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스러운 여자가 되어버렸다. 연인 사이도 아닌, 그렇다고 아무 사이도 아닌 헷갈리는 석 달치의 관계에서 “오빠, 대체 우리 사이는 뭐야?” 라고 한마디 따져 물었다가 1초도 지나지 않아 후회했다. 안다. 퍽 세련되지 못한 발언이라는 사실을. 그것도 서른 살 먹은 여자가 내뱉기에는 더욱더 적절치 못한 문장이라는 것쯤은. 사춘기 소녀도 아니고 몇 번 같이 잤다고 해서 ‘우리 사이’의 책임감을 운운하며 중간 점검을 들이미는 난감한 꼴이라니. 일단 이렇게 먼저 따지고 물은 자체가 이 게임의 패자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나선 셈이다. 우리가 어떤 사이였나. 각각 마누라 남편 옆구리에 끼고도 평생토록 만나고 섹스하자, 손가락 걸고 약속한 이 시대 쿨한 관계의 표상. ‘당신은 뒤끝이 없어 좋아’ 라며 낄낄대던 ‘끼리끼리 논다’ ‘초록은 동색’ ‘가재는 게 편’ 따위 속담의 주인공. 그러니까 서로 인정하는 무책임한 남녀의 집합체. 그런데 이런 주책, 감정이 생겨버렸다. 아니, 왜? 누가 알겠나. 내 마음이라도 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는 것이 내 마음인 것을. 이미 관계는 꼬여버렸다.
통속극의 남과 여
“자, 여기 네 가지 방법이 있어. 하나, 사귄다. 둘, 다시 예전처럼 친한 오빠 동생 사이로 지낸다. 셋, 지금까지 그래온 것처럼 섹스도 하는 친한 오빠 동생 사이. 넷, 헤어진다.” 침묵으로 일관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학력고사 세대답게 사지 선다형이다. 개인적으로 1번과 4번은 아니었으면 한다는 코멘트까지 곁들여서. 친절도 하셔라. “그럼 두 번째 것으로 하자.” 답하자 그의 얼굴엔 난감함이 흐른다. “3번 하면 안 돼?” 장난하나. 당연하겠지만 그는 아무것도 잃지 않으면서 자유롭게 다른 여자도 만날 수 있길 바랐다. 어이없게 눈물이 흘렀다. 통속극의 대본으로 보자면 대략 이런 게 아닐까?
여자 B : (남자의 말에 눈물 흘리며 고개를 젓는다.) 미안해요. 남주인공: (말없이 고뇌에 찬 표정으로 한숨을 쉰다. 울고 있는 B를 안는다.)
여자 B : (그의 품에 안긴 채로) 사랑해요.
<미안해요, 사랑해요>식의 가상 드라마와 달리 머뭇거리던 우리의 남주인공은 ‘넌 좀 쿨한 줄 알았더니…’라는 한마디를 남긴 채 그대로 차를 돌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여자 B는 ‘사랑해요’대신 침묵을 선택했다. ‘투 비 컨티뉴’일지, ‘디엔드’로 끝날지 알 수 없는 오픈된 결말. 왜 나는 쿨하지 못할까, 어쩐지 스스로 한심하고 죄책감이 드는 새벽이었다. 그리고 그날 꿈속에서 나는 그놈을 총살했다.
현자 가라사대, 쿨한 관계란…
창피함과 혼란, 원망 플러스 후회로 점철된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 시대 최고의 지식인 ‘네이X’에게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전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뭐 이런 요지로 ‘쿨한 관계’의 몇 가지 연관 단어를 검색하자 포털 사이트 ‘언니네’를 통해 현자가 나타났다. “쿨함의 요지는 이용하거나 이용당하는 것을 그다지 개의치 않는 마인드라 하겠습니다.” 산뜻한 정의로 시작되는 답변은 스크롤을 내릴수록 감탄의 연속. 현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었다. “만일 마음이 하해와 같이 넓고 넓어 쥐뿔만큼 받고 태산같이 우려 먹혀도 ‘이번 생에 보시한 것, 다음 생에 받겠거니’ 할 수 있다면 어느 상황에서 어떤 상대와도 쿨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생에서 해탈하여 이 땅에서 부처된 광명을 누리는 자, 그 얼마나 되겠습니까? 결국 중생에서 쿨함이란 쿨한 성품 못잖게 쿨할 수 있는 조건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아멘. 이미 그곳 지식 게시판은 비슷한 문제로 번민하는 중생의 한숨 섞인 질문들로 사바세계를 이룬 터, 현자의 가르침에 ‘추천’을 클릭한 자는 무려 그 수가 수백 대에 이르고 있었다. 그 구체적인 조건을 설명하기에 앞서 현자는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쿨한 관계를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 정리했다. 다음은 그 내용이다.
<현존하는 세 가지 쿨한 관계의 초간단 상황 정리>
첫째, 내가 이용당하는 것보다 더 많이 상대방을 이용하는 착취 관계.
이지 코스. 쿨할 것이냐 말 것이냐 잠시 고민하는 시기만 잘 넘기면 끝.
둘째, 내가 이용당하는 것만큼 상대방을 이용하는 상호 호혜 관계.
타고난 천품이 쿨한 자만이 쿨함을 유지한 채 살아남을 수 있는 그야말로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사이. 천품이 그러하지 못하다면 머리가 부서지는 고통을 겪을 것이나 하늘이 점지한 쿨러라면야 천수를 누리며 살 터.
셋째, 나는 조금 이용하고 이용은 많이 당하는 피착취 관계.
언뜻 쿨한 듯 보이나 쿨한 척하는 것일 뿐. 이는 부처가 아니고선 결코 넘을 수 없는 경지로서 가히 범인의 절대 한계선이라 하겠다.
세 번째 단락에 마우스의 왼쪽 버튼을 누르고 블랙 박스. 그랬다. 번민중인 중생의 대다수는 바로 이 세 번째의 딜레마에 봉착해 있었다. 그는 이때의 심리 상태를 이렇게 꼬집는다. “피착취 관계 시에는 이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의 못남을 음으로 양으로 한탄하며 뭔가 각오를 새로이 할 계기만 생기면 단기, 중기, 장기 가릴 것 없이 설정하는 인생목표마다 ‘과거 청산, 관계 청산’을 무한 반복하며 되뇌는 법이다.” 구구절절 옳은 말씀. 사실상 두 번째의 상호 호혜 관계도 자세히 그 면면을 들여다보면 세 번째의 피착취 관계에서 허덕이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자고로 사람은 자기가 받은 것보다 준 것을 더 크게 생각하고 자기가 받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두고두고 서운한 반면, 주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인식도 못하고 지나가는 것이 태반이기 때문이다. 씁쓸하지만 결국 이 세상 대부분의 쿨한 관계란 첫 번째나 세 번째인 셈이니, 오, 해탈의 경지란 멀고도 험하여라.
성공적인 쿨러의 필수조건
사실 본인이 첫 번째인가, 세 번째 위치에 있는가는 만남의 초기엔 크게 와 닿지 않는다. 하룻밤의 초단기 코스라면 매너 정도만 있는 사람을 만나도 특별히 손해 본다는 기분은 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수개월을 넘어가는 중·장기의 쿨한 관계라면 여기엔 조건이 따른다. 현자께서 다시 한번 답하시니, 이때다. 과연 누구의 자존감이 바닥을 칠 것인지, 그래서 누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엔 스펙을 비교해볼 것을 당부한다. “스펙만 분석해도 석 달 후의 상황이 단번에 나온쿨한 척해야만 하는지, 또 누가 쿨한 척하는 자를 사뿐히 즈려 밟고서 본인의 인생을 완벽하게 꾸려가게 될지.” 그렇다면 스펙이란 무엇인가? 취업 시의 학점과 토익 점수처럼 눈에 보이는 객관적 점수의 합산이다. 연애에서는 인물·직업·재산 등이 여기에 해당하겠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스펙의 요소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누가 더 아쉬운가’ 하는 중요도에 관한 문제. 가장 이상적인 상태는 본인은 상대를 대체 가능한 소모품으로 여길 수 있으나 상대는 목을 매는 그런 경우다. 이 중요도의 문제는 헤어졌을 때를 가정해봄으로써 쉽게 답이 나온다. 본인이 상대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의 목록과 상대가 본인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의 목록을 작성해보는 것. 기타의 애인이나 가족, 친구는 물론이거니와 그야말로 사람이 아닌 물건, 대체품이라도 상관없다. 단, 스스로 경험을 하여 이미 검증된 바 있는 효과가 확실한 것만 계산에 넣어야 한다는 게 현자의 꿀 같은 말씀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일이나 취미 생활이 될 수도 있겠다. 어쨌든 ‘너 없어도 잘살 수 있음’을 확실하게 보장하는 것들의 리스트를 만들어 꼼꼼히 따져보라. 이 사람이 지닌 천품이 쿨한 것인지, 아니면 그는 지금 둘 사이의 스펙 차이가 보장하는 쿨함을 만끽하고 있는 것인지. 아무리 쿨한 척하느라 속이 타들어가도 상대야 귀 막고 눈 감고 모른 척하면 그뿐이라는 진실. “즉 효용은 아주 많지만 내가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을 딱 내가 필요한 만큼만, 내 가려운 데 긁을 때 위주로 만나는 것이 쿨함의 정석이라 하겠다.” 브라보. 이보다 더 명쾌할 수는 없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잠수종과 나비>라는 영화를 봤다. 한쪽 눈만 살아 있는 전신 마비 남자의 인간 승리를 보여주는 감동 휴먼 스토리. 그 영화가 주는 교훈이 또 하나 있었으니, 남자는 한쪽 눈을 깜박거릴 힘만 있어도 바람을 피운다는 헛헛한 진리. 숟가락 들 힘조차 없어도 그게 가능하더라. 통속극 <미안해요, 사랑해요>의 남자 주인공은 오늘도 열심히 다른 여자들과의 데이트에 여념이 없는 모양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자 B도 클럽에서 다른 남자들과 춤을 췄다. 별 상관없는 누군가와는 잠도 잤다. 맞선을 본 상대와는 몇 번인가 조신한 데이트까지 즐겼다. 그런데, 그러거나 말거나가 아니었다. 새삼스레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꺼내 들고 도 닦는 자세로 읽어 나가는 폼이나 <숫타니파타>의 한 구절을 외우는 게 요즘 그녀의 서글픈 근황이다. ‘연정에서 근심이 생기는 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쿨한 관계에서 밀려난 자의 말로. 지구는 점점 뜨거워지고 사람들은 쿨러를 예찬한다. 그런데 불행하다. 따지고 보면 현생에서 해탈하여 무소유의 자유를 누리는 자 얼마나 되겠는가. 김연수의 소설 속에서 ‘사랑이라니, 선영아’를 외치던 냉정한 남자 진우도 결국 이렇게 묻지 않던가.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후생을 기약하기보단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면 좋겠다. 모호하고 불안정한 파트타임 파트너가 아니라 자유로운 긴장 속의 풀타임 파트너. 부패하는 사랑이 방부제 먹인 쿨함보다 건강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