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손의연 박기주 기자] 대표적인 장기 미제사건으로 꼽히는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을 찾기 위한 첫 단추가 채워졌다. 경찰이 당시 현장 증거물에서 나온 DNA와 일치하는 유력 용의자를 찾아낸 것이다. 화성 연쇄살인사건은 `살인의 추억`을 비롯해 여러 영화에서 모티브가 될 정도로 국민적 관심을 받는 미제사건으로, 이번 경찰의 수사 결과로 범인을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되고 있다.

하지만 유력 용의자로 지목된 당사자가 해당 사실을 부인하고 있고 이미 공소시효가 지난 사건이기에 강제적인 수사를 진행하기 어렵다는 점은 여전히 부담이다. 게다가 다른 6건(모방범죄 1건 제외)에 대한 DNA가 검출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용의자 DNA 일치, ‘살인의 추억’ 그놈 잡을 수 있을까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19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서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진행 상황에 대한 브리핑을 열었다. 배용주 청장은 “지극히 수사 초기 상태로 유력 단서인 DNA 결과를 토대로 용의자가 화성연쇄살인사건과 관련됐는지 일일이 확인할 것”이라며 “화성뿐만이 아니라 타 지역에서도 범행을 저질렀을 수 있어 수사기관으로서 밝혀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은 1986년부터 1991년까지 경기도 화성 일대에서 10명의 부녀자들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사건이다. 경찰이 대규모 경력을 투입해 수사했지만 피의자 검거에 실패하면서 주요 미제 사건으로 기록됐다. 이 사건의 공소시효는 지난 2006년 4월2일 지났다.

경찰이 특정한 유력 용의자는 현재 부산교도소에 수감 중인 이모(56)씨다. 경찰이 국과수에 당시 현장 증거물의 DNA 검사를 의뢰한 결과 10건 중 3건의 증거물에서 이씨와 일치하는 DNA가 나왔다. 3건의 DNA는 화성연쇄살인사건 5(1987년 1월), 7(1988년 9월), 9(1990년 11월)차 사건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수사기록엔 연쇄살인범의 혈액형이 B형으로 기록돼 있지만 이씨의 혈액형은 O형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이씨가 맞느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지만, DNA 일치 확률은 10의 23승 분의 1로 정확도가 훨씬 높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DNA 검사는 일치 확률이 굉장히 높기 때문에 당시 혈액형 검사보다 신뢰도가 높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유력용의자 혐의 부인…진실 밝히는데 어려움 따를 듯

화성 연쇄살인사건은 공소시효가 지났기 때문에 사실상 강제적인 수사가 불가능하다. 정확하고 구제척인 증거와 정황을 제시하고 유력 용의자의 자백을 받아내야 하는 게 진실 규명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일단 이씨는 경찰이 실시한 1차 조사에서 화성 연쇄살인의 혐의에 대해 부인했다. 경찰은 또 다른 DNA 증거를 확보해 자백을 받아낸다는 계획이지만 지난 7월 DNA 감식 이후 추가적인 감식 결과가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증거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설령 자백까지 받아낸다 해도 공소시효가 지나 이에 대한 처벌은 할 수 없다. 지난 2015년 7월 형사소송법이 개정돼 살인죄 공소시효가 폐지됐지만 2000년 8월 이전 사건은 소급적용이 되지 않아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처벌할 수 없다. 그러나 경찰은 처벌 가능 여부와 상관 없이 사건 해결에 집중한다는 각오다. 한 경찰 관계자는 “형사소송법 대 원칙에 실체적 진실 발견이라는 것이 있다”라며 “피해자와 그 유족의 한을 풀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사건 해결에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他 미제사건에 영향 끼칠까…경찰청장 ‘개구리 소년 사건’ 현장 방문

이번 화성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이 밝혀질 경우 경찰의 다른 미제사건 수사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지난 2011년 12월부터 지방청마다 미제사건수사팀을 꾸려 주요 미제사건에 대한 수사를 벌이고 있다. 현재 경찰이 수사 중인 주요 장기 미제 사건은 전국적으로 총 268건에 달한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20일 오후 1시 또다른 미제사건 중 하나인 `대구 개구리소년 사건`의 현장을 방문해 재수사 의지를 밝힐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사회 정의를 세우고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라도 미제사건의 해결은 분명 필요하다”라며 “이씨가 수감 중이기 때문에 경찰이 교정당국과 협의해 당근을 제시해 자백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 등이 필요해 보인다”고 조언했다. 또 이 교수는 “경찰이 오랜 미제사건의 용의자를 특정해냈는데 향후 중장기적으로 경찰의 미제사건 전담반의 지원과 과학수사 기술 연구에 대한 투자가 이뤄져야 이런 성과를 계속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의연 (seyyes@edaily.co.kr)