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불매운동이 고조되면서 뜻밖의 피해자들이 늘고 있다. 일식집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일본 제품을 판매하는 편의점 경영주, 불매운동 이전부터 일본차를 타던 평범한 사람들이 불매운동의 유탄을 맞고 있다. 보다 섬세하고 전략적인 소비자운동이 이뤄져야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 Copyright@국민일보 서울 강동구에서 일본식 선술집을 운영하는 강모(32)씨는 최근 손님과 작은 실랑이를 벌였다. 술을 마시고 들어온 손님이 대뜸 “일본 술집을 하면 어떡하느냐”고 소리를 치며 험악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휴가철에 일본 불매운동까지 겹치면서 강씨는 가게 문을 연 이후 가장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했다. 강씨는 “여기서 1년 넘게 장사를 했고, 생선은 가락시장에서 사오고, 식재료는 국내 업체에서 공급받는데 일본과 전혀 상관 없는 평범한 자영업자들이 피해를 받는 건 솔직히 너무한 것 같다”며 “가게 밖에 ‘일본 술은 안팝니다’라고 써 붙이는 것도 생각하고 있는데, 그런다고 장사가 잘 될 것 같지는 않다”고 7일 말했다. 강씨처럼 일본 음식을 파는 식당들은 손님이 줄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호소가 줄을 잇고 있다. 매출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지만 무턱대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서울 송파구에서 일본 가정식 요리집을 운영하고 있는 장모(40)씨도 “장사가 안 되는 것도 힘들지만 죄인 취급하는 게 더 견디기 힘들다”며 “반일 감정에 공감하고 불매운동도 지지하지만 죄 없는 자영업자들에게까지 돌을 던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편의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도 불의의 피해자로 거론되고 있다. 일본계 편의점 체인인 미니스톱과 일본 회사로 오해받고 있는 세븐일레븐 등의 편의점 경영주들은 곤혹스러워하는 상황이다. 경기도 부천에서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52)씨는 “아직 매출 타격이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정도는 아닌데 한 블록 건너 하나씩 편의점이 있는데 불매운동에 자꾸 거론되다보니 위축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대체할 수 있는 다른 편의점들이 많다보니 불매운동이 길어지면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편의점 점주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 Copyright@국민일보
지난달 23일 오후 인천 남동구 구월동 수협사거리에서 인천 시민들이 일본자동차를 부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시스
일본차를 타는 사람들에 대한 비난도 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본 불매운동이 시작된 지난달 초부터 일본차에 낙서를 하거나 계란을 던지는 등 ‘묻지마 테러’가 종종 일어나고 있다. 일본차를 소유한 박모(38)씨는 “돌아가신 아버지 유품이라 나에겐 각별한 차인데 생각 없는 사람으로 손가락질 받을 때면 답답하고 화도 난다”고 말했다. 일부 주유소에서는 ‘일본차는 주유하지 않는다’는 현수막을 거는 등 다소 과격한 대응이 계속되는 상황이다. 지금의 자생적이고 자발적인 소비자 운동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많다. 하지만 최근 과열 양상을 보이면서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 불매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으면 ‘매국노’ 취급을 한다거나, 일본과 관련한 일을 생업으로 하는 사람들을 무작정 비난하는 것은 성숙하지 못한 태도라는 지적이 많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불매운동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사태가 길어질수록) 부작용을 바로잡아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불매운동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섬세하고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지금의 불매운동이 수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차분하고 전략적으로 진행돼 왔기 때문이다. 장기화에 대비해 지금보다 정교하게 전략을 다듬어야 한다는 것이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불매운동의 목표는 일본도, 일본인도, 아베 정부도 아니고 ‘아베 정부가 취한 정책’이라는 점을 공유하고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과의 관계가 긍정적으로 바뀌었을 때 언제든지 활발히 교류하던 때로 돌아갈 수 있도록 이른바 ‘출구전략’을 감안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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