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짜’로 통하던 서울 주요 지하철 상가에 공실(空室) 공포가 커지고 있다. 이 곳엔 주로 미샤·페이스샵·이니스프리 등 로드숍 화장품 브랜드와 편의점, 유명 빵집, 옷가게 등이 입점했다. | 서울 시청역에 줄줄이 비어있는 상가점포. /유윤정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하지만 최근 온라인 쇼핑몰의 급성장과 경기침체가 맞물리며 지하철 점포 폐점이 줄을 잇고 있다. 새로운 주인을 찾지 못해 1년 넘게 공실인 곳도 많다.
22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로드숍 화장품 브랜드 ‘미샤’는 올 중순 지하철 5호선 우장산역 안에서 운영하던 매장을 철수했다. 현재 이 매장은 공실상태다. 화곡역에 있던 ‘어퓨(A’pieu)’ 매장도 최근 문을 닫았다. 어퓨는 미샤 운영사인 에이블씨엔씨(078520)가 젊은 층을 타깃해 만든 또 다른 로드숍 브랜드다. 에이블씨엔씨는 지하철에만 100여개 점포를 운영하며 사업을 확장해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70여곳을 폐점하고 약 30곳만 운영하고 있다.
‘한국판 월스트리트’로 통하는 서울 여의도역에 있던 로드숍 화장품 ‘이니스프리’도 최근 매장을 철수했다. 2009년 새 매장을 연 후 약 10년만이다. 맞은 편에 같이 있던 체험형 매장 ‘그린라운지’도 동시에 폐점했다.
그린라운지는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소비자들이 눈치 보지 않고 제품을 테스트 해볼 수 있도록 만든 이니스프리의 실험 매장이다. 점원이 상주하는 매장에서는 눈치 보느라 실컷 테스트 해보지 못한다는 데서 착안했다. 마음껏 체험해도 물건은 살 수 없다. 써보고 제품이 마음에 들면 맞은편 이니스프리 점포에서 물건을 사도록 연계하는 체험 매장이었다.
| 최근 문닫은 여의도역 이니스프리의 체험스토어 ‘그린라운지’/유윤정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줄서서 먹는 빵집으로 인기를 끌던 시청역 ‘누이애 단팥빵’도 폐점했다. 이 빵집은 천연발효종으로 만들어 부드럽고, 팥이 많이 들어있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인기를 끌었다. 1호선에서 2호선으로 환승하는 길목에 있어 직장인들이 퇴근길에 빵을 사들고 가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줄을 서는 손님이 사라지고 매출도 예전보다 줄면서 결국 문을 닫았다. 이 자리엔 시청역 다른 점포에 있던 액세서리 가게가 이동했다. 액세서리 가게가 있던 원래 자리는 공실로 남았다.
충정로역 5호선과 2호선 환승 지점에 위치해 있던 편의점 세븐일레븐도 문을 닫았다. 주변은 유동인구로 북적였지만 막상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 자리도 아직 공실로 남아있다. 노량진역에 있던 ‘와플대학’도 5년의 임대계약이 끝났지만 이를 더 연장하지 않고 폐점하기로 했다.
매출 대비 높은 임대료를 버티지 못해 자영업자는 물론 대기업 프랜차이즈까지 잇따라 지하철 상가를 떠나고 있다. 2015년 2000개가 넘던 서울 지하철 상가는 4년간 240곳이 넘게 폐점했다. 공실률은 약 11% 수준이다.
서울교통공사가 관리하는 지하철 상가 임대는 공개 입찰을 통한 경쟁 입찰 방식으로 이뤄진다. 최고가를 써낸 사람이 5년간의 상가 운영권을 갖는다.
| 서울 노량진역 앞 와플집. 5년의 계약 임대기간이 끝난 후 폐점했다./유윤정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서울교통공사 구매조달처는 공실인 시청·종로3가·잠실·당산·신사역 등 7개 상가 점포의 공개입찰을 진행했으나 단 한명도 입찰하지 않았다. 두 번 연속 유찰된 후 8개월 넘게 공실 상태다. 인터넷 공매 사이트 온비드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지하철 상가점포의 낙찰률은 약 51%였다.
시청역은 12개 점포 중 현재 임대중인 곳이 6곳으로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시청역 내 25m²(약 7.5평)의 상가점포를 빌리는 데 월 임대료는 최소 350만원 수준이다. 5년의 임대기간동안 2억원이 넘는 돈을 내야한다. 여기에 임차인이 건축·전기 등 인테리어 비용까지 내야해 부담은 더 커진다.
벌어들이는 수익에 비해 임대료가 높은 것도 문제지만 규제가 많은 것도 상가 활성화를 방해하는 요소다. 서울교통공사는 어묵·떡볶이·순대·튀김 등의 식음료 업종이 역사의 품위를 훼손한다는 이유로 입점을 금지하고 있다. 또 편의점이 입점할 경우에는 신문 취급을 할 수 없도록 했다.
상황이 이렇자 교통공사의 임대료 수입도 매년 줄고 있다. 2017년 약 990억원에서 지난해 890억원으로 10%(100억원) 가량 감소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지하철은 유동인구는 많지만 다른 매장과의 차별점도 크게 없고 온라인으로 쇼핑 트렌드가 이동하면서 실제 물건을 구입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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