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정부 예산이 513조원 수준으로 편성될 것이라고 한다. 올해보다 9.2% 증액된 규모다. 홍남기 부총리는 23일 “글로벌 경제와 하방 위험이 커지는 상황을 감안했다”고 했다. 513조원으로 늘어나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39% 후반대로, 재정건전성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는 40%를 넘지 않는다. 정부의 내년 예산규모는 두자릿수 인상 주문과 재정 악화 우려를 아우른 절충안으로 이해된다.
우리 경제는 그 어느 해보다 큰 어려움에 처해 있다. 미·중 무역분쟁 등으로 수출 감소세가 9개월째 이어지고, 민간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2%를 밑돈다. 민간 투자·소비도 좋지 않다. 일본이 걸어온 싸움으로 위기감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최근 금리를 1.5%로 인하했지만 통화정책은 한계가 있고, 가계부채 증가 등 부작용도 만만찮다. 이런 상황에서 내수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방법은 정부지출 확대가 최선이다. 이런 측면에서 정부의 확장적 재정 편성은 잘한 결정이다.
정부재정 확대는 소비·투자·일자리를 늘리고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다.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마중물인 것이다. 문제는 늘린 재정으로 갈수록 나빠지고 있는 경제의 하방 요인을 상쇄할 수 있느냐다. 지난해보다 9.5%나 올린 올해 예산으로도 어려운 경제 여건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자칫 돈은 돈대로 쓰면서 성장률 하락세를 개선하지 못할 경우, 시장은 성장에 대한 확신을 잃는 ‘저성장 이력효과’에 빠질 수 있다.
재정 투입은 3개년에 걸쳐 들인 돈의 1.5배 GDP 개선 효과가 있다고 한다. 최근 국채 이자부담은 낮은 이자율로 잔액 증가에도 되레 줄고 있다. 물가는 안정돼 있다. 재정 확대 여력이 충분한 것이다. 그렇다고 세수기반 확대에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불필요한 세제혜택은 줄여야 한다. 엉뚱한 곳에 세금이 새지 않는지 꼼꼼하게 살피는 일도 중요하다.
정부는 혁신을 위한 투자는 물론 사회안전망을 튼튼히 하는 일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도 사회복지 예산 비율이 낮은 국가다. 반면 노인 빈곤율, 자살률, 청년실업률은 최고 수준이다. 복지 확대는 고용증대 효과도 가장 크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금 (투자)하지 않으면 미래에 더 큰 비용을 지불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지금이 이를 실천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