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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의 역사
swwet | 2020.04.06 | 조회 520 | 추천 1 댓글 1

인류는 언제부터 선거를 했을까요? 다음주면 선거인데.. 그래서 선거에 대해서 알아봅니다. 

선거의 역사

투표와 선거는 동의어가 아니다

투표 장면을 묘사한 고대 로마의 동전 <출처: (cc) Classical Numismatic Group, Inc. at Wikimedia.org>

1913년 6월 4일 영국 런던 남부의 엡섬다운스에서 열린 경마대회에서 한 여성이 국왕 조지 5세의 말 앞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빠른 속도로 달리던 말과 부딪힌 여성은 중태에 빠졌고, 나흘 뒤 세상을 떠났습니다.

에밀리 와일딩 데이비슨(Emily Wilding Davison)이라는 이름의 이 여성은 말에 뛰어들기 전 "여성에게 참정권을!"이라고 외쳤습니다. 선거가 무엇이기에, 투표권을 갖는 것이 무엇이기에 그는 목숨까지 바친 것일까요.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권리를 갖기 위해 많은 이들이 흘렸던 땀과 피를 생각하면 숙연해지지만, '투표하지 않을 권리'도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인류는 언제부터 어떻게 선거제를 이용했을까요. 선거와 투표의 역사를 알아보겠습니다.

아테네의 제비뽑기

소수의 사람이 다수의 사람을 대신해서 대표가 되는 제도는 고대 로마와 그리스, 이슬람 초기의 아랍 등에서도 있었습니다. 그때 다수의 대표자는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기보다는 다수의 뜻을 전달하거나 실행하는 '일꾼'에 가까웠죠. 지금도 많은 정치인들이 유권자들의 일꾼을 자처하지만 선거 때마다 낮은 투표율이 문제가 되는 것을 보면 그 약속을 믿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민주주의의 발원지로 꼽히는 그리스 아테네에선 어떻게 대표자를 뽑았을까요. 정답은 '제비뽑기'입니다. 기원전 4~5세기 아테네의 정치·사회기구는 민회와 500인 평의회, 민중법원, 행정직 등 네 부분으로 구성됐습니다.

그중 민회는 법안을 표결하고 고위직 공무원을 선출하는 역할을 담당했는데 모두 자원자로 꾸려졌습니다. 민회에 모인 사람들 중 제비뽑기로 선발해 500인 평의회를 구성했는데 이들이 법안을 작성하고 행정직을 관리했으며 외교업무를 수행했습니다. 지금의 입법부 역할과 비슷합니다. 사법부에 해당하는 민중법원도 시민들 중 제비뽑기로 6,000명을 뽑아 구성했습니다. 이들은 그날그날의 재판을 담당했습니다. 지금의 배심원제와 비슷하죠?

행정직은 시민들 중 역시 제비뽑기로 뽑힌 약 600명의 공무원과 민회에서 뽑은 100명의 고위공무원으로 구성됐습니다. 이들은 지금의 행정부처럼 실제 행정업무를 담당했습니다. 행정직 중 군사 분야와 재정 분야만 적합한 전문가 후보를 두고 선거를 해서 뽑았습니다.

아테네에서 제비뽑기를 위해 쓰였던 비석 ‘클레로테리온’ (아테네 아고라 박물관) <출처: (cc) Marsyas at Wikimedia.org>

법과 정책을 만들고 판결을 내리는 사람들을 모두 다 '우연'이라는 변수를 통해 뽑았다는 겁니다. 누구라도 다음 제비뽑기를 통해 공무원이나 대표자가 될 수 있었기 때문에, 분쟁도 없었다고 합니다.

벨기에의 문화사학자 다비트 판 레이브라우크는 <국민을 위한 선거는 없다>에서 "제비뽑기와 교대책임제야말로 아테네 민주주의 체제의 핵심이었다"라고 분석했습니다.1)

그는 "아테네에서는 제비뽑기로 선출된 자들에게 할애된 자리의 임기가 1년에 불과했고, 한 번 그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재임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 때문에 시민들은 모든 수준에서 자리를 내어주고 물려받아야 했다. 말하자면 최대한 많은 수의 시민들을 나라 살림살이에 참여시키고 이를 통해 평등을 구현하려 했던 것"이라고 썼습니다. 제비뽑기가 원시적인 선거제도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정신을 구현할 수 있는 적합한 제도였다는 거죠.

제비뽑기는 금세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베네치아(1268년~1797년), 피렌체(1328년~1715년)에서도 방식과 비율은 조금 다르지만, 주요 공직자를 뽑는 방법으로 제비뽑기를 활용했습니다.

베네치아에선 최고 귀족 가문들의 치열한 경쟁을 막는 방법으로 나무 공을 뽑아 지도자를 선출했다고 합니다. 귀족 가문들이 모여 나무 공에서 어느 가문의 이름이 나오느냐를 지켜보고 그 결과에 승복하는 장면을 상상해 볼까요.

레이브라우크의 분석을 보면 제비뽑기를 활용한 기원전 4~5세기의 아테네와 르네상스 시대의 베네치아, 피렌체는 모두 그 사회의 부와 권력, 문화가 정점에 도달해 있던 시기였다고 합니다.

그리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 <출처: (cc) Steve Swayne at Wikimedia.org>

2016년 2월 기준 인구 5,155만5,409명, 유권자 수가 4,000만 명이 넘는 대한민국에선 불가능한 일로 보이신다구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제비뽑기를 했던 아테네 시민의 수는 최소 3만 명~최대 6만 명 정도였던 것으로 기록됩니다.

확실히 인구 수가 적으면 뜻을 모으는 것도, 많은 사람들이 공정하게 참여하는 것도 수월하겠죠. 그렇지만 제비뽑기가 먼 옛날 옛적에만 있었던 '구식' 선거제는 아닙니다.

캐나다와 네덜란드, 덴마크, 아이슬란드, 아일랜드에서도 2000년 이후 각 주에서 제비뽑기로 주민 대표를 뽑는 정치실험을 했습니다. 소수의 엘리트가 권력을 독점하고 여론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비판에서 시작된 정치실험이었습니다. 소규모였고 반대하는 여론도 있었지만, 이 나라들이 보통선거제의 대안으로 수천 년 전 고대 국가에서 시행된 제비뽑기를 떠올렸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공화국의 탄생과 보통선거

영국에서 여성들의 참정권 획득을 위해 여성사회정치연합(WSPU)를 만들고 운동에 나선 애니 케니(왼쪽)와 크리스타벨 팽크허스트(에멀린 팽크허스트의 딸)

누구나 한 표를 평등하게 행사하는 지금의 투표 형태는 18세기 프랑스 혁명 후 공화국의 탄생과 함께 널리 퍼졌습니다. 프랑스 혁명은 왕정을 무너뜨렸고 모든 권력은 민중에게서 나온다고 선언했죠. 민중의 뜻을 가장 효과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1인 1표제라고 믿었습니다. 후보를 정하고 선거운동을 하고, 투표일을 정해 투표소에서 원하는 후보의 이름을 표시한 종이를 투표함에 던지는 방식이 오랫동안 널리 쓰였고 지금도 가장 많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정 연령만 지나면 누구나 동일하게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는 '보통선거'가 정착된 것은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시민대혁명을 일으킨 프랑스도,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미국도, 우리가 선진국이라 부르는 많은 나라들이 처음에는 제한적인 선거권을 부여했습니다. 그리고 평등한 한 표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목숨을 걸고 싸웠습니다.

미국과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처음에는 일정 재산이 있는 백인 성인 남성에게만 투표권을 부여했습니다. 납세능력이 있는 21세 이상 백인 남성만 투표할 수 있었던 미국에선 1870년이 되어서야 흑인 남성도 투표할 수 있도록 법을 바꾸었고, 여성은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1920년에서야 수정헌법 19조를 통해 투표권을 갖게 됐습니다. 참정권을 획득하기 위해 미국 여성들은 백악관 앞에서 몸을 쇠사슬로 묶는 시위를 하며 투쟁했고 많은 이들이 투옥됐습니다.

1917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여성참정권 시위

영국 여성의 참정권 운동은 1860년대부터 조직화됐습니다. 이전에도 참정권 운동은 있었지만, 과거의 운동이 평화로운 집회와 서명을 하고, 청원서를 돌리는 정도였다면 이때부터는 보다 과격한 투쟁도 불사하는 분위기로 바뀌었습니다. 특히 영국 참정권 운동의 상징인 에멀린 팽크허스트(Emmeline Pankhurst, 1858~1928)가 설립한 여성사회정치연합(WSPU) 회원들은 유리창 깨기와 방화, 투옥, 단식투쟁까지 했습니다.2)

영국의 선거권과 피선거권은 돈과 여가를 가진 지주층에게만 부여됐다가 산업혁명으로 확대된 도시 선거구의 유권자들을 포함해 다수의 중산층이 1832년 참정권을 갖게 됐습니다.3) 여기서 중산층의 기준은 ‘1년에 최소 10파운드를 집세로 내는 가구주’를 뜻했습니다.

1914년 버킹엄 궁전에 탄원서를 제출하려다 체포되는 에멀린 팽크허스트

영국 여성들이 참정권을 얻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앞서 소개했던 에밀리 와일딩 데이비슨의 죽 음이었습니다. 데이비슨은 목숨을 걸고 참정권을 주장했지만, 당시 귀족 남성들은 데이비슨의 사고를 경마대회를 지연시킨 골칫거리 정도로 치부했답니다.

분노한 여성들이 데이비슨의 장례식장에 몰려들었고, 그의 장례식은 거대한 여성 참정 시위의 장이 됐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더 많은 여성들과 사회운동가, 인권활동가들이 여성 참정권 운동에 참여했고 에멀린 팽크허스트 등 뛰어난 운동가들의 노력으로 결국 1928년 보통선거가 제도화됐습니다.

여성에게 가장 먼저 참정권을 부여한 나라는 뉴질랜드로 1893년이었습니다. 유럽에서 여성에게 참정권을 처음 부여한 나라는 핀란드로 1906년이었습니다. 프랑스는 1944년, 이탈리아는 1945년에서야 여성들이 투표를 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한국은 1948년 제헌과 함께 한 번에 보통선거제를 정착시켰습니다. 이란은 1963년, 스위스는 1971년 보통선거제를 도입했습니다.

가장 최근에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한 나라는 사우디로 2015년 12월, 건국 이래 처음으로 여성들이 투표장에 나와 한 표를 행사했습니다. 이날 총 3,159명의 지방의회 의원을 뽑는 선거에서 정부가 임명하는 3분의 1을 제외하고 2,106명의 의원을 투표로 뽑았는데, 선거운동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여성 20명이 의원직에 당선됐습니다.4)

1908년 영국 맨체스터에서 열린 여성사회정치연합 회의

별별 선거

조금 특별한 선거 이야기도 해볼까요. 2016년 현재 국민에게 참정권을 전혀 부여하지 않는 나라가 있습니다. 어딜까요. 몇몇 독재국가를 떠올리는 분들이 많겠지만, 지금 소개할 나라는 바티칸 시국입니다.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작은 나라, 세계 가톨릭의 중심 프란치스코 교황이 살고 있는 바로 그곳입니다. 바티칸 시국은 로마에 통합됐다 1929년 독립했습니다. 면적 0.44km, 인구 1,000명의 이 나라 시민들은 선거할 권리도, 선거에 나갈 권리도 없습니다.5) 바티칸 시국 최고의 지도자인 교황은 추기경들의 선거를 통해서 뽑히기 때문입니다.

바티칸 시국의 국가원수는 교황이고 교황이 선종하거나 스스로 물러날 뜻을 밝혔을 때에만 선거를 통해서 후임자를 뽑습니다.

바티칸 시국의 국장(國章)

교황을 뽑는 선거 '콘클라베'는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에서 은밀하게 이뤄집니다. 콘클라베는 ‘열쇠가 있는 작은 방’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교황은 추기경단에서 뽑는데, 선거에 참여하는 추기경단은 비밀유지각서를 쓰고 투표에 임합니다. 투표는 무기명으로 진행됩니다.

과거에는 동시에 교황의 이름을 불러서 만장일치로 한 사람을 불렀을 경우 인정하는 목소리 선거, 추기경들의 선거위원회가 협의에 따라 결정하는 위원회 선거 등의 방법도 있었지만 사라지고 투표 선거만 남았습니다.

3분의 2 이상의 득표가 나올 때까지 투표는 계속되고 투표가 끝난 뒤에는 투표용지를 태워 결과를 밖에 알립니다. 굴뚝에서 검은 연기가 나오면 아직 교황이 결정되지 않았다는 뜻이고, 흰 연기가 나오면 교황이 결정됐다는 뜻이기 때문에 선거기간이 되면 모두가 연기 색깔을 주목하며 기다립니다. 2005년부터는 교황이 결정된 경우 흰 연기와 함께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종소리도 울립니다.

콘클라베가 열리는 시스티나 성당

중미의 작은 나라 코스타리카에선 어린이·청소년 투표를 실시합니다.6) 어린이 투표는 5세 이상 미취학 어린이들이, 청소년 투표는 중고교생들이 참여하는 투표입니다. 어린이들은 어른들이 선거하는 날, 수도 산호세의 어린이 박물관(과거의 교도소를 개조해 만들었답니다)의, 성인 투표소와 똑같이 만들어진 투표소에서 투표를 합니다. 어린이들의 투표 결과는 방송을 통해 어른들의 개표방송 때 함께 공개됩니다.

물론 어린이들의 투표는 실제 선거 결과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코스타리카는 만 18세 이상에게만 투표권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어린이 투표를 실시하는 이유는 어릴 때부터 선거에 관심을 갖게 하고, 정치인들에겐 미래의 유권자들의 선택에 대해 알려주고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라네요.

청소년 투표는 실제 선거보다 3~4개월 먼저 실시되는데 각 학교에서 성인투표와 같은 방법으로 열립니다. 학교별로 개표결과를 집계하는데 방송을 통해서 공개되진 않지만, 중앙선관위가 개표의 전 과정을 관리하고 결과도 각 정당으로 통보됩니다.

투표와 선거와 민주주의는 동의어가 아닙니다. 정치를 잘 하는 것과 선거에서 이기는 능력도 다르죠. 언젠가부터 우리 정치는 선거에서 이기고 지는 능력만을 정치의 중심에 두고 있는 건 아닐까요.

프랑스의 철학자 장 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 1712~1778)는 1762년에 쓴 명저 <사회계약론>에서 "영국 국민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하는데, 한참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이들이 자유로울 수 있는 건 단지 의회 구성원을 뽑는 선거 기간뿐이다. 일단 의원들이 선출되는 즉시 영국 국민은 노예가 되어버린다."라고 썼습니다. 루소의 비판은 2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따끔하게 들립니다.

주석

1
<국민을 위한 선거는 없다> 다비트 판 레이브라우크 지음, 양영란 옮김, 갈라파고스
2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 에멀린 팽크허스트 자서전, 현실문화
3
http://www.parliament.uk/about/living-heritage/transformingsociety/electionsvoting/womenvote/overview/earlysuffragist/
4
http://www.france24.com/en/20151213-woman-wins-seat-saudi-arabias-landmark-elections
5
CIA월드팩트북. 2015
6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2212314075&code=210100&s_code=aw077

[네이버 지식백과] 선거의 역사 - 투표와 선거는 동의어가 아니다 (우리가 몰랐던 세계사, 장은교,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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