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마라토너
올해 이탈리아 로마에서 펼쳐진 로마마라톤, 결승점인 콜로세움에는 헨리 케로노가 1위로 결승테이프를 끊은 지 5시간이 지나도록 시민들이 자리를 뜨지 않았다. 바로 미국 워싱턴에서 온 페냐 크라운 할머니, 증손녀까지 있는 여든여덟 살의 할머니 마라토너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호호백발에 구부정한 허리로 가쁜 숨을 가다듬으며 크라운 할머니가 42.195km를 7시간 30분만에 달려 결승선을 통과하자 사람들의 입에서 탄성이 쏟아져 나왔다. 관중들은 할머니에게 뜨거운 환영의 박수와 악수를 청했고 아이들은 할머니의 뺨에 키스를 건넸다.
할머니는 최고령 여성 마라토너였으며 생애 8번째 풀코스 완주였다. 더욱이 세 차례나 재발한 암과의 싸움을 극복한 의지의 마라토너이기도 했다. 할머니는 원래 육상 선수도 아니었고 취미로 하이킹을 즐기는 정도였다. 그런데 70세가 되던 83년 할머니는 마라톤 풀코스 정복을 인생의 목표로 세우고 매일 5km를 달리며 훈련했다. 그리고 6개월 뒤 LA마라톤 대회에서 4시간 47분의 기록으로 풀코스를 완주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그 뒤 결혼 50주년을 맞은 86년에는 결혼식의 추억이 서린 캐나다 몬트리올마라톤에 풀코스를 달렸으며, 같은 해 중국 상하이 대회에선 유일한 여성 참가자였다. 그러다 덜컥 유방암에 걸린 할머니는 세 번의 수술을 하며 암과의 힘겨운 싸움을 해야 했는데, 그때도 할머니는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크라운 할머니는 로마대회를 마지막으로 은퇴하면서 “마라톤은 나에게 마치 부작용 없는 약과 같았습니다. 울적할 때 달리면 언제나 웃으며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으니까요. 늙었다고 주저하지 말고 당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도전해야 합니다” 라는 말을 남겼다.
사람이 무덤 앞까지 갈지라도 희망을 포기하지 말라는 말, 여든여덟 살 페냐 크라운 할머니의 희망은 아직도 달리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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