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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이슈 | ||||||||||||||
복권 이야기 swwet | 2020.04.26 | 조회 520 | 추천 1 댓글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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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정의다수인으로부터 금전을 모아 추첨 등의 방법으로 결정된 당첨자에게 당첨금을 지급하기 위하여 발행하는 표권(票券). 변천번호를 기입하거나 특정 표시를 하여 판매한 뒤, 제비를 뽑아 미리 정한 당첨조건에 맞을 때 표의 값보다 훨씬 많은 해당 상금을 주는 일정한 규격의 표찰이다. 복권의 기원을 살펴보면, 우선 구약성서에는 제비뽑기에 의한 재산 분배 기록이 있고, 또 로마의 네로나 아우구스투스가 재산이나 노예를 나누어 주기 위해 복표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정부가 운영하는 복권제도는 16세기부터 유럽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광범위한 복권 활용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운영되기 때문에 세금에 비해 보다 손쉬운 재원조달 수단이 되었으므로, 복권은 정부가 통제하기에도 편리했다. 미국에서도 복권제도는 18세기에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퀘이커나 청교도들의 반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주요대학들이 건물 건립 등 재원확보수단으로 복권을 널리 활용했다. 그러나 당첨금을 현금으로 지급하는 현재의 형태와 같은 복권은 1930년 이탈리아의 피렌체지방에서 발행한 피렌체복권이 시초라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예로부터 통 혹은 상자 속에 각 계원의 이름이나 번호를 기입한 알을 넣은 뒤 그 통을 돌려 나오는 알에 따라 당첨을 결정하는 산통계(算筒契)의 일종으로, 당첨자가 계회(契會) 당시의 계전(契錢) 총액을 취득하고 그 뒤에는 불입책임을 면제받는 작백계(作百契) 또는 작파계(作罷契)가 있었다. 내용우리나라 근대적 의미의 복권은 해방 이후에 발행되었다. 일제 말기인 1945년 7월에 태평양전쟁의 군수자금을 조달하기 위하여 승찰(勝札)이라는 복권이 발매되었으나 광복과 함께 무산된 것이다.특히 1947년부터 1949년까지 복권 발행이 무척 활발하였다. 최초의 근대적 복권은 광복 이후 1947년 12월에 발행된 올림픽 후원권으로, 1948년 제14회 런던올림픽 참가 선수들을 후원하기 위하여 발행되어 서울지역에서만 판매되었다. 1949년 10월부터 1950년 6월까지는 3회에 걸쳐 후생복표가 이재민 구호자금 조성 목적으로 「후생복표발행법」에 의거·발행되었다. 6·25전쟁 이후 산업부흥 자금과 사회복지 자금 마련을 목적으로 1956년 2월부터 매월 1회씩 10회에 걸쳐 애국복권이 총 50억 환어치 발행되었다. 당시 정부가 발행 주체가 되고 조흥은행이 업무를 대행하였다. 1960년대에는 5·16군사정변 1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한국산업진흥회가 개최한 산업박람회 소요경비를 충당하고자 산업복표를 즉석복권의 형태로 발행하였다. 이와 유사한 형태로, 1968년 9월부터 10월까지 서울 구로동의 제2수출공업단지에서 열린 무역박람회 경비를 조달할 목적으로 무역박람회복권이 역시 즉석복권 형태로 발행되었다. 이와 같이 복권은 재해대책이나 산업부흥자금을 마련할 필요가 있을 때마다 수시로 발행되었는데, 정기적인 형태로 발행된 첫 번째 복권은 저소득층 주거안정사업 지원을 위해 1969년에 옛 한국주택은행이 발행한 주택복권이다. 1969년 9월 15일 액면금액 100원, 발행 총액 5,000만 원으로 제1회 정기 복권을 발행하기 시작하였고, 300만원으로 시작한 1등 당첨금은 1978년 1,000만원, 1981년 3,000만원, 1983년 1억원, 2004년 5억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서울시내 일원에서 판매되다가 점차 전국적으로 판매지역을 확대하였으나, 1983년 4월부터 올림픽복권을 발행하기 시작하면서 잠정적으로 중단되었다. 주택복권은 1983년까지 574회, 약 1,016억 원의 복권이 판매되었으며, 그 중 당첨금 및 발행경비 등을 제한 약 420억 원을 서민주택자금으로 조성, 군경유가족과 독립유공자 및 그 유가족, 국가원호 대상자, 영세민 등을 위한 아파트 등 약 4만 5,000여 호의 서민 주택을 건설하였다. 차차 각종 복권들이 통폐합 될 뿐아니라 2002년 로또 열풍이 거세지면서 주택복권은 2006년에 폐지되었다. 주택복권이 처음 나온 뒤로 2009년까지 40년 동안 국내에서 판매된 복권은 총 26조 1천억 원에 다다른다. 1983년 4월부터는 1988년 서울올림픽의 기금 조성을 목적으로 「서울아시아경기대회·올림픽대회조직위원회 지원법」 제7조에 의거, 서울올림픽대회 조직위원회를 대행하여 한국주택은행이 올림픽복권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올림픽복권은 1억원이라는 1등 당첨금 때문에 폭발적인 인기로 발매되자마자 매진 사태가 벌어졌다. 매주 일요일에 TV를 통해 공개 추첨된 올림픽복권은 100,000번부터 699,999번까지 60만 매를 1개조로 하여 1조부터 5조까지 300만 매로 구성되어 있으며, 당첨번호 공고를 거쳐 1등부터 6등까지 당첨금을 지급하였다. 이 복권은 올림픽대회가 끝난 1988년 12월 298회로 끝나고, 1989년 1월부터는 다시 주택복권으로 환원되었다. 이 밖에 경기복권은 국민체육진흥기금 및 올림픽기금을 조성할 목적으로 국민은행이 서울올림픽대회조직위원회를 대행하여 1984년 7월부터 발행하기 시작하였다. 경기 결과를 예상하여 기입한 뒤 적중도에 따라 당첨자가 결정되는 체육복권은 야구복권과 축구복권으로 구분되어 발행되었다. 1990년에 나온 즉석 엑스포복권은 1993년 8월부터 11월까지 대전에서 열렸던 세계박람회의 자금 조달을 위해 등장하여 인기를 끌었다. 즉석식복권은 추첨일까지 기다리는 추첨식복권의 단점을 보완하여 복권 구입과 동시에 즉석에서 당첨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마사회에서도 마권 등을 발행하여 복권 문화 정착에 일익을 담당했다. 1993년 9월 1일부터 발행한 다첨식복권은 국내 최초로 복권번호 예약제도를 도입하였으며, 5매 연속번호 구입시 최고 가능 당첨금이 7억 원에 이르렀다. 1990년대 말에는 새 천년과 2002년 월드컵축구 기념을 위한 밀레니엄 복권을 위시해서 다양한 복권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20억 원짜리 밀레니엄 복권은 발매 한 달 만에 150만 장이 모두 팔렸으며, 20억 원 당첨자는 화제의 인물로 연일 매스컴을 타기도 했다. 2002년 12월 2일부터 온라인연합복권인 로또복권의 발매가 시작되었다. 인생 역전을 카피로 내세웠던 로또는 2003년에 복권 시장을 평정했다. 2010년에는 전체 복권 판매액이 2조 5,200억원대를 기록했는데, 이 가운데 2조 4,300억원이 로또 판매액으로 복권 수익의 96%가 로또에서 나오는 것이다. 로또복권은 사행성과 중독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가장 최근인 2011년 7월에는 연금 복권이 발매되면서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연금복권은 다른 복권과 달리 당첨금을 매달 연금식으로 수령하는데, 매주 1등 당첨자 두 명에게 20년 동안 매달 500만원을 지급하게 된다. 과거 10개 기관이 발행하던 복권은 2004년 제정된 「복권 및 복권기금법」에 따라 국무총리 소속의 복권위원회에서 통합하여 발행관리하게 되었고, 이 복권위원회는 2008년 2월 29일 정부조직 개편에 따라 국무총리 소속하에서 기획재정부 소속으로 변경되었다. 복권기금은 복권 수익금 중 30%를 기존복권의 발행용도에 사용하고, 나머지 70%를 국민임대주택 건설 등 저소득층의 주거안정 지원사업, 국가유공자에 대한 복지사업, 소외계층에 대한 복지사업, 문화ㆍ예술 진흥 및 문화유산보존사업 등에 사용하게 된다. 의의와 평가복권은 재정 조달, 불법 도박에의 경도성 순화 등 순기능이 있지만, 사행심 조장, 노동 의욕저하, 중독, 범죄 유발 등의 사회문제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최근 경제 위기, 고령화, 실업 증가 및 노동시장 불안정성 등의 영향으로 복권의 인기는 날로 높아지고 있다. 이에 복권발행을 통한 재정확보는 어디까지나 보충적인 성격일 뿐 대체적이어서는 안되며, 복권발매 수익은 공익을 위해 투명하게 사용되어야 하며, 지나치게 사행성이 조장되지 않도록 복권제도가 운영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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