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인간수업> 포스터. ⓒ ?넷플릭스
2018년 예능 <범인은 바로 너>, 2019년 드라마 <킹덤>의 성공 이후 넷플릭스 한국 오리지널 열풍이 시작되었다. 2019년에 몇 편의 드라마와 영화가 나왔고, 2020년엔 그야말로 쏟아져 나올 예정이다. 하지만 아직 <킹덤>에 필적할 만한 넷플릭스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 와중에 지난 4월 29일 공개된 <인간수업>이 눈길을 끈다. 아니,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하이틴과 범죄 장르가 섞인 문제작으로, 성매매가 주요 소재기 때문이다. 전 세계로도 동시에 송출되는 만큼, 영어 제목도 중요할 텐데 'Extracurricular'라는 어려운 단어이다. '학교의 정규 수업 이외에 이루어지는 학습, 즉 과외수업'을 가리키는 동시에 '불법, 부정, 부도덕'의 의미를 가진다.
한글 제목으론 쉬이 유추하기 어렵지만 영어 제목으론 유추해볼 수 있을 듯, 학생들이 학교 밖 사회에서 배우는 인생을 뜻하면서, 그들이 불법적이고 부도덕한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말하기도 하는 것 같다. '인생수업'이 아닌 '인간수업'이라 더 처연하고 스산하게 다가온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킹덤>을 이을 넷플릭스 한국 오리지널의 또 다른 메인으로 충분하다. 아니, 적격이라는 생각이 든다.
성매매 사업에 뛰어든 미성년자
계왕고등학교 2학년 오지수(김동희 분)는 아웃사이더이자 조용히 공부 잘하는 남학생이다. 하지만, 그는 학교 밖에서 일명 '삼촌'이라는 이름으로 조건 만남을 알선하고 이왕철(최민수 분) 실장을 통해 경호까지 책임지는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아빠는 도박중독자에 엄마는 그런 아빠를 피해 집을 나갔다. 혼자 살고 있는 그는 이후의 평범한 삶을 꿈꾸며, 그렇게 되기 위해선 9000만 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성매매 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그러나 6000만 원을 넘게 번 시점에, 아빠에게 도둑맞고 만다. 그에게, 반 친구 배규리(박주현 분)가 다가온다. 빈털털이가 된 오지수에게 돈을 투자하며 동업을 제안하며 다시 사업을 시작하다고 한다.
배규리는 엔터테인먼트 CEO를 부모로 둔 부잣집 딸에 학교에서는 누구보다 잘 나가는 인사이더 여학생이다. 하지만 그녀는 상상 속에서 아빠 엄마를 죽여 버릴 정도로 집과 부모를 혐오한다. 손목을 그어 자살을 기도한 적도 있다. 하지만, 부모의 배규리를 향한 말 못할 압박은 줄어들지 않는다. 배규리는 돈을 모아 독립하고 싶다. 그때 우연 또는 필연으로 오지수의 사업을 알게 되고, 그의 아빠가 오지수의 돈을 훔쳐갔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되며, 그에게 투자 후 동업을 제안한 것이다.
한편, 서민희(정다빈 분)는 2학년 짱 곽기태(남윤수 분)와 사귀며 그에게 조공을 바치고자 조건 만남을 뛰는 생활을 하고 있다. 그들 또한 오지수, 배규리와 같은 반인데 서민희가 뛰는 조건 만남 운영자는 다름 아닌 오지수다. 이들 넷은 점점 얽히고설키게 된다. 그런가 하면, 이들 네 명의 학급 담임이자 배규리와 오지수가 속한 동아리 사회문제연구반 담당 교사 조진우(박혁권 분) 선생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고 계왕고등학교 전담 경찰관 이해경(김여진 분)은 특유의 촉으로 오지수, 배규리의 사업 끄트머리를 계속 쫓는다. 과연 그 끝엔 무엇이 있을까?
뻔하고 흔한 학원물 아닌, 영리한 청소년범죄물
<인간수업>은 한국에선 보기 힘든 청소년범죄 이야기를 가감없이 풀어내며 뻔하고 흔한 '학원물'에 머물지 않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호평하는 쪽에서 말하곤 하는 '제2의 킹덤'을 넘어서는 작품으로도 기억될 수 있을 듯하다. 연출, 스토리, 연기, 메시지 등 어느 하나 빠진 것 없이 두루두루 좋은 모습을 보였다.
작품은 섬세함보다는 속도감을, 절제보다는 분출을, 통속보다는 신선을 택했다. 거기에 그야말로 '요즘' 고등학생들이 쓸 만한 말과 할 만한 대화와 생각들이 폭발적으로 터져나와 현실감을 부여한다. 개성이 투철한 캐릭터들이 아닌, 상황에 휘둘리는 캐릭터들이 주를 이루어 답답함을 자아낼 때가 많지만 이 부분도 현실감을 부여하는 데 크게 한몫했다. 어른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아이도 아닌 고등학생들이니 만큼, 주도적으로 삶을 살고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사실 세상에 크게 휘둘리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범죄 장르인 만큼, 청소년물과 범죄물의 경계에서 교묘하게 줄을 타야 하는 바, 섬세함을 발휘해야 할 때는 미시적인 관점보다 거시적인 관점을 택한다. 좋지 않은 선택과 나쁜 답 때문에 수렁으로 빨려들어갈 때, 사회 문제에의 메시지에 천착하기보다 스토리를 끌고 나가 흥미를 주고자 했다.
작품 중간 중간 작가적 요소가 다분한 면모도 자주 보였다. 세상과 담을 쌓고 웅크린 오지수가 유일하게 보살피는 존재인 소라게와 오지수와 배규리를 이어주는 과자봉지, 오지수의 가학적인 꿈과 배규리의 끔찍한 상상 덕분에 풍부함이 곁들여졌다. 장장 10시간 짜리 드라마 <인간수업>이 웬만한 2시간짜리 영화보다 훨씬 더 짧게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 있다.
문제의 궁극적인 원인, '돈'
한편 평범하게 살고 싶어 '돈'이 필요한 오지수, 죽기보다 싫은 집에서 나오고 싶어 '돈'이 필요한 배규리, 자신을 증명하고자 '돈'이 필요한 서민희 등 작중의 고등학생들은 하나같이 돈이 필요하다. 풋풋한 사랑, 화사한 꿈, 기대되는 미래 따위가 아닌 원하는 나의 삶을 살기 위해 꼭 필요한 돈 말이다. 그 이면에는 항상 어른이 있다. 어른이 아이들을 보살펴주기는커녕 등을 떠민다. 물론, 아이들을 도우려는 어른들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돈 만큼 아이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건 어른들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 것이다. 사회가 해 주어야 할 문제이지.
문제는 돈일까,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성매매 사업에 관여하고 운영까지 하는 행위일까. 당연히, 불법적이고 부정하며 부도덕한 짓을 일삼는 행위 자체에 문제의식이 가 닿을 것이다. 그렇지만, 사연에 연민을 가지되 응원을 한다거나 과한 감정이입을 하기엔 심사숙고가 필요하다.
돈이 없어도 그들이 평범하게 살며 자신을 증명할 수 있다면, 아니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면 이런 사달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 아닌가. 물론, 돈을 버는 다양한 수단이 있을 텐데 왜 그런 짓을 해야 하는가라고 물을 수 있다. 그 질문엔 청소년이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으며, 불법적이지만 쉽게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에 청소년이 너무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고 답할 수 있겠다. 이 드라마의 답이기도 하다. 그 안타까움에서 이 드라마가 시작되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