전원이 하나로 단합되어 그 힘으로 불철주야의 노력을 기울여 얻어 낸 대승리였다.
















서산 간척지 공사  
 

















#사진4#



광활한 서산 앞바다를 메워 농토를 만들겠다는 정주영의 생각은 농촌에서 자란 정주영의 오랜 꿈을 이루는 사업이었다.

70년대 말, 현대는 정부로부터 매립 허가를 따내고 중동의 중장비 3백50대를 단계적으로 들여왔으나 점차 가중되는 정치적인 불안과 자금 사정 등으로 착공 시기가 점점 늦어졌다. 그러다가 정권이 바뀐 후인 1982년 4월에야 B지구의 방조제 연결 공사를 먼저 착공했고 그 이듬해 7월에 A지구를 착공했다.

이 지역은 조석으로 간만의 차가 심할 뿐만 아니라 특히 썰물 때는 물오리의 다리가 부서질 정도로 물살이 세어 방조제 공사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진 곳이었다.

사업 승인 신청서를 접수했던 농수산부는 물론 회사 중역들도 이 사업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여기에 쏟아부을 돈이면 다른 데다가 당장 내년부터라도 개간해서 씨를 뿌려 수확할 수 있는 상당한 땅을 사고도 남을 액수였기 때문이다. 기업 차원에서 이익 추구만을 목적으로 한다면 아예 착수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서산농장의 헬기그러나 정주영은 반대를 무릅쓰고 공사에 착수했다. 방조제 공정에서 가장 큰 난점은 밀물 썰물때의 유실(流失)을 어떤 방법으로 최소화하느냐에 있었다. 특히 A지구 방조제 최종 물막이 공사가 난관이었다. 멀찍이 서서 바라보기만 해도 몸이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초속 8미터의 무서운 급류였다. 현대식 장비를 전부 갖추고도 손쓸 방법이 없었다. 이때도 상식을 뛰어넘는 발상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항간에 화제가 되었던 유조선 공법이었다. 해체해서 고철로 팔 생각으로 30억에 사들여, 울산에 정박시켜 두었던 스웨덴 고철선 워터베이호를 끌어다 물줄기를 막아 놓고 양쪽 방조제에서 바윗덩어리를 투하시키는 방식이었다.

이 물막이 공사는 ‘뉴스워크’와 ‘타임’지에 소개되었고 그 후 런던 테임즈강 하류 방조제 공사를 맡은 세계적인 철구조물 회사에서 유조선 공법에 대한 문의를 해오기도 했었다.

이 공법으로 정주영은 2백90억 원의 공사비를 절감했다.

이 대역사로 정주영은 지도를 바꾸고 3천3백만 평의 농지를 얻었다. 담수호 면적을 포함하면 모두 4천7백만 평이며 간척지 면적은 여의도의 33배 넓이였다.
















첫 북한 방문
 

















#사진6#



1989년 첫 소련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정주영은 북한 로동당 서열 제4위였던 허담의 초청으로 북한 방문길에 올랐다. 그리고 그때 북한에도 고립을 면하기 위해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 방문에서 정주영은 몇 가지 사업에 대한 실마리를 풀어가기로 합의했다.

첫째가 금강산 개발 문제였다. 그들은 북한 내 자본으로 금강산 개발을 생각하고 있었다. 정주영이 그들을 설득한 것은 이런 내용이었다. 미국에 물건을 팔 목적으로 공장을 지어야 할 경우, 내 돈만으로도 충분히 지을 수 있어도 일부러 미국 자본을 끌어들인다. 그래야만 그들이 자국 내에 광고도 하고 관심을 갖는 법이다. 결국 외국 관광객을 끌어들이려면 세계의 돈을 모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7#



다음은 원산에 있는 철도 차량 공장에 현대가 기술을 제공해서 생산을 확대시켜 수출을 하는 문제였고, 점차 원산에 있는 수리조선소의 도크를 만드는 일에서부터 북한과 현대가 시베리아에 코크스 공장을 건설하여 북한에서도 쓰고 중국에도 팔 수 있도록 하자는 합의까지 이끌어냈다.

열흘 간 평양에 머물면서 오전에는 회의, 오후에는 관광을 하는 순서로 일정을 보냈다. 관광이래야 그들이 짜놓은 순서대로 따라가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그들이 보여주었던 공업 시설 중 경쟁력 있는 제품은 시멘트를 제외하면 전혀 없었다.

강원도의 고향 집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40년 동안 분단된 민족의 비극과 체제의 이질성을 실감하면서 착잡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다. 그러나 첫번째 북한 방문 때 만들어진 인연으로 정주영은 금강산 개발을 해냈고, 극히 부분적이긴 하지만 분단 이후 남쪽 주민들이 북한 땅을 방문하는 계기가 되는 초석을 만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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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숑쿠숑 | 추천 0 |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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