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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건
베베엄마 | 2019.07.07 | 조회 426 | 추천 0 댓글 0
산다는 건


조금만 더 가면 돼요
헉헉대며 오르는 등산로에서
한 시간도 더 남은 거리를 누군가 시킨 하얀 거짓말에 땀을 닦으며 위안받는 일

아낄 일 아닌 물 한 바가지
마음 풀어 줘보지도 않았으면서
베란다에 활짝 핀 군자란 꽃을
마치 자신도 꽃인 냥 화안히 웃으며 바라보는 남편 옆에서 같이 웃는 일

지난 여름
남의 집 담벼락에 늘어진 넝쿨장미
고운 자태에 취해 만져보려 손을 내밀었다
가시에 찔려 피가 맺힌 손가락을 보며 나는 누군가에게 장미꽃일까 가시일까 고민해 보는 일

친구들을 만나
회포와 생태찌개에 소주를 곁드려 배부르게 먹은 후 근사한 카페에서 달달한 커피로 이차까지 하고 집으로 돌아와 문득
탁자 밑 빈 소주병 하나를 미처 모른 쥔장이 돈을 덜 받은 게 생각나 히히 웃다가 미안해지는 일

귤은
껍질에 틈을 내는 순간
아니 그보다 확 다 찢어 발려져야 향이 진하게 퍼진다는 사실에
내 아픔이 누군가를 맛나게 할 수도 있겠구나 알아가는 일

인도 블럭 틈새에
구두코가 걸려 넘어져 아픈 무릎일 때
그 순간 바로 일어서지 않으면 블럭에 잇대어진 무릎이 더 오래 아프다는 걸 깨달아 가는 일

떠나고 싶은 자리에 붙박힌 채
두통을 달래야만 평화가 유지되고
간절히 머물고 싶은 자리가 생겼어도
그건 내 자리가 아님을 알아 냉큼
떠나야만 질서가 흐트러지지 않음을 진저리치게 알아가는 일

잘못 들어간 힘 탓으로
토마토 꼭지를 따던 칼이 낸 상처에
새 살이 돋는 걸 보며
힘은 꼭 주어야 할 곳에 제대로 줘야한단
균형을 배우며 더불어 반드시 시간은 희망으로 온다는 걸 깨닫는 일

바람은 어디서 생겨 불어 오나
꽃향기는 무엇이 만드는가
그 많던 단풍들은 어디로 갔나
희미하게 깜빡이면서도 반짝임을 멈추지 않는 저 작은별 속엔 누가 살고 있을까

나는 누구인가

산다는 건
묻고 또 물어도
자꾸자꾸 물음이 생긴다는...

산다는 건 / 원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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