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요미우리』 2004년 신년호에 실린 새로운 사진. 세 번째 화동이 김현희라는 새로운 주장이제기되고 있다. 사건 17년만에 공개된 사진이어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자료사진 - KAL858 대책위]
"국정원의 최종 입장 중 하나인 '김현희가 꽃을 준 사람은 이동복이다'라는 주장은 거짓이다."(신동진)
"이후락씨를 모시고 내렸기 때문에 두 번째 사람에게 꽃다발을 줬다면 장기영씨가 아니라 나였을 수도 있다."(이동복)
1987년 KAL858기 실종사건에 대한 진상규명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KAL858기 폭파범으로 발표된 김현희씨가 평양에서 화동으로 1972년 남북조절위 남측 대표단에게 꽃다발을 증정했다는 사실을 둘러싸고 진실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먼저 문제를 제기한 쪽은 'KAL858기 진상규명 시민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의 신동진 사무국장.
신 국장은 자신의 신간 저서 『KAL858, 무너진 수사발표』(도서출판 창해)의 주요 내용을 설명하면서 KAL858기 폭파범으로 발표된 김현희가 1972년 11월 2일 평양에서 열린 남북조절위 제2차 회담에 도착한 남측대표단에게 꽃다발을 증정한 화동이었다고 진술한 내용이 허위였음이 거듭 밝혀졌으며, 이 논란의 와중에 끼어든 이동복 전 의원의 주장 역시 거짓이라고 반박했다.
이동복 전 의원은 1994년 5월 5일자 시사주간지 『뉴스 메이커』에 기고한 '내가 만난 북한 사람들'에서 김현희가 꽃다발을 건네주고 붉은 스카프를 매주었던 사람은 장기영씨가 아니라 자신이라고 밝힌 바 있으며, 이후에도 1999년에 발간된 자신의 저서 『이동복의 미로찾기, 통일의 숲길을 열어가며』에서도 같은 주장을 반복했다. 이에 따라 여러 매체에서도 이같은 주장을 그대로 인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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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3월 6일 『그라프 곤니찌와』에 게제된 사진을 보도한 일본공산당 기관지『적기』. 김현희는 화살표된 화동이 "틀림없이 내 모습"이라고 진술했으나 나중에 북한 정희선씨로 밝혀졌다. [자료사진 - 노다 미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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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년 『뉴스메이커』에 실린 72년 당시 남북조절위 남측 대표단의 평양 도착 사진.
왼쪽부터 장기영, 이후락, 최규하. [자료사진 - KAL858 대책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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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측이 88년 3월 제시한 사진. 이후락, 장기영, 최규하 순으로 화동들이 스카프를 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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