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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의 아닌 무임 승차
이유아이유 | 2020.03.22 | 조회 243 | 추천 0 댓글 1

분당에서 살던, 함박눈 펑펑 쏟아지는 어느 겨울날이었다. 직장 동료들과의 송년 모임을 마치고 나니 벌써 지하철이 끊어진 시간이어서 종로 조계사 앞에서 버스를 탔다. 버스에 올라 교통카드가 들어 있는 지갑을 기계에 갖다 대는 순간 ‘삑삑삑’ 하는 소리가 났다. 직장 다닐 때 지하철만 이용했기 때문에 버스에서는 카드를 처음 사용해보는 것이어서 그 소리가 무슨 소리인지 몰랐다. 그래도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잠시 멈칫해 있는데도 버스 기사 아저씨가 아무 말도 하지 않길래 원래 그런 건가하고 자리에 들어가 앉았다.
버스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두어 정류장을 지나갔다. 그런데 세 번째 정류장에 버스를 세운 기사 아저씨가 갑자기 뒤를 돌아보더니 “거기 뒤에 까만 옷 입은 아저씨, 요금 제대로 내야죠” 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 아줌마인 나는 당연히 나를 두고 한 얘기가 아니니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누구도 요금을 내러 나가는 사람은 없었다. 참다 못한 기사 아저씨가 운전석에서 일어나 후다닥 뒤로 오더니 내 앞자리에서 졸고 있는 까만 옷을 입은 청년을 흔들어 깨우며 야단을 쳤다. “아까 조계사 앞에서 타고는 왜 요금 안 내는 거요?” 그 서슬에 놀란 청년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저는 조계사 지나 미도파 앞에서 탔는데요”라고 말했다. 화가 난 기사 아저씨는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차 안을 죽 둘러 보더니 “에잇, 그럼 누구얏! 무슨 사람이 그래!” 하며 운전석으로 돌아가 계속 투덜거리며 난폭하게 운전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집 앞 정류장에 거의 다 왔을 때 불현듯 아까 삑삑대던 카드 기계 생각이 났다. 조계사 앞에서 탄 까만 옷 입은 아저씨랬지? 아뿔싸, 그게 제대로 계산이 안되었다는 신호였단 말인가. 사람들이 줄줄이 올라타니 길 막지 말고 나중에 돈으로 내라는 배려였나 보다. 덩치가 크고 머리도 짧은 나를 ‘아저씨’로 잘못 봤을 수도 있지. 험악해질 대로 험악해진 버스 안 분위기에서 “접니다”하고 자수할 용기가 내게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러나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부터 가슴이 졸아붙어 더 이상은 버스에 타고 있을 수가 없었다. 본의 아니게 무임 승차를 한 나는 두세 정류장 앞서 버스에서 내렸고, 함박눈 오는 한밤중에 걸어서 집에 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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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식이 | 추천 0 | 03.22  
그렇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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