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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 서울의 가치
서현마미 | 2019.08.24 | 조회 249 | 추천 0 댓글 0

여수 돌산대교를 건너는 차 안에서 라디오를 틀었다. <정오의 희망곡>이 송출될 시간인데 진행자 목소리가 낯설었다. 여수MBC 지역방송 <박성언의 음악식당>이었다. 방송을 듣다가 놀랐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진행에 선곡도 좋고, 게스트와 주고받는 이야기도 재밌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 수준의 라디오 프로그램은 서울에서도 듣기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라디오에 매료된 김에 여수MBC TV도 시청했다. 박성언 아나운서는 생활정보 프로그램 <어바웃 우리동네> MC도 맡고 있었다. 함께 진행하는 한보선 아나운서와 주고받는 개그가 찰떡처럼 죽이 맞았다. 동시간대 서울 지상파 채널의 유사 콘셉트 방송들과 비교해 구성도 알차고 더 유익했다. 숙소에 있는 동안 채널을 내내 고정했다. 한보선 아나운서는 뉴스 진행도 잘했다. 지방방송이라 해서, 지방이라 해서, 서울보다 결코 못하지 않다.

나는 서울사람이다. 지옥 같을 때도 많지만, 그럼에도 서울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은 중심과 주류와 다수의 특권을 포기하지 못해서다. 여수MBC 라디오를 들으며 나는 서울에 사는 것 자체가 기득권이라는 자각을 했다. 더 많은 자본, 더 많은 기회, 더 많은 인적교류가 제공되는 서울에서 교육, 의료, 교통, 치안, 문화생활, 쇼핑까지 덤으로 누린다. 그 혜택을 위해 더 많은 대가를 치르고, 더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더 극심한 스트레스를 견디므로 서울살이는 특권이 아니라 합당한 권리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서울에 사는 것은 능력이고, 지방에 사는 것은 무능함이나 게으름이라고 하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 서울 주류사회에 편입할 능력이 충분히 있음에도 지역의 가치와 비주류의 존재이유를 지키고자 지방에 남아 파수꾼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가치를 위해 기꺼이 기회를 희생한다. 그들 덕분에 누군가가 떠나온 고향이 폐허가 되지 않고 고향으로 남는다. 그들이 지켜낸 지방 덕분에 ‘서울’이라는 심장비대증을 앓는 이 나라가 획일화와 몰개성의 합병증을 겨우 피한다.

산업화시대에 기를 쓰고 서울로 갔다면 이제는 기를 쓰고 서울을 벗어나야 할 때다. 기회의 땅에는 욕망만큼의 결핍이 반드시 생겨나는 법이라서, 나는 서울에서 몸을 망치고 마음을 다치고 꿈을 버리고 사랑을 놓쳤다. 내 혈관엔 술과 담배연기와 미세먼지와 네온사인 불빛이 나쁜 피로 흐른다. ‘탈서울’은 서울사람과 지방사람 모두에게 유의미하다. 다만 욕망의 분산이 아닌 기회의 분산, 인프라의 분산만이 아닌 사람의 분산이 되어야 한다. ‘지방을 서울처럼’이 아니라, 지방이 지닌 고유한 가치를 유지하면서 서울 못지않은 무언가가 자꾸 이뤄져야 한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강이 10년 넘게 참여하고 있는 ‘평창대관령음악제’가 좋은 모델이다. 올해 음악제에서 클라라 주미강은 강원도 양구 박수근미술관에 가 바흐를 연주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비주류인 지방의 의미 있는 시도에 주류인 서울이, 서울 너머의 세계가 손을 잡아 화답한 경우다. 그 자신들도 비주류인 홍대 인디뮤지션들이 통영, 순천, 영주 등에서 더 비주류인 지역 인디뮤지션들과 함께 버스킹 공연을 하는 것도 ‘탈서울’의 아름다운 실천이다.

나는 내 나름의 ‘탈서울’을 위해 두 번째 산문집을 부산의 지역출판사인 ‘산지니’에서 냈다. 산지니의 강수걸 대표와 편집자들은 <지역에서 행복하게 출판하기>라는 책에서 “단지 지방이라는 이유만으로 묻혀버리고 마는 가치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일, 지역이라는 공간에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행복을 심어줄 수 있는 가슴 따뜻한 책을 펴내는 일”의 보람에 대해 말한 바 있다. 산지니 출판사와 여수MBC 직원들, 평창대관령음악제 관계자들, 묵묵히 지방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청명한 가을 하늘을 엽서 삼아 인사하고 싶다. “아름다운 가치를 만들어가는 당신들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보냅니다.”

이병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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