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무는 황혼
-서정주-
새우마냥 허리 오그리고 누엿누엿 저무는 황혼을
언덕 너머 딸네 집에 가듯이 나도 이제는 잠이나 들까.
굽이굽이 등 굽은 근심의 언덕 너머
골골이 뻗치는 시름의 잔주름뿐, 저승에 갈 노자도 내겐 없으니 소태같이 쓴 가문 날들을 여뀌풀 밑 대어 오던
내 사랑의 보 또랑물 이제는 제대로 흘러라 내버려두고
으시시히 깔리는 머언 산 그리매 홑이불처럼 말아서 덮고
엇비슷이 비끼어 누워 나도 이제는 잠이나 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