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
판사인 우정이 형이 술에 취해 얼굴이 벌게져서는 이렇게 말했다.
"광수야, 예전에 내가 술을 안 마실 때는, 술 마시고 우발적으로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람들의 말을 안 믿었어. 다 변명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이렇게 너랑 술을 많이
마시고 취하니까 비로소 그 사람들의 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사람을 심판할 때는 자신의 잣대와 기준만으론 곤란하다.
나는 별게 아니라고 생각한 일이 누군가의 인생에서는 가장 큰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심판하는 위치에 있는 판사는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십수년간 좁은 골방에서 사법 시험을 준비한 끝에 판사가 된다고 해도,
그런 그가 누군가의 잘잘못을 따질 때 판결받는 사람들의 처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면
나는 그 판결에 동의할 수 없다.
그럴 바에는 5000원 넣고 생년월일만 입력하면 사주 풀이가 줄줄 나오는 기계를 개조해서 법조문을 몽땅 입력시키고,
그 기계에 심판받아야 할 사람들의 죄를 적어 넣은 다음,
죄에 대한 처벌 사항을 종이쪽지로 받는 것이 더 나을지 모른다.
적어도 기계는 사람보다 더 면밀하고 착오는 없을 테니까 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심판하는 일을 사람에게 맡긴 것은 기계에는 없는 경험과 따뜻함,
정의로움이 사람에게는 있기 때문이다.
그 경험과 따뜻함과 정의로움으로 사람들을 대하라는 뜻인 것이다.
판사와 변호사, 선생님, 경찰, 의사, 군인, 정치인들에게 말하고 싶다.
오직 돈을 벌고 싶어서라면 다른 것을 해서 벌라고...
부탁한다.
-참 서툰사람들 中 (박광수 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