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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 A씨는 종종 동대문시장 가방 가게에 들어가 묻는다. “S급 있나요?” 아저씨는 말없이 카탈로그를 내어준다. 명품과 흡사하게 생긴 가방 중 하나를 고르자 직원이 창고로 들어가 검정 비닐봉투에 싼 S급 가방을 내놓는다. 명품 가격에 비하면 턱없이 싼 가격의 짝퉁 가방을 A급, B급보다 비싼 가격에 지불하면서 전문가가 아닌 이상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거라 생각하며 흡족해한다. 오늘 내가 산 것은 A급, B급도 아닌 특S급 짝퉁이니까. | | | 짝퉁에도 급이 있다. 전문가조차 눈으로는 구분하기 쉽지 않은 진짜 같은 짝퉁은 S급으로 짝퉁 마니아들 사이에서 대우 받으며 거래된다. 그 다음 A급, B급 순으로 내려가는데 진짜 명품과 비교해 얼마나 흡사하고 정교하느냐가 몸값을 결정하는 관건. 짝퉁을 단속하는 전문가와 단속반은 명품 vs 짝퉁 구별법을 대중들에게 알려가며 그들의 허점을 드러내지만, 그 지침서를 보고 짝퉁 제조업자들은 단점을 보완하고 수정해 예술 작품 만들 듯 진짜와 구분이 안 되는 정교한 짝퉁을 만들어낸다. 물론 알고 사는 사람들에게 그 구별법은 큰 의미가 없다. | | | 진짜 같은 짝퉁을 만드는 업체들의 제작 및 유통 과정은 조직적이고 은밀하게 이루어지는데 규모가 상상 그 이상이다. 현장을 덮치기 위해 경찰이 잠복근무를 하는 것도 다반사. 일단 경찰에 검거되면 수천 점에 이르는 ‘눈부신 짝퉁’이 보도자료 화면에 주르륵 올라가는 게 바로 그 이유. 그 규모가 수억에서 수십억에 이른다니 얼마나 조직적으로 움직이는지 알 것 같다. 그렇다면 그들은 그 은밀한 제품을 어떻게 유통할까? 일단 국내에서 제작해 해외로까지 뻗어나가 국가 신뢰도 하락에 기여하는 경우와 중국 등지에서 제작해 국내로 밀수입하는 경우가 있다. 짝퉁 판매 조직은 운반책, 판매책, 제조책 등으로 분리돼 체계적이고 은밀하게 움직인다. 제품들은 동대문, 이태원, 고속터미널 지하상가, 남대문 등지로 팔려 나가는데, 지역별로 짝퉁 판매 분야가 다르다. 가장 많은 위조 상품이 팔린다는 동대문은 그 명성답게 가방, 의류, 잡화 가리지 않고 여러 명품 브랜드가 위조되고, 고속터미널 지하상가는 골프웨어 브랜드, 신촌과 이대 주변은 스포츠 브랜드와 가방이 주요 위조 품목이라고 한다. | | | ‘알면서도’ 돈을 지불하고 짝퉁을 사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갖고는 싶은데 돈이 없어서”라고. 백화점 명품관에서 멋들어지게 카드를 긁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기 때문에 진짜 같은 짝퉁에 지갑을 여는 것이다. 심지어 잘 고른 특S급은 짝퉁인지 명품인지 언뜻 보면 구분이 가지 않기 때문에 차라리 실속 있게 짝퉁을 사는 것이 낫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이는 말한다. “짝퉁을 무조건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명품과 똑같이 만들기 위해 세밀한 부분까지 똑같이 만들어내는 것도 보통 실력이 아니라는 생각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그래서 백화점에서 비싸게 주고 사도 유행이 지나면 쓸 일이 없을 것 같은 디자인은 가끔 동대문이나 이태원을 뒤져 S급이나 A급으로 구매한다”고 말한다. | | | #2 B씨는 오늘도 컴퓨터 앞에 앉는다. 즐겨찾기 목록에서 인터넷 쇼핑몰을 클릭해 새로운 신상이 들어왔는지 확인한다. ‘루이비통 st 토드백’이 new arrival 목록에서 깜박거린다. 루이비통, 좋은 건 알지만 아직 큰 관심은 없다. 그러나 디자인이 마음에 든다. 루이비통 백이 갖고 싶어서라기보다 지난번에 산 니트와 잘 어울릴 것 같고 값도 적절한 듯 싶어 결제창을 클릭한다. 상세 설명에서 쇼핑몰 주인장은 친절하게 말한다. “이번 시즌 루이비통 2010 s/s 가방입니다. 저희는 레드, 옐로, 화이트, 블랙으로 색상을 늘려 다양하게 준비해봤어요.” | | | 명품을 벤치마킹한 짝퉁으로 불리는 ‘명품 ST’ 짝퉁은 대놓고 명품 브랜드의 디자인을 베껴 디자인한 것으로 로고, 실루엣, 패턴을 차용, 변형시킨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그 브랜드는 아니고, 요즘 유행하는 디자인인데 조금씩 다른 그 제품들이 바로 벤치마킹형 짝퉁이다. 그 제품과 흡사하다 하여 ST(스타일)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S급, A급 짝퉁을 진짜처럼 정교하게 만들어놓고 은밀하게 팔던 업자들이 경찰의 단속을 피해 눈을 돌리기도 한 분야다. 숨어서 만들기보다는 디자이너나 브랜드 이름이 당당하게 박힌다. 가장 빈번하게 만들어지는 것은 ‘샤넬 2.55st'. 누빔 천으로 만들고 쇠사슬 끈을 단 샤넬 백은 베낀 디자이너별, 쇼핑몰별로 디자인이 천차만별이다. | | | 진화형 짝퉁의 선두에 있는 사람들은 주로 인터넷 쇼핑몰의 억대를 번다는 쇼핑몰 대박걸들. 그리고 얼마 전까지 음지에서 검정 비닐봉투에 담아 S급을 판매하던 오프라인 상인들이다. 명품을 당당하게 베껴서 디자인하고. ‘이 샤넬 st의 누빔 백 봄 컬러는 디자인해서 공장에서 주 문한 지 얼마 안 된 신상’이라고 당당하게 밝힌다. 이 제품들은 단골 공장에 제작을 의뢰해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 경찰의 단속 때문에 짝퉁 판매가 쉽지 않아 고민이던 동대문 상인들도 디자이너를 두고 제작해 인터넷 쇼핑몰이나 대형 오픈마켓에 싼 가격에 판매하기도 한다. 유통 분야도 다양해 가방으로 시작하던 것이 이제는 원피스, 치마, 셔츠 등의 의류와 액세서리, 시계, 운동화, 가방 등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 | | 타킷은 주로 나이대가 어린 여자들. 10대 후반에서 20대 중반까지의 여자들이 주 소비자층이며, ‘---st’이든 뭐든 신경 쓰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들이 과감하게 지갑을 연다. 그들은 진짜 명품을 소유하고 싶은데 아직은 상황이 여의치 않아 교묘한 짝퉁을 은밀하게 사는 사람들과는 조금 다르다. 어차피 누가 봐도 명품이 아닐 바엔 예쁘고 세련되고 실용적이면 그만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가격’으로 시즌 트렌드를 반영한 디자인의 제품들을 ‘싼 가격’에 곁에 둘 수 있고, S급이나 A급처럼 굳이 명품과 똑같아야 할 필요성은 없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벤치마킹형 짝퉁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는 B씨는 말한다. “어차피 명품이 아닌 다 같은 짝퉁일 거 A급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이렇게 디자인만 베낀 것도 짝퉁이긴 하지만, 값이 싸니까 구매하게 돼요”라고. 이렇듯 벤치 마킹형 짝퉁도 수요가 있기에 점점 더 그 여세를 확장해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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