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남이 고층 아파트로 이사한다기에 이삿짐을 날라주러 갔습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그 아파트 복도에는 집집마다 문 앞에 작은 자투리 공간이 있어서 그곳에 항아리나 쓰레기통을 내놓고 쓰고 있었습니다. 하필이면 처남의 집이 엘리베이터에서 가장 먼 810호여서 짐을 옮기는데 꽤 힘이 들었습니다. 짐을 다 옮기고 나서 땀을 닦으며 자장면 한 그릇을 맛있게 먹고 있는데, 갑자기 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습니다. 나가 보니 805호에 사는 무섭게 생긴 아주머니가 “누가 우리 항아리 뚜껑을 깨뜨렸는지 잡히기만 하면 요절을 내버릴 거야!” 하며 온갖 욕설을 다 퍼붓고 있었습니다.
‘아이쿠, 그러고 보니 내가 범인이구나!’ 침대 매트리스를 옮기다가 그만 잘못하여 항아리 뚜껑을 깨뜨린 것 같습니다. 짐을 옮기는데 온 신경을 쓰다 보니 항아리 뚜껑을 건드린 사실을 까맣게 몰랐습니다. 그 여자의 기세가 어찌나 등등한지 “내가 그랬다”고 나섰다가는 온 동네에 우셋거리가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누가 본 사람도 없는데 뭐’ 하며 얼른 집안으로 들어와 숨어버렸습니다.
밖이 조용해졌다 싶어 도망치려고 나와서 살금살금 엘리베이터로 가는데 가만히 보니 803호의 항아리 뚜껑도 깨져 있었습니다. ‘이그, 많이도 깼네. 또 한번 난리가 나겠군’ 하며 깨진 항아리를 내려다보고 서 있는데 문 열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저는 얼른 자리를 옮겨 엘리베이터에 타려고 기다리는 사람인 척하며 귀를 쫑긋 세웠습니다. “아이고, 항아리 뚜껑이 깨졌네. 복도에다 항아리를 내놓아서 사람들 다니는데 불편했겠구나. 사람은 안 다쳤는지 모르겠네. 항아리를 안으로 들여놔야겠다.”
그 소리를 먼발치서 듣고 있던 저는 그만 가슴이 찡해졌습니다. 그 길로 항아리 가게에 가서 예쁜 항아리 두 개를 사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803호의 벨을 눌렀습니다. 정중히 사과를 하고 새 항아리 하나를 드렸습니다. 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 나머지 항아리 하나는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을 때 805호 대문 앞에 놓고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쳐 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